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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Apr 20. 2019

꼭 그렇게 다 울려야만 속이 시원했냥?

[무비패스] 영화 '고양이 여행 리포트(2018)'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작가 안은 : 꼭 그렇게 다 울려야만 속이 시원했냥?


15살 때부터 진돗개를 키우고 있다. 이름은 ‘곰탱이’. 놀랍게도 여아다. 내 인생에 처음 만난 반려견이자,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건 내 인생 마지막 반려동물일 것이다. 그 아이 이외의 반려동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삶에 다시없을 가족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아이가 나를 만나 행복할까?’ 말도 못 알아듣고, 짖으면 짖는다고 혼내고, 화장실 못 가리면 한숨 쉬고, 밥이라곤 맛없는 사료나 먹이고, 산책도 내킬 때만 시켜주고, 자기 일 바쁘다고 넓지도 않은 집에 혼자 내버려나 두는데, 과연 나 같은 사람을 만나 ‘내 개’가 되어 사는 삶을 행복하게 생각할까 싶다. 당장 나만 해도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겹고, 아침마다 일어나라며 재촉하는 것도 못 견딜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어느 날 내 꼬리뼈에 엄지손가락만이라도 꼬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네가 하는 감정표현을 내가 느끼는 만큼 너도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고,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편안하고 즐거운지 알려주며 꼬리를 살랑이고 싶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네게 단 한 번도 서운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니 내가 네게 나를 알리고 싶은 만큼 너를 이해하고 싶다고 아이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주인에게 속으로라도 말을 하는 영화에게 바라는 점은 별 거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 속에서 동물의 마음을 더없이 잘 헤아릴 수 있는 것. 반려견과 반려인이 서로를 만나 행복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 사랑에 감동해 눈물이 날지언정 누구 하나 불행하지 않게 시원한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걸까, 그렇게 마냥 행복하게만 끝나는 동물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있다면 영화 ‘마이펫의 이중생활’ 정도?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이 영화의 제목에 속았다. 그저 고양이와 함께 떠나는 가벼운 로드무비인 줄로만 알았다.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고양이’도, ‘여행’도, ‘리포트’도 없다. 그저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에 고양이를 얹은 신파일 뿐이다. 이런 영화에 속수무책으로 울 때마다 자존심이 상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생명을 키우는 데에는 확실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왜 원작 소설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을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남다른 고양이 사랑도 한몫하겠지만 일본은 유달리 가족해체 현상이 급속화된 나라다. 고령화와 저출산, 이혼 또는 비혼 등의 이유(물론 그 안에도 세부적인 이유들이 있다)로 1인 가구가 늘어가면서 서서히 가정의 단위가 쪼개지자, 일본 내에선 가족의 정의를 단순히 피를 나누고 대를 이어오는 집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가치관이 전 세대적으로 형성됐다.


쉽게 말해 같이 살아도 내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감정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이웃과 친구에게 더 위로받을 때가 많지 않은가. 어떤 집단 속에서 어떠한 불안도 슬픔도 없이 평안함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로 인해 유대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단순히 낳았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충성과 존중을 해야 하는가? 과거에는 그것이 효심으로 간주되었다면 이제는 그러한 질문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한다. ‘생명은 낳은 것보다 어떻게 키우느냐가 더 중요하고, 그 생명을 키우는 데에는 반드시 자격이 필요하다’고.


주인공 ‘사토루’의 존재는 영화의 말을 대변한다. 태어날 때부터 무책임한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 키워진 사토루는 보호소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사토루의 사연을 안타깝게 생각한 담당 판사는 이 이야기를 자기 언니 부부에게 하게 되는데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부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토루를 입양하기로 한다. 사토루의 부모는 친부모보다도 더 다정하고 애틋한 사랑을 주며 사토루를 키워냈고, 그 어떤 가정보다도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님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는데, 사토루를 그 어떤 친척들도 맡고자 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만의 변명으로 회피하며 보호소로 보내라고만 말하자 사토루의 이모가 나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직장여성이 왜 나서냐며 친척들은 만류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언니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사토루를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사토루를 또다시 보호소로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토루는 이모와 함께 살게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혈연보다 앞선 인간적인 정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어려서부터 배운 사토루는 작은 생명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이모와 함께 사는 대신 키우고 있던 고양이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자 ‘하치는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내 가족이에요!’ 소리치며 함께 살자고 애원한다. 또, 현재 키우고 있는 고양이 ‘나나’를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생기는데,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들 중 맡아줄 만한 사람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이 영화가 고양이 ‘여행’ 리포트다. 그 과정에서 사토루와 얽힌 친구들 간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로 사토루가 자기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의미까지는 참 좋았다. 진짜 가족은 책임감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까지는 좋았다. 사토루가 약봉투를 부스럭 부스럭 거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토루가 나나를 키우지 못하는 사정은 그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달린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향해, 사토루의 죽음을 향해 달린다.


사토루가 요양원에 들어간 탓에 집 안에만 갇혀있던 나나는 기어코 “아무 때나 사토루를 볼 수 있”는 길고양이가 되고 만다. 그리고 눈치를 잘 살피고 있다가 사토루가 간병인과 외출을 하러 나올 때 맞춰서 사토루의 무릎에 앉는다. “사토루, 나 왔어.” 이때부터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다가 대망의 엔딩 장면에선 난리가 난다. 안 그러던 나나가 촉이 왔는지 병원문을 사정없이 긁어대고 이모는 병원에 동물을 들이면 안 되는데 또 기어코 나나를 들인다. 사경을 헤매는 사토루가 목소리를 쥐어짠다. “ありがとう(고마워).” 세상에. 안 울 수가 없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그냥 좋게 끝날 수는 없었을까?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나와 사토루의 끈끈한 가족애를 그려낼 수는 없었을까? 그런 편안한 영화를 기대한 내가 잘못인 걸까?


영화를 보면서 계속 시계를 봤다. 언제 끝나는가도 궁금했지만 언제 사토루가 죽는 지도 궁금했다. 사토루가 끝나야 영화와 나의 눈물 전쟁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함께 떠나는 행복한 로드무비를 기대하고 갔건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힐링하는 로드무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데, 왜 꼭 그 안에 ‘시한부’라는 드라마를 넣었어야 할까? 사토루에게서 저물어가는 냄새가 날 때 내 인내심과 기대치가 저물어가는 냄새도 났으리라.


Jade : 나만 고양이 없어서 슬픈 랜선 집사의 고양이 영화


‘나만 없어. 진짜 사람들 고양이 다 있고 나만 없어.’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퍼진 반려동물 관련 유머이다. 위의 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 사진까지 보니 격하게 공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지만, 랜선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려 노력한다. 매주 고양이 웹툰을 보고, 고양이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관람하고, 전시회에서 고양이가 그려진 각종 물건을 구매한다. 아직 부족하다. 이젠 고양이를 보러 영화관에 간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길냥이 나나와 함께 살던 사토루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나를 맡아줄 사람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사토루는 동물병원에서 교통사고로 다친 나나를 지켜본다. 화면은 나나의 입장에서 사랑스럽게 보는 사토루의 표정을 보여주는데, 꿀 떨어지는 눈빛이 화면 가득 차니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고양이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짓는 표정과 흡사하다.


영화 예고편 보러 가기▼

https://kakaotv.daum.net/v/397108148


생각이 짧았다. 고양이여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고양이와 여행. 실패하기 어려운 조합이자 딱 보기에도 힐링 영화처럼 보인다. 여행이라는 소재가 잘 드러날 수 있게 일본의 후지산, 꽃밭, 시골 풍경 등을 통해 예쁜 색감과 감성적인 영상미를 뽐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여행 리포트’를 조금 이상하다. 


먼저 주인공의 상황이 이상하다. 사토루는 착하고, 착하고, 착하다. 친구에게 늘 양보하거나 물가의 개를 구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당연하게 착한 사람에겐 행운이 가득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늘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사랑하는 것과 예상치 못하게 이별한다. 사토루는 그마저 행복했다 말하는 선한 인물이다. 지나치게 의연하고 해탈했다. 그의 태도가 이상한 게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행복해야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안타깝고 이상할 만큼 모순적이다.


역설적인 상황을 부각하는 소재는 노란색 꽃이다. 넓게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은 나나가 사라지면 찾을 수 없는 불안을 품은 장소이자 나나와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장소이다. 부모님께 들고 가는 노란 해바라기는 반 고흐가 떠오른다. 정신질환을 앓던 반 고흐는 노란색을 자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대표작의 제목이 ‘해바라기’이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삶의 활력을 잃지 않으려는 사토루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연속극에 나올 법한 사건인데 자극적이지 않다. 악역 대신 고양이가 있어 사건들이 주는 자극적이고 전형적인 느낌이 중화되었다. 교통사고처럼 영화 속 사건은 대부분 우연히 일어나고 사토루를 포함한 삼각관계는 흩날리는 벚꽃과 자전거를 탄 여자가 등장할 때부터 이미 클리셰다.   마침내 영화가 일일드라마의 꽃인 출생의 비밀을 꺼낼 때, 머릿속에 강렬한 대사가 스쳐 지나갔다.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면 뱉었을지도. 


가장 이상한 점은 초반부터 결말이 뻔히 보이는 영화에 울컥하는 자신이다. ‘고양이 여행 리포트’는 뻔한 모든 사건이 오직 신파를 향해 전개된다.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음에도 등장인물들이 지닌 따뜻함과 서로 나누는 교감에 마음이 짠하다. 어느새 스크린 안에서 밖으로 전달된 슬픔에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사토루와 나나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모두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관객한테 대놓고 울라고 만든 신파에 눈물을 흘리는 건 자존심 문제이다. 이번 영화는 완패다. 아, 자존심 상해.


 이상한 영화라고 설명했지만 나쁜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집사들에겐 자신을 사토루에 투영하며 자신의 반려묘와 나눈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랜선 집사여도 괜찮다. 지루할 때마다 등장하는 고양이는 쉴 틈 없이 귀여워서 관객들이 정신 못 차리게 하고 반짝이는 눈과 깜찍한 대사에 자연스레 홀린다. 이만하면 좋은 고양이(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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