밤마다 가로등이 되는 사람 : 첫 번째
“자네가 인턴도 아니고, 신입사원도 아닌데 내가 왜 아직까지 이런 쓸데없는 이유로 아침부터 언성을 높여야 하나?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맨날 반쯤 넋 놓고 다니길래 안 좋은 일 있나 보다 지레짐작하고 참고 기다리려고 했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의욕도 없고, 열정도 없으면서 피곤한 티는 있는 대로 다 내고. 누가 보면 우리 회사 일을 혼자 도맡아 하는 줄 알겠어, 아주.”
어쩌구, 저쩌구, 이러쿵, 저러쿵…
인생은 쉽다. 시간 가는 대로 살고, 거기 있는 대로 살다가 때가 되면 있던 자리도, 곁의 사람도 떠나면 그뿐 아니겠는가. 단지 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어렵게 생각하고 힘들게 행동하느라고 인생을 어렵게도 산다. 지금 바로 ‘그’처럼.
오늘도 그는 열심히 일하다 상사에게 불려와 잔뜩 혼이 나는 중이다. 전혀 귀에 꽂히지 않는 상사의 분노와 영문을 알 수 없는 추궁의 말들이 이젠 익숙한 듯 한 귀로 흘려보낸다. 그러나 상사의 경멸의 눈빛만은 거르지 못하고 가슴에 박힌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뭘 잘못했었지? 도무지 자문에 자답할 수가 없어 머릿속은 그의 눈동자만큼이나 텅텅 비어 간다.
사실 그 또한 알고 있다. 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 재수가 없어서 이미 심기가 어그러진 상사의 눈에 띈 것이, 안 그래도 숫기가 없는 그를 평소 마음에 안 들어하던 상사의 눈에 띈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겠다.
‘그래. 인생은 쉽지. 다 내 잘못이야.’
스스로의 탓으로 돌리는 게 가장 쉽다. 자신이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티를 내어 괜한 잡음을 만드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비관하고, 스스로 얼마나 쓸모없는 인간인지 인정하고, 눈물을 흘리지 못해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림으로써 홀로 위안 삼는 것. 그것이 그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만 자리로 돌아가!”
그는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를 차마 뱉지 못하고 삼켰다. 말뿐인 그 사과가 얼마나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는지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 말뿐이었지만, 이젠 그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습관이 된 사과는 쓸모를 잃은 지 오래였다.
혼을 내는 사람도, 혼이 나는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혀를 끌끌 차대며 그의 뒤통수를 쪼아 본다. 아직까지 안 짤린 게 신기하다면서.
수군대는 뒷담화와 싸늘한 분위기를 그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안 짤린 게 어디라면서. 가슴 한 켠이 시려서 숨 쉬기가 버거운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지이잉- 지이잉-. 진동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전화가 왔음이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당신이다.
업무상의 전화도 아니고, 맨날 집에서 보는 당신 전화를 지금 받는다면 분명 상사의 분노를 또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는 당신 전화를 받았다. 이미 상사에게 예쁨 받는 건 진즉 글렀고, 그건 당신 또한 마찬가지지만, 상사의 분노보다 당신의 분노가 더 아파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인사도 없는 당신의 목소리는 역시나 날이 서 있다.
‘회사야?’
“응.”
‘어제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은 주제에 돈은 벌겠다고 출근을 하셨어?’
“사정이 있었어.”
‘그 사정이 뭐길래 집에 오지도 못하고, 못 온다고 문자 한 통도 못 날릴 정도야? 아냐. 이젠 듣기 싫어. 궁금하지도 않아. 설마 어디서 객사라도 했나 싶어서 그게 궁금해서 전화해봤어.’
“……”
‘아, 아침부터 화나게 하네.’
내내 일방적이었던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당신은 꼭 말을 해도 그렇게 모질게 한다. 하지만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세상에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가 밤이면 가로등이 된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언제부턴가 밤이 되면 가로등이 되곤 했다. 정말 말 그대로의 가로등으로 말이다. 왜 갑자기 가로등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저 늘 그가 퇴근길로 다니던 자전거도로의 강가 쪽 10번째 가로등이 된다는 것밖에 자세히 아는 것이 없다. 퇴근길을 바꾸기도 해 보고, 퇴근을 미루거나 아예 안 하기도 해 보고, 하루는 휴가를 내어 집 밖을 나가질 않거나 반대로 안 해도 되는 야근을 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그는 어김없이 가로등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가로등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