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어느 날로 하여금 망자들이 눈을 번쩍 뜨기 시작했다. 사지가 찢겨 죽은 자는 팔다리가 다시 돋아나고, 늙어 죽은 자는 주름이 죽죽 펴져 돌아와 몇 해를 더 살았고, 병으로 죽은 자는 종기며 열꽃이 씻은 듯 나았다. 본디 단 한 번에 불과한 인간의 생이 별안간에 두 번이 된 셈이다. 죽음에서 돌아온 이들을 보고 일가친척이 놀라 자빠져 죽었다가, 그 또한 금방 다시 깨어나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해괴한 풍경이 방방곡곡 가득했다. 괴이한 일이었으나 이는 필시 성군이 종묘사직을 잘 모신 덕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지니 백성들의 두려움도 점차 가셨다. 간혹 죽었다 깨난 자들 중 과거 공부를 내던지고 팔도강산을 유람하는 한량이 되거나 옛 연정을 찾아 조강지처를 버리는 이도 있었으나, 대개는 다시 얻은 명줄에 감복하여 매사에 지성을 다하곤 했다. 매 끼 먹는 밥 한 그릇이며 매일 보는 여식의 댕기자락 같이 조그만 것마저 아름답게 여기게 되니, 그 태도가 실로 순후하여 두 번째 생을 여한 없이 살다 돌아가더라.
이때 평안도에 한 자매가 살았는데 성은 배씨요, 이름은 장화와 홍련이었다. 이들은 배 좌수와 장씨 부인의 쌍둥이 딸이었는데, 장화가 태어난 직후 홍련은 뱃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장씨도 그때에 함께 세상을 떠났는데, 의원이 죽은 어미의 배를 갈라 축 늘어진 아기를 꺼내 흔드니 숨이 돌아와 꺽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곧이어 부인도 소생하여 대강 꿰맨 뱃가죽 위로 아이를 안았으나, 세상 천지 누구나 두 개의 목숨을 쥐고 사는 형국에 홍련에겐 오직 하나의 삶만 남았음을 알고 딱한 마음에 목놓아 우는 소리가 담장 밖까지 들리더라.
내심 아들을 바라던 배 좌수는 딸자식을 낳다가 아내가 첫 번째 생을 허비한 것이 못내 서운하였으나, 차마 내색치 못하고 두 자매를 고이 키웠다. 장화는 성미가 씩씩하여 천방지축으로 냇가며 들판을 내달리며 컸으되, 목숨이 하나 뿐인 홍련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꽁꽁 가두어 길렀다. 홍련도 언니처럼 너른 세상을 보기를 은근히 바랐으나 바느질하다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엔 장씨가 기절초풍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 자매의 우애도 애틋하여, 장화는 대문 밖을 나서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장터에서 산 요깃거리며 마을에서 일어난 재미난 일화를 품고 와 나눠주곤 했다. 하루는 장화가 원추리 한 다발을 꺾어왔더니 홍련이 그것을 매만지며 "언니가 가져온 이 꽃은 한 번 지면 끝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만약 다시 피어날 내일을 기약했다면 이토록 진한 향기를 내뿜지는 못했을 것이라." 하니, 자신의 단명(單命)을 슬퍼하기보다 오히려 귀하게 여기는 기개가 있더라.
그러던 가운데 시운이 불행하여 장씨는 홀연히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정성을 다하여 약을 썼지만 증세가 날로 위중할 뿐이요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이내 부인이 숨을 거두자, 배 좌수는 기다렸다는 듯 새 아내를 맞이하니 그간 몰래 정을 통해온 기생 출신의 허씨라. 허씨로 말하자면 심지가 불량하고 험악하여 오직 좌수의 재물만을 탐해온 흉녀로, 시집온 날 이미 당당히 손을 잡고 들어온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이 장쇠였다. 눈치 볼 정실도 죽고 없으매 좌수가 이 사생아를 적자로 올리니, 허씨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집안의 권세를 독차지하였다. 허씨는 제 자식 앞길에 본처 소생들이 걸림돌이 될까 두려워하여 어린 자매를 손톱 아래 가시처럼 여겼는데, 규방 깊숙이 숨겨놓은 홍련은 건드리지 못하되 장화는 목숨이 두 개임을 믿고 “어차피 맞아 죽어도 다시 살아날 터인데 매 좀 친들 어떠하랴”며 머리채를 쥐어 뜯길 일삼았다. 배 좌수 또한 대를 이을 혈육인 장쇠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 딸들의 괴로움을 외면한 채 허씨의 흉측한 심사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의지할 곳 없는 장화는 매일 밤 동생 방에 찾아가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니 그 가련한 정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철석 간장이 녹아 내리는 듯하더라.
장화 홍련과 두어 살 터울인 장쇠는 무럭무럭 컸는데, 양친이 오냐오냐 싸고 도니 그 기고만장함이 이를 데 없었다. 허씨의 됨됨이를 물려받아 본디 성미가 사납고 심술이 독한지라, 수염이 채 나기도 전부터 마을의 아낙들을 희롱하거나 노복들을 걷어차며 패악질을 부려댔다. 장쇠에게 당한 이들이 좌수를 찾아와 하소연하여도, 장쇠는 도리어 큰소리치며 “두 번의 생이 있으니 한 번쯤 망령되이 행한들 누가 나를 어찌하렵니까. 설령 관아에 잡혀가 사형을 당한다 한들 깨끗한 몸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만입니다” 하니 그 방자함이 안하무인이더라. 장성한 장쇠는 갖은 구박 속에서도 아름답게 자라난 장화를 보고 급기야 짐승도 하지 못할 흉악한 마음을 품었으니, 어느 날 좌수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제 누이의 방에 침범하였다. 장화가 사력을 다해 항거하였으나 완력을 당해낼 길 없어 천륜이 무너지고 정조를 더럽히는 변을 당하고 말았더라.
장화가 이 수욕을 견디지 못하여 밤낮으로 눈물로 지새우되, 설상가상으로 몸에 태기가 비치니 이는 장화의 잘못이 아니요 오직 장쇠의 흉물스러운 소행이라. 그 억울함이 골수에 사무쳐 당장이라도 관가에 달려가 고하고 싶었으나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생모가 살아있던 시절 장화는 이곳 저곳 내달리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였으니, 이제 와 남동생의 죄를 고한들 품행이 방정치 못한 계집이 제 허물을 덮으려 장손 핑계를 댄다며 손가락질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함이라. 하물며 집안의 기둥인 아버지와 서슬 퍼런 계모가 오직 장쇠만을 끼고도니, 이 측은한 처녀의 목소리는 규방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질 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장화의 배가 불러옴을 허씨가 눈치채고 장쇠를 캐물어 일의 내막을 알았으나, 천인공노할 죄를 꾸짖긴커녕 도리어 쾌재를 부르며 장화가 외간 남자와 내통하여 가문을 더럽혔노라 배 좌수에게 읍소하니 그 간계가 실로 무시무시하더라. 좌수가 분노하자 허씨가 “이 일이 매우 중난하니 저 아이를 죽이지 아니하면 장차 문호에 화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고, 용렬한 좌수는 장쇠를 시켜 큰딸을 마당 구석 오래된 우물에 밀쳐 죽이라고 분부하였다.
깊은 잠에 들었던 장화는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장쇠에게 포박되어 아닌 밤중에 끌려 나가는데, 홀로 남겨질 홍련에게 작별 인사를 고할 정신도 없이 청천벽력 우물에 떨어지고 말았다. 불측하고 무정한 장쇠는 머리가 우물 바닥에 쿵 깨지는 소리를 듣고도 한참을 기다리다, 장화가 다시 살아나 끙끙거리자 큰 돌을 우물에 던져 기어이 누이를 두 번 죽이니 처절하고 끔찍한 노릇이었다. 무고한 소녀가 망측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외마디 항변도 못 한 채 단불에 나비 죽듯 사그라드니 이 얼마나 애달픈 일이랴. 장쇠 측은한 빛도 없이 홱 돌아선 찰나, 산중으로부터 큰 범이 내달아 꾸짖기를 “너와 네 어미가 죄 없는 자식을 무도하게 모해하여 죽이니 어찌 천지신명이 무심하겠느냐” 하고 달려들어 순식간에 장쇠놈의 두 귀와 한 팔, 한 다리를 씹어 먹었다. 호환을 입은 장쇠는 비명횡사하여 땅에 처박혀 있다 이윽고 새로 돋아난 파리한 사지를 끌고 기어와 대청마루에 널부러지니 그 몰골이 참혹하기 그지없더라.
장쇠 신음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 나온 허씨가 아들의 꼴을 보니 온몸은 피칠갑이고 의관은 이리 저리 찢겨있으니 깜짝 놀라 방성대곡하였다. 산중 범이 민가의 마당까지 들이닥쳤다 홀연히 사라진 것은 하늘이 내린 천벌임이 분명하건만, 우둔한 흉녀는 그 뜻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제 자식 명줄 하나가 사라진 것만을 원통해하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허씨가 좌수 앞에서 울고 불고 하는 요란한 기척이 홍련의 방까지 스미니, 요 근래 언니가 찾아오지 않음을 의아해하던 홍련이 귀를 창틀에 붙이고 대화를 엿들었다. 허씨가 “문란한 여식을 처치하려다 애꿎은 우리 장손이 범에 물려 단명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할꼬” 이르니, 배 좌수가 “그래도 그것을 우물에 던져 두 번의 삶을 모두 앗았으니 가문의 수치는 씻겼도다” 답하더라. 이 잔악한 밀담을 들은 홍련은 언니의 죽음을 직감하고 그 자리에서 속절없이 까무러치고 말았다. 허씨는 장화가 외간 남자와 통정하여 아이를 뱄노라 떠들었으나, 홍련은 일찍이 장쇠가 누이의 방 근처를 기웃거리며 음침한 눈빛을 번뜩이던 기색이며, 어느 날부턴가 장화가 남동생 이름만 들어도 사시나무 떨듯 하던 것을 떠올려 그 추악한 흉계를 단숨에 꿰뚫어 보았더라. 아버지는 계모의 혓바닥에 놀아나 제 아들의 죄악은 꿈에도 모른 채 죽은 언니를 욕하고 있으니, 눈물이 비오듯 하고 정신이 아득하여 제 방 바닥을 손톱이 빠지도록 긁다 다시 혼절하였다.
홍련이 가까스로 깨어보니 모두가 이미 태연히 침소에 든 다음이라. 피눈물을 삼키며 언니 죽은 곳을 찾아 마당으로 나가 우물 뚜껑을 여니, 과연 깊은 바닥에 월광을 받아 희끄무레한 장화의 시신이 있었다. 머리가 깨져 흘러나온 선혈이 검게 굳은 것을 빼면 마치 단잠에 빠진 듯한 얼굴이라, 홍련은 가슴이 터져나가는 듯 하고 일신이 떨려 언니 이름을 부르며 발을 굴러댔다. 홍련의 넋을 붙든 유일한 것은 장화 잠긴 우물가 옆에 처연히 피어 있는 원추리 한 웅큼이라. 평생을 병풍 속 그림꽃처럼 숨죽여 지내던 홍련의 눈에 돌연 서릿발 같은 안광이 서리니, 이는 곧 언니의 뼈 맺힌 한이 구천에 사무칠 것을 알고 제 단명을 불살라서라도 그것을 설원코자 작정한 이의 눈이었다.
홍련이 그 길로 망설임 없이 계모의 처소에 쳐들어가 궤 속에 꽂힌 길쭉한 바늘을 치켜드니, 그 끝에 어린 살기가 여느 대검 못지 않게 등등하였다. 잠든 허씨의 목울대 바로 아래를 단번에 찌르니 피가 분수같이 뿜어 온 이불을 붉게 적셨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거품 끓는 소리만 남기고 계모의 숨이 멎으매, 홍련은 그 시신을 언니가 잠긴 우물가까지 질질 끌고 가더라. 목 가운데 뚫린 구멍이 오그라들고 이내 허씨가 다시 눈을 뜨니, 홍련은 “다시 얻은 명줄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내 언니의 얼굴을 마주하고 사죄하는 일이오” 하며 우물 안으로 밀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땀이 주룩주룩 쏟아져 속곳까지 적시는데도 홍련은 귀신이라도 들린 듯 괴력이 솟아, 이번에는 헛간에서 나무 할 때 쓰는 도끼를 찾아 들고 장쇠의 방으로 걸음을 옮기더라.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남동생의 갓 자라나 연약한 다리를 가차 없이 내리치니, 장쇠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끊긴 허벅지를 붙들고 바닥을 굴러댔다. 홍련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호령하니, 장쇠는 다리가 뜯긴 와중에도 “나는 이미 범에 물려 죗값을 다 치렀거늘 어찌하여 누이가 나를 또 단죄하시오” 지껄이더라. 홍련이 이에 기가 막혀 달궈진 인두를 가져와 잘린 단면을 지져 지혈하니, 장쇠가 눈깔을 뒤집으며 차라리 죽여 달라 애걸하였다. 소란에 놀라 뛰어나온 배 좌수가 이 아비규환을 보고 이것은 내 딸이 아니라 요괴로다 절규하며 관아로 달아나거늘, 홍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쇠의 남은 팔다리를 차례로 베고 지지기를 반복하며 “네가 믿던 두 번째 생이 도리어 네 지옥이 될 것이니, 부디 이 갈기 갈기 찢긴 몸뚱이로 죽지 말고 천수 만수 누리시오” 읊조리니 그 독기가 범보다도 무섭더라.
배 좌수의 곡성을 듣고 부사와 포졸들이 몰려오니,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홍련의 형색이 진노한 귀신의 형상이라. 사지가 토막나 떼굴떼굴 굴러 나온 장쇠가 당장에 누이를 쳐 죽이라고 악다구니를 쓰거늘 홍련은 “혀도 마저 자르지 못한 게 통탄스럽다”고 일갈하고는 단정히 무릎을 꿇었다.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정경에 포졸들은 벌벌 떨고 오직 부사만이 이 참상의 곡절을 물으니, 홍련이 비로소 담담히 그간의 전말을 고하였다. 천하에 이런 궁흉극악한 일이 어찌 있냐며 경악하는 부사에게 홍련이 답하되 “나는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두 번째 삶이 없었던 몸이니, 오직 한 번뿐인 수명을 걸고 내 무엇 하러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하니 그 말이 일리가 있더라. 홍련이 제 말이 의심스럽거든 우물 뚜껑을 열어 확인하라 청하매, 관가 장정들이 그 명을 받드니 과연 장화와 허씨의 몸이 그 안에서 처참히 엉겨 있었다. 허씨는 허리가 종이 접듯 부러진 채 온몸이 뒤틀려 장화의 얼굴과 코끝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가느다란 숨을 붙들고 있다 얼굴에 햇빛이 내리쬐자 끽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뜬 채 죽어버렸다.
뒤이어 관아에서 재판이 열리매, 이 참변의 근원은 간악한 허씨와 장쇠이되 허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장쇠는 사지가 잘린 불구가 되었으니 더는 죄를 묻기가 무색할 따름이라. 배 좌수는 큰딸의 살해에 가담한 허물이 있으나 그 진상을 몰랐던 무지함을 참작하여 평생토록 죄인된 마음으로 장쇠를 수발하며 살라 판결하였다. 홍련은 계모를 죽이고 남동생을 해한 죄로 극형에 처함이 마땅하나, 그 복수가 언니의 원한을 풀기 위한 결단이었음을 감안하여 목숨만은 부지케 하되 고향 땅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 유배를 명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평생 방 안에만 갇혀 지내던 가녀린 소녀가 연고도 없는 타향에서 홀로 어찌 살겠냐며 필시 객사하리라 수군댔으나, 홍련은 언니 장화가 내달리던 샛길을 따라 원추리 한 아름을 꺾어 들고 의연히 길을 떠나더라. 일찍이 장화가 홍련을 대신하여 세상 빛을 보여 주었듯, 이제 홍련이 언니를 대신하여 마침내 단명을 피워내니 그 뒷모습이 차마 돌아보지 못할 만큼 고요하고 우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