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가로등이 되는 사람 : 세 번째
그의 휴대폰은 거의 울릴 일이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은 대부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었고, 그에게 무언가를 말해야 할 사람이라면 혼을 낼 상사나 화를 낼 당신뿐인데, 상사는 어차피 한 사무실에 있어 앉은자리에서 소리만 지르면 됐고, 당신은 이제 그를 포기한 듯 전화로도, 집에서도 잠잠하기만 하다. 사실 요즘 그는 당신을 집에서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조금 이른 새벽에 몸이 돌아와 집에 들어가면 익숙한 당신의 경멸에 찬 눈빛은커녕 당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죽 자신에게 화가 났으면 얼굴조차 보기 싫어 새벽부터 출근을 할까 싶어 그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한창의 점심시간, 모두가 나가 사무실에 홀로 남은 그의 휴대폰이 울리는 일은 그에게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스팸전화도 아닌 모르는 휴대폰 번호가 떴으니 말이다. 그래서 전화를 받기에 약간은 설렜지만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안녕, 잘 지내? 나 누군지 기억하지? 너무 오랜만이다.’
사회생활이란 걸 하면 꼭 나타나는 불청객이 있다. 왜 동창들은 잊을 만하면 나타날까? 그리고 그들의 의도는 분명하다. 돈을 빌려달랄 게 뻔하다.
몇 년 만에 온 연락에 아주 약간은 반가울 만도 한데, 원래도 표정이 없던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따 퇴근 몇 시에 해? 한 번 만나야지! 내가 너네 회사 앞으로 갈게. 괜찮은 가게 있어? 오랜만에 보는데 우리 맛있는 거 먹자!’
몰아치는 문장들 속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순식간에 약속이 잡히고 전화가 끊겼다.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던 그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돈 많은 친구들을 거치고 거쳐 친하지도 않았던 자신에게까지 연락하고 만 동창의 사정을 가늠해 보았다. 어쩌다 자신 같은 사람에게마저 동정을 받을 정도가 됐을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런 생각조차 사치인 자신의 사정을 먼저 헤아려야 했다.
퇴근 후 미리 말해둔 식당으로 가보니 행색은 추레한 동창이 앉아 있었다. 그가 맞은편에 앉자 동창은 아주 잠깐 그를 알아보지 못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 늦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아랫입술을 살며시 물곤 할 말을 찾아 눈알을 굴리는 동창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먼저 말을 꺼냈다.
“나 너한테 빌려줄 돈 없어. 미안.”
“…야. 나 돈 빌려달라고 너 부른 거 아니야.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학창 시절 친하지도 않았던 동창에게 연락하길 결심했을 정도로 굽힌 자존심일 텐데, 마지막 남은 한 톨의 자존심까지는 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는 없고, 때마침 미리 시킨 음식이 나와 안 먹고 갈 수도 없었던 동창은 아무 말 없이 음식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스리슬쩍 그의 앞에 영수증 보드를 밀어 둔다.
거의 그릇에 얼굴을 박을 지경으로 굽혀진 동창의 정수리를 더는 볼 수가 없어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에 동창이 숨을 죽인다.
자신의 얼굴도 단번에 기억하지 못하면서 음식값이라도 떼어먹겠다는 동창의 속셈에 자존심이 퍽 상했다. 그냥 나가도, 계산하고 나가도 어차피 동창은 다시 보진 않을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나가버려 가로등이 되어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그는 지갑에서 딱 한 장 있던 오만 원 지폐를 꺼내 영수증 위에 올린다. 동창이 자신 때문에 그나마 얻어먹을 밥마저 제대로 못 먹고 있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나 못 알아볼 정도로 친하지도 않았던 것이 그나 동창의 잘못도 아니기에 그냥 나가버리는 것도 미안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동창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라는 게 제일 미안했기도 했다.
“나 먼저 가볼게. …투잡을 뛰어서.”
투잡이라면 투잡이기도 하다. 밤새 눈을 부릅뜨고 길을 밝히는 가로등의 일이 여간 만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술집을 나섰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비가 솨아아- 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저마다 우산을 하나씩 쓰고 있다. 그는 가지고 나온 거라곤 휴대폰밖에 없어 보였던 동창이 걱정됐지만 이내 단념했다. 술값까지 내줬는데 뭘 더 바라.
또한 그에게도 우산이 없었기에 남을 걱정할 처지가 못 됐다. 그래도 자신은 가로등이 돼버리면 그만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늘 찾아오던 닥스훈트 친구도, 그나마 있어 외롭진 않았던 자전거도로 위의 사람들도 모두 발길을 끊었다. 그럴 때면 늘 밤과 비의 분위기를 잔뜩 탄 취객이 나타나 가로등을 끌어안곤 한다. 꽤나 성가시긴 하지만 자기가 먹은 안주를 그의 발 밑에 토해버리지만 않는다면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밤새 혼자서 뜬눈으로 지새우는 것보단 그들이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는 속말을 듣는 건 언제나 재밌는 일이었다.
오늘은 누굴까 궁금하던 찰나 익숙한 윤곽이 빗속을 뚫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이도 마셨는지 동창은 비틀대며 다른 어떤 가로등도 아닌 그의 가로등을 향해 곧장 걸어오고 있다. 그는 긴장해서 눈빛을 깜빡였다.
설마, 그럴 리는 없지만 내가 가로등인 걸 들킨 걸까?
정체가 들켰는지 분간이 안 가 겁이 난 그는 당장 숨을 곳을 찾았지만 가로등이 된 그가 숨을 곳이라곤 없었다. 애초에 가로등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눈을 질끈 감아 어둔 밤이 그를 숨겨주기만을 바라며 숨을 참았다.
그의 발치에서 동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치 한 번 더럽게 빠르네. 내가 돈 빌리려고 온 건 어떻게 안 거야? 반장이 벌써 애들한테 연락 돌린 건 아니야? 내 전화 피하라고? 조심해, 얘들아! 동창회도 안 나가던 동창 놈 하나가 돈 빌리려고 여기저기 쑤시고 있어!”
발치의 인기척이 그를 안는다. 부여잡더니, 쓰러지려는 제 몸을 지탱하며 매달린다.
“친구한테, 어? 그까짓 돈 빌려줄 수도 있지. 그렇게 아껴서 얻따 쓰려고들 그래? 부자 되시겠어요, 좋으시겠어요! 투잡씩이나 뛰면서 친구한테 빌려줄 돈도 없다니. 인간도 아니다, 넌. 인간 하지 마, 너!”
듣자 듣자 하니 기분이 상해서 그가 버럭 눈을 떠버렸다. 가로등 불이 켜져 놀랐는지 털썩 주저앉아버린 동창의 행동에 그가 숨을 죽였다.
“여기 뭐야? 금덩이 천지잖아!”
그러고는 대뜸 바닥 웅덩이를 손으로 쓸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가로등의 주홍빛 불이 웅덩이를 비추고, 그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화가 널브러진 듯도 보인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에겐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동창은 어서 가로등 불을 주워 자기 바지 주머니에 담았다. 아무리 담아도 주머니 속은 채워질 리 없었지만 자기 주먹을 주머니에 넣다 뺏길 반복 하며 동창의 얼굴은 야망인지 희망인지 모를 행복한 미소로 채워졌다. 더 이상 젖을 수도 없는 바지는 의미 없이 젖을 뿐이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이 정도 금이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두고 봐.”
점점 무거워지는 바지가 이내 자랑스러웠는지 동창은 그만 배를 까고 드러누웠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툭 튀어나왔다. 언뜻 봐도 최신 기종이 아닌데 이렇게 비에 흠뻑 젖어도 괜찮은지는 모르겠다. 만족감에 취한 동창은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는 그 모습을 빤히 내려봤다.
그의 머리 위에서 내리던 비가 그의 얼굴을 쓸어 내려선 동창의 얼굴을 사정없이 패댔다. 술을 깨라는 건지 꿈을 깨라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정신만은 차리라며.
그때 동창의 휴대폰이 빛나면서 전화가 울렸다. 머리가 너무 위에 있어서 누구에게 온 전화인지 글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름 옆에 적힌 하트는 정확히 보였다. 한참이 지나 전화가 꺼지고, 다시 울리고, 한참이 흐르고, 다시 꺼지길 수차례 반복하고, 역시나 방수가 되는 휴대폰은 아니었는지 화면이 뚝 꺼졌다.
그는 동창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말끔히 씻긴 동창의 몸은 흠뻑 젖었을 뿐 더 이상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동창이 입은 옷을 보며 그 너머, 집에서 동창을 기다리며 걱정하고 있을, 동창이 하트를 붙일 정도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상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있을 당신을 생각했다. 죽은 듯이 고요한 자신의 휴대폰을 생각했다. 더 이상 그는 동창을 동정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동창에겐 집이 있었다. 아침이면 돌아갈 누군가의 품이 있었고, 누군가의 이름 옆에 하트를 붙일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동창을 동정할 수 없었다.
괜히 미워 눈에 힘을 잔뜩 줬다. 너무나도 강렬한 불빛에 동창은 잠결에 눈살을 찌푸리곤 더욱 제 품에 파묻혔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 동창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나마의 위안을 삼았다.
비가 그치고, 물 비린내가 둥둥 떠다니는 아침, 잠에서 깬 동창은 차게 식은 가로등 언저리에서 감기만을 얻고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망가진 휴대폰의 남은 할부를 걱정하며.
그날 아침, 그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온몸이 젖어서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출근을 할 수 있을 텐데도 그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그 집에 당신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