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가로등이 되는 사람 : 마지막
당신을 보지 못한 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가 입사하고 처음으로 상사에게 칭찬을 받았다. 그래 봤자 “쓸 만하네”가 다였지만 그동안 혼났던 것들을 생각하면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다.
늘상 졸린 눈으로 일을 하는 건지 눈을 뜬 채로 잠을 자는 건지 알 수 없었던 그는 요즘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산 송장처럼 창백했던 얼굴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도 슬쩍슬쩍 웃더니 혈색이 아주 조금이지만 띄어갔다. 저절로 숨이 쉬어지니 살아갈 뿐이던 무기력한 날들 속에서 살 맛이 난다 싶은 요즘 날, 이게 모두 가로등이 된 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디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 사람의 모습으로 있는 대부분의 시간들에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러 나설 정도로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 무엇을 가지고 쓸 만한 일을 할 정도로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어디에 쓰이려고 세상에 태어났을까, 자문하면 자연스레 자답했다. 남들 밑바닥을 깔아주기 위해 태어났나보다, 그런 사람이 필요하긴 하지,라고.
그러던 중 가로등이 됐다. 하는 일이라곤 아침이 올 때까지 목석 같이 서서 눈을 부릅뜬 채로 있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일이 밤길을 밝혀 걷는 사람들의 앞에 황금색 카펫을 펼쳐주고, 그 불빛이 갈 곳을 잃은 작은 생명에게 얇게나마 이불처럼 덮이고, 외로운 누군가에게는 잠이 든 순간만이라도 눈부신 꿈을 꾸게 한다. 사람의 모습으로는 숨 쉬는 것조차 누군가의 화를 돋우는데, 가로등의 모습으로는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되고, 온기가 되고, 쉼이 된다.
어딘가에 도움이 되고는 있구나, 살아있어도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람의 일이 조금은 덜 부담스러워졌다. 마음의 짐을 조금 덜더니 가로등이 하는 일보단 다채로워 재밌게도 느껴졌다. 자연스레 일의 능률이 올랐고, 그 덕에 처음으로 칭찬도 들었다. 이렇게만 살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드디어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단 생각이 벅차오르더니 당신 생각이 수면 위로 올랐다. 늘 자신을 걸어 다니는 송장인 줄 알아 실망만 했던 당신에게 달려가 자랑스레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다시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했다. 일찍 퇴근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그 정도의 날이었다. 가로등이 되려면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서 집으로 달려가 당신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기가 도는 내 얼굴을 보면 당신은 뭐라고 해줄까? 그는 당신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당신이 항상 짓던 한심한 표정을 짓진 않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들뜬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설마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당신은 없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건가 싶어 소파에 앉아 당신을 기다렸다. 당신의 퇴근이 조금 늦는 모양인가 싶었지만 가로등이 되러 가기 전에는 당신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현관문 바깥은 잠잠했다. 당신 없이 그 혼자만 놓인 집은 지나치게 조용하고 싸늘했다. 들리는 것이라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뿐인 이 집이 낯설다. 단지 그가 너무 오랜만에 집에 왔기 때문이 아니다. 이 집에 있어야 할 당신의 흔적이 없어서다.
보통 리모컨에 먼지가 쌓일 수 있나? 아무리 퇴근 후 피곤에 지쳐 곯아떨어진대도 주말에 TV를 보기만 해도 리모컨에 먼지가 쌓일 일은 없을 텐데. 이상한 생각이 든 그는 먼저 부엌으로 갔다. 수북이 쌓인 설거지거리에선 지나간 시간만큼 썩은내가 진동했다. 다음으로 간 베란다엔 걷지 못한 빨랫감이 햇빛을 받아 바래지고, 푸석푸석하게 쌓인 먼지가 굳어 있기까지 하다.
그제서야 의문이 들었다.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 시간 동안 당신이 당연히 집에 있을 거란 생각을 왜 했을까? 당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가 당신과 집을 등진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은 그를 등졌고, 집을 떠났다. 그와 집은 당신을 잃었다. 그걸 돌아와서야 알았다. 후회하기에 이미 늦었다. 당장 당신을 찾으러 떠나야 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또다시 가로등이 됐다.
여느 때처럼 평화롭기만 한 거리에 여느 때와 같은 사람들, 날씨가 좀 풀려 날아온 몇몇의 밤벌레들과 어김없이 사람들을 홀리는 닥스훈트 친구. 그 중심에 놓인 가로등은 여느 때와 같지 않다. 평소보다 시들한 불빛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는 그 눈빛처럼 불안하다. 지금 당장 당신을 찾아 동네 곳곳을 뒤지고 다녀도 모자란데, 가로등이 된 탓에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의 착각을 실감했다. 가로등으로서 해낸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대도 정작 가장 사랑하는 당신을 놓치고 찾지도 못한 채 그저 이 곳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인 한낱 가로등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당신을 찾게 해 주세요.”
그는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소리쳐 말했지만 아무도 가로등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 누구든 들어줬음 싶어 그는 끊임없이 외쳤다. 목소리가 새어나길 빌며 밤이 깊도록 외쳤다. 그 덕분에 바르르 떨리는 가로등 불빛에 눈이 아픈 모든 생명들이 떠났다. 이제 그는 정말 혼자다. 그럼에도 소리 없이 외쳤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
그때였다. 희미하게 목소리가 났다. 그의 가로등이 번뜩 올곧게 빛을 냈다. 간절한 바람이 드디어 이뤄진 건가 싶어 그가 다시 한번 말했다. 잘못… 그러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잊은 듯이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자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금세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목소리는 들려왔다.
“어딨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내가 잘못했어. 이제 그만 나와.”
목소리가 다가온다. 다가올수록 목소리에 실린 눈물의 무게도 함께 느껴진다. 목소리는 숨김없이 자신의 슬픔을 내질렀다. 소리가 완전히 그에게 닿았다. 그가 아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당신의 목소리가 그의 가로등 불빛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그런 당신을 처음 봤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도, 잔뜩 갈라진 당신의 목소리도, 자기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 모습도, 지금 당신의 모든 것이 그는 처음 겪는 당신이었다. 그리고서야 알았다. 무너져 내린 당신을 그 자신이 저질렀음을.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돌아와 줘. 나 혼자 두지 마…”
여지껏 상처 받은 건 자신이라 믿으며, 모자란 그 자신 때문에 당신이 더는 실망하지 않길 바라며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을 당신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더는 오지 않는 당신의 연락에 버림받았다며 서운했고, 철저히 혼자가 돼버린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겼다. 그 결과로 당신이 운다.
혼자뿐이던 그 집이 얼마나 낯설고 싸늘했던가. 그가 잠깐 동안 느낀 섬뜩함을 당신은 오랜 시간 혼자 감내했다. 그가 사랑했던 당신에게 남은 것은 사랑했던 그를 잃은 오롯한 당신뿐이었다. 그 오롯한 당신이 외로워 사무쳤다.
당신에게서 버려진 건 자신인 줄 알았는데, 당신을 버려둔 게 그였다. 모진 말에 상처 받는 사람은 그 자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책임한 침묵과 매정한 등만을 바라보며 혼자 남은 집안에서 공허한 공기에 상처 받은 사람은 당신이었다.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지금 사과해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닌 그였다.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를 썼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당신의 눈에 그는 가로등이었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어서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눈을 깜빡였다. 당신의 머리 위에서 가로등 불빛이 쉴 새 없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당신이 자신을 알아주길, 몸이 움직이길, 당신에게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줄 수 있길, 그 마음들을 바라며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다. 가로등이 깜빡거린다.
그 순간 가로등 전구가 터지면서 일순간 불빛이 꺼졌다. 당신만을 비추던 불빛이 모두 꺼지자 당신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너무 울어서 앞이 보이질 않아 옷소매로 눈을 비볐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당신의 눈 앞엔 눈이 빨갛게 충혈된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이유로 충혈된 두 쌍의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두 주먹을 가득 세게 쥐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의 얼굴을 당신은 가만히 안았다.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올랐다. 가로등 빛을 잃은 거리는 햇빛으로 채워졌고, 햇살로 채워진 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와 당신은 그 사람들 틈에서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래도록 등을 켜지 않았던 집이 오랜만에 환히 밝혀졌다. 아침이었지만 그와 당신은 모든 스위치를 켰다. 두 사람은 간만에 함께 잠이 들었다. 더 이상 그 누구를 위해, 그 무엇을 위해, 그 어떤 거리를 위해 눈을 뜰 필요가 없었다.
그가 없는 거리는 여전한 가로등의 불빛으로 반짝일 터였지만, 그가 돌아와서야 집은 본연의 빛을 찾았다. 그가 없어도 친구는 여전한 자리에서 사랑을 받을 터였지만, 그가 돌아와서야 당신은 갈 길을 잃은 사랑의 방향을 찾았다. 그가 돌아옴으로써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가 돌아와서야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더 이상 가로등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