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가로등이 되는 사람 : 두번째
가로등이 된단다. 이런 말을 들으면 왠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는가. 무슨 쓰잘데기 없는 말이냐며 비웃음을 살 것만 같다. 믿지 못한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한 소리를 들을 테고, 설마 믿더라도 늦은 밤에 가만히 서서 불빛만 주구장창 비추지 않냐며도 한 소리를 들을 터였다.
사실 ‘그’야말로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하필 왜 나야?’
밤마다 가로등이 되느라고 집에도 못 가서 당신에게 미운 털이 잔뜩 박히는 중이다. 불빛을 꺼뜨리면 안 되기에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밤새 계속 깨어있다보니 정작 회사에서 꾸벅꾸벅 조느라 상사에겐 욕만 먹고, 동료들 사이에선 이미 눈 밖에 난 처지다. 아끼는 사람은 물론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 모두 등을 돌려 홀로 남겨졌다. 이런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 하필이면 자신이라니.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생각해보니 또한 억울하고 섭섭해서 안 그래도 하루종일 누군가의 화를 받아내느라 우울해 시들시들한 그의 불빛이 한숨이라도 뱉듯 사르르- 조명을 꺼뜨린다. 싸늘한 바람이 텅 빈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때였다. 갑자기 발 밑이 따뜨읏-해지더니 금방 차게 식는 느낌이 든다. 쎄하다. 슬쩍 아래를 본다.
그의 불빛이 반가움에 깜빡거린다. 발 언저리를 적신 소변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한동안 그의 주위를 맴돌다가 여름 내내 통 보이지 않았던 주인 없는 닥스훈트 한 마리가 오랜만에 그의 곁을 찾아왔다. 그는 그를 ‘친구’라고 불렀다. 물론 말은 못하지만. 아마 날이 너무 추워 조금의 온기라도 쐬고 싶어 슬금슬금 그의 곁으로 온 것일 터였다.
친구는 그의 발치에서 똬리를 틀고 잠을 청하려나보다. 기나긴 몸을 한껏 말아서야 서로 닿는 짧고 작은 네 다리가 귀엽다. 그 모습에 이끌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을 하자마자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발길을 멈추고 그와 친구의 주변으로 몰렸다.
친구는 제 몸을 허락도 없이 만지는 사람들이 불쾌하지도 않은지 오히려 잠꼬대인 척 몸을 뒤척이며 배를 까버린다. 사람들이 자지러지며 너도나도 휴대폰을 들이대고 있다. 그는 남몰래 슬쩍 웃음을 지었다. 친구가 가르릉거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몸소 즐기고 있음이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직업이 되어 먹고 사는 존재들이 있다. 친구는 자기 존재를 참 잘 이용했다. 이유 없이 사랑 받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존재의 가치를.
짧은 다리로 어디 하나 시원하게 긁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기꺼이 친구의 발이 되어준다. 보송한 분홍색 배를 까고 누우면 갈빗살이 그대로 드러나 텅 빈 가죽이 훤하다. 그럼 사람들은 기꺼이 사비를 털어 친구의 배를 채워준다. 참고로 오늘 저녁은 통조림 참치다.
“그에 비해 난 태어난 게 미안한 존재지.”
그는 아무도 들을 수 없지만 모두가 들어줬음 하는 마음에 웅얼거렸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그저 밤벌레의 날갯소리려니, 겨울바람이 낙엽을 휩쓰는 소리려니 치부했다. 그들에겐 눈 앞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친구 또한 그 소리를 들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눈 앞의 통조림을 비워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밤이 늦어가니 슬슬 사람들이 친구에게 인사를 하며 떠나간다. 마지막까지 친구의 등을 긁어주던 아이는 무겁게 다리를 일으키고는 빈 통조림캔을 챙겨들었다.
“내일 또 올게.”
마지막 아이까지 떠나간다. 친구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이의 발자취를 쫓아 바라보다가 어쩌면 아이가 집에 도착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기지개를 쭈욱 피곤 그의 발치에 발라당 누워 잠을 청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조용하다. 친구의 등장과 동시에 왁자지껄하던 주변은 너무 조용해서 그 자신의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그는 그 잠깐의 분주함을 되새겼다. 근래 그 주변에 사람이 모인 적이 언제였을까. 그가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행복에 겨워 웃기만 하던 적이 언제였을까. 물론 다 친구의 귀여움 덕분이지만 그의 앞에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본 지가 언제였는지 그는 기억할 수 없다.
그는 고개를 숙여 친구를 바라봤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이들을 바라만 봐도 행복하게 만드는 친구가 부러웠다. 차라리 개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그 순간 겨울바람이 불었다. 그중에서도 하루 중 가장 차갑고 시린 새벽바람이 분다. 바람결이 꽤 날카로워 친구는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더욱 둥글게 말았다. 그가 눈을 부릅 떴다. 그의 가로등이 하루 중 가장 강렬한 불빛을 내뿜는다.
이미 태어나길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 그마저도 시원찮아 가로등이 된 자신을 반성해봤다. 무엇으로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가로등이었다.
그는 지금 가로등일 뿐이라 친구를 안아줄 수도, 바람을 막아줄 수도 없었지만 가로등이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눈을 크게 떴다. 가로등으로 있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도로 위 가로등 중 그의 가로등이 가장 밝고 따뜻하게 빛났다. 그래서 그날 그 도로 위 어떤 것도 외롭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푸릇푸릇한 새벽빛이 밤을 몰아내는 중에 그는 문득 자신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친구는 이미 떠나고 없다. 시간을 보니 새벽 시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아마 막 일어난 당신은 화를 낼 것이다. 차라리 화를 내면 다행이게, 쫓겨나지만 않았음 좋겠다. 그는 밤새 한껏 굳은 온몸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부수며 일어났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현관문을 연다. 그는 얼른 집안을 둘러봤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인기척은 없다. 화장실 문틈으로 스며난 불빛도 없다. 이상하다. 분명 당신이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을 시간인데. 시간을 착각한 걸까 싶어 다시 휴대폰을 봤다. 시간은 틀림없는 5시 47분이었지만 요일을 착각했다. 토요일이라니.
그는 갑자기 맥이 빠져 거실바닥에 흘러내려 누웠다. 출근해야 하는 줄 알고 겁을 먹은 보람도 없이 안도감이 가슴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아아-. 그제서야 그가 제대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요한 집안이 그의 온기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입고 있는 양복도, 들고 있던 가방도 머잖아 무게를 내려놓는다. 밤새 불을 밝히느라 충혈됐던 눈이 슬슬 감긴다.
제대로 잠이 든 게 언제였을까.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본 날은 얼마나 오래 전이었을까. 잠을 자면 너무도 허망하게 내일이 오고, 내일이 오늘이 되면 또 다시 어제처럼 누군가의 화를 돋운다. 나아지지도, 달라지지도 않는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날들을 헤아릴 수도 없다.
정말 오래간만에 그는 잠이 들었다. 잠결 사이사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당신인 것 같은 발걸음이 집으로 들어오다 멈칫- 하더니 그에게 다가오는 소리. 바로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당신인 것 같은 한숨 소리.
“주말이라고 기어들어왔다 이거야?”
당신이 분명한 목소리. 왜 당신이 이 시간에 밖에서 들어오는지 궁금해지기도 전에 당신의 목소리는 또 모질어진다.
“사는 게 귀찮니? 그럴 거면 왜 살아? 죽지 못해 살아? 그럼 죽지 왜 살아?”
잘 거면 제대로 잘 것이지 당신 목소리는 잠결에도 기가 막히게 들어서 분명하게 상처 받고 만다. 모진 당신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목구멍이 눈물로 가득 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는 이윽고 안방 문을 닫았다.
그에 대한 실망이 또 한 겹 쌓인 당신을 뒤로 한 채 그는 무겁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