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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y 13. 2019

쿨한 척하는 파리지앵들 보러 "어서 오게"

[무비패스] 영화'논-픽션(2018)'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작가 안은 : 책과 사랑의 공통점;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선 안 된다


모르겠다. 이 영화가 왓챠에서 호평을 받은 것이 내겐 의외일 정도로 생각보다 별로였다. 오죽하면 앞자리 남자분께서 얼마나 자주 뒤척이는지, 옆자리 여자분께서 어느 장면에서 저렇게 열심히 필기하는지 곁눈질로 구경하는 게 제일 흥미로웠을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 모르겠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불어의 향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불륜으로 범벅이 된 인물들의 관계를 내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건지. 나한테 이 영화는 왜 이렇게 별로였을까? 자막을 읽느라 정신이 없어서 정작 영화를 감상하지 못해서였을까? 그럼 이 영화가 영화가 아니라 책이었다면 더 재밌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본 작품은 영화였고, 영화이기에 보는 내 머리가 아팠다. 너무나 많은 대사 속에 인물 각자의 출판에 대한 견해가 어지럽게 섞여 있었고, 정신 놓고 보다 보면 어느새 비춰지는 인물 각자의 사랑,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각자의 사정을 모두 파악하느라 또 정신없었다. 특정 주인공이 없기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애정을 가질 만한 매력적인 인물은 찾을 수 없고, 그렇기에 어느 인물의 편에 서서 영화 속 상황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영화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참 단순하다. 영화가 속한 환경인 출판시장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입장임과 동시에 영화가 처한 상황인 ‘불륜’을 가장 혐오하는 인간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판시장 속 여러 계층들의 견해, 특히 전자책과 종이책, 작품을 대하는 작가와 편집자와 독자의 다양한 관점을 직접 사람의 입으로 듣자니 평소 궁금하고 찾아보던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음 장면에 불륜 커플의 정사가 등장하니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물론 이해는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얽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중 한 사람만 평생 사랑할 수 있겠는가. 다만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책임질 것을 법적으로 약속한 ‘부부’ 관계에서, 당신과 내가 서로 사랑함을 감추지 않고 만나는 동안 단 하나의 사랑이 될 것을 약속한 ‘연인’ 관계에서 생기면 안 되지만 생길 수 있는 ‘불륜’이라는 관계를 이 영화가 그려내는 ‘쿨한’ 방식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출판편집자 알랭은 톱스타 배우인 셀레나와 부부 사이지만 같은 출판사에 근무하는 디지털 마케터 로르와 불륜 사이다. 남편의 불륜 사실을 셀레나는 직감하지만 알랭에게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의 불륜을 묵인하고 자신도 불륜을, 그것도 남편의 친구이자 담당 작가인 레오나르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또 레오나르의 아내 발레리도 남편의 불륜을 직감하는데 일하느라 너무 바빠서인지 마찬가지로 묵인한다. 영화 후반부에 남편의 상대가 평소 서로 집에서 자주 저녁을 먹으며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네 친구라는 걸 알게 되는데, 남편에게든 동네 친구에게든 그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 부부의 별장으로 놀러가서 모르는 척 평소처럼 저녁식사를 한다. 저 상황에서 밥과 술과 유머가 오갈 수 있다니.


(스포주의) 이들의 불륜은 모두 차근차근 정리가 되는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알랭과 로르는 잘 지내는 듯하다가 갑자기 ‘오늘 당신이 헤어지자고 말할 줄 알았어’라면서 이별선물을 건네며 작별을 고한다. 셀레나-레오나르 커플도 이별을 맞이하는데, 그녀는 그가 자신을 소재로 책을 낼까봐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내 이야기는 책으로 내지마’라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얘기한다. 레오나르는 앞에선 알겠다면서 몇 달 뒤 아내에게 ‘안 쓰겠다고 하긴 했는데 벌써 글 쓰고 있어’라고 고백한다. 발레리는 그 말을 듣다가 대뜸 자신이 임신했음을 고백한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다.)


결국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왜 이 영화에서 책 얘기를 하다가 사랑 얘기를 했겠는가.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고뇌하는 출판시장의 이야기와 결혼과 불륜 사이에서 지지고 볶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왜 한 영화를 이뤘겠는가. 아, 책(글)과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구나. 책을 내고 싶은 사람도,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도 세상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알랭의 출판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개나소나 책을 내려 하지.” 어쩌면 그 말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들 한 번쯤 자신의 책을 갖길 원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은 문명을 발달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쇄술이 발달했고, 출판시장이 성장했다. 차곡차곡 성장한 출판시장은 오늘날에 이르러 1인 출판이 가능해지고, 누구든 인터넷 상에 글을 올려 나름의 전자책 출판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됐다.


굳이 출판사가 없어도 내 글을 누구나 볼 수 있게끔, 제약도 검열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글을 유통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자격은? 글의 가치는? 진정한 ‘책’의 가치는 어떻게 매길 수 있는 것인가? 새로운 환경에서 변화하는, 변화해야 하는 출판시장에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영화 속 사람들뿐 아니라 현실 속 많은 사람들도 영화에서 표현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문제는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전자책과 종이책 모두 각자의 매력과 시장가치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더 우의를 차지하는지는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특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불변의 진리는 누가 어떤 것을 가지고 글을 쓰느냐가 가장 중요하단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판단의 잣대는 누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하느냐에도 들이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레오나르는 자기 연애사를 소재로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다. 어느 창작물이든 창작자 자신이 투영될 수 있지만, 레오나르는 실제 인물을 소재로 사용하면서 누구나 소설 속 인물을 실제 인물로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집필하기로 유명하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만 수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이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선다. 과연 실제 인물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할 자격이 있는가? 어느 정도 각색을 했다지만 그건 작가 개인의 생각이지 않는가? 셀레나가 왜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면서 자신을 소설 소재로 쓰지 말라고 말했는지 납득이 될 정도다. 심지어 셀레나는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인데, 아무리 레오나르를 다시 없을 연인처럼 사랑했어도 그가 그녀를 다시 없을 꽃뱀으로 묘사하면 이미지가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는 쓰지 않겠다면서 셀레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또 쓴다. 발간이 되면 주위 사람들은 셀레나를 단번에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과연 그의 행동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책이 잘 팔릴 정도로 잘 쓰였다면 괜찮은 것일까? 그것을 논하려면 또 끊임없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다만 당장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다.


적어도 레오나르 같은 작가도, 레오나르 같은 연인도 되지 말자고.



Jade : 내가 예술가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도와준 영화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문득 새벽에 촉촉해진 감성자아가 출몰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직장상사에게 튀어나오려는 분노자아를 막느라 애를 먹는다. 영화를 볼 때도 여러 자아를 만날 수 있다. 예술적인 자아와 대중적인 자아가 싸우거나 어떤 날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자아가 압도적으로 모든 자아를 누른다.


‘어서 오게’


영화 ‘논-픽션’의 첫 대사이다. 영화는 디지털 변화로 혼란스러운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편집장 알랭과 작가 레오나르. 그리고 각각 배우, 정치인 비서관으로 일하는 아내들의 대화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다루고 있다. 알랭의 사무실 문이 열리고 레오나르가 들어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첫 대사와 동시에 짐작했다. 예술가 자아는 문이 열리는 순간 그대로 나가서 퇴근했다. 대중적인 자아만 남아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예측하지 못한 채 관람을 시작했다.


영화의 줄거리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https://kakaotv.daum.net/v/397532153


사무실에서 만난 알랭과 레오나르는 진지한 대화를 이어간다. 트위터 글에 대한 첨예한 대립 같은 이슈를 다룬다. 식사 자리로 넘어가도 대화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자연스레 레오나르가 새로 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책 내용을 두고 한참 동안 돌려서 말하던 둘은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레오나르 “그래서 출판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알랭 “난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출판은 어렵겠어.”


영화 내내 같은 모습이다. 레오나르 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출판 산업의 디지털화로 넘어가고 정치인의 이미지와 현장성을 두고 대립한다. 아, 알랭의 아내이자 배우 셀레나가 위기대처 전문가로 출연하는 ‘결탁’이라는 드라마도 말한다. 참, 깜박하면 빼먹을 뻔했다. 작가 레오나르가 쓴 소설이 픽션인지 갑론을박을 펼친다. 정말 마지막으로 가짜 뉴스에 대한 언급도 초반에 등장한다.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얽히고설킨 주인공들의 관계는 아직 설명도 못 했다.


쏟아지는 대사에 정신이 아득하다. 콘퍼런스, 만담, 토론회, 토크 콘서트 등 말로 하는 어떤 행사를 비교해봐도 이 영화보다 열띤 모습으로 이야기하지 않을 듯하다. 관객들이 영화에 나온 주제를 몇 개나 기억할지 퀴즈를 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이슈가 나온다.


그리고 대화는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일방적인 외침에 가깝다. 영화 초반 부부들은 소통이 없다. 드라마로 인해 자신이 소진되었다 고민하는 셀레나에게 알랭은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상황이 해야 하면 해야지’라고 성의 없는 대답을 내놓는다. 주제에 대한 토론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빙빙 돌기만 한다.


마치 흰색에 검은 글씨로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진 교수님의 수업 PPT를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낭독회처럼 그대로 PPT를 읽으실 때, 딱 그 느낌이다. ‘되게 똑똑하시다. 근데 오늘 수업 내용이 뭐지?’


소통의 방식도 답답한데 내용도 만만치 않게 답답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이다. 전자책에 거부반응을 보인 레오나르는 소설의 자료조사는 위키피디아로 했다며 자랑한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은 성매매로 길에서 체포되는 형국이다. 영화 전반에 인간의 거짓, 위선, 모순이 드러난다.


감독님은 소통의 부재와 모순을 영화에 모조리 담고 싶었나 보다. 주인공들과 똑같이 관객이 흡수하든지 말든지 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남발된 불륜을 평화로운 컨트리 음악 담아 꽃무늬 셔츠처럼 산뜻하게 포장하고 쿨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셨다. 이 또한 영화가 창대한 예술을 하는 방식이고 감독의 큰 그림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양성 측면에서 취향 차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지루한 강의를 끝까지 봤다는 사실이 대견하다. 상으로 한국의 전형적인 로코(로맨틱 코미디)나 할리우드의 히어로 영화를 볼 기회를 줘야겠다. ‘논-픽션’을 보고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예술가가 되려면 멀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예술가가 되지 못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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