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의 목소리

봄에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요정을 조심하세요

by 송옥돌

봄이다, 요정이 온다.


코끝이 알싸해지고 재채기가 나오는 계절이 되면 우리 집에는 요정이 찾아온다. 세탁기 세제 투입구에 걸려있기도, 협탁 아래에서 기어나오기도, 샤워실 하수구 머리카락 트랩에 붙어 있기도 한 축 처진 몸들.


처음 요정을 발견한 날을 기억한다. 창문 틀에서 꿈틀대던 거무스름한 덩어리. 파들파들 떨리는 날개의 형체만 보고 악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집 밖으로 뛰쳐나갔더랬다. 나방이나 풍뎅이, 최악의 경우 바퀴벌레일 수도. 당근에 ‘벌레 잡아 주실 분?ㅠㅠ 사례 3만원’ 이라는 글을 올려봤지만 새벽인 탓인지 수십 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었고, 이 깊은 시간에 민폐를 끼칠만한 사람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근처 PC방에서 몇 시간이고 게임을 하며 공포를 잠재우다, 충전 잔액이 다 떨어졌을 때쯤 연패에 얻어맞아 얼얼한 정신으로 현관문을 다시 열었다.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날개가 더 이상 사삭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도 가까이 가기 무서워, 멀찍이 서 카메라로 확대해 본 그 형상엔 얼굴이 있었다. 그것도 꽤나 고운 얼굴. 반투명한 젤리 같은 앞통수에 새겨진 이목구비는 귀여운 외계인 캐릭터처럼 호감형이었고, 자세히 보니 몸통도 인간의 윤곽을 하고 있었다. 쭉 뻗은 가냘픈 팔다리에는 바비 인형의 것과 같은 자그마한 손발이 붙어 있었으며, 먼지에 뒤덮여 본래 색을 잃은 허리는 말벌처럼 홀쭉 들어가 있었다. 어렸을 적 비디오 테이프로 돌려 보던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이 겹쳐 보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체가 아닌 시체가 되었다. 휴지 뭉텅이에 감싸 변기에 내려버릴 수도, 쓰레기통 저 아랫쪽에 쑤셔넣을 수도 없는 주검. 놀이터 화단에라도 묻어주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비닐 장갑을 끼고 날개 끝을 잡자마자, 요정은 후두둑 부서져 내렸다. 순식간에 회색 모래로 사그라진 시신. 그 흔적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바라보다 핸디 청소기로 빨아들여 버렸다. 방금 목도한 신비에 대한 경외감과, 내가 먹고 자는 방 한 켠에서 죽음이 일어났다는 충격에 빠진 채로. 보다 존엄한 처리법이 있을 것 같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아무도 나의 요정 목격담을 믿어주지 않았다. 몇 안되는 친구도, 직장 동료도,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조차도. 믿지 않아도 상관없긴 했다. 남들의 의견이야 어떻든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그 환상적인 존재를 보았으니까. 지금껏 어떤 인류도 겪은 적 없는 특별한 초자연 현상이 내 손바닥 안에서 일어났으니까. 이 고양감을 굳이 세상과 나눌 필요는 없지.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 내가 본 것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싶은 오기가 남아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음 해에도 요정이 찾아왔다. 꽃샘추위가 유독 매서워 이불을 덮어도 입김이 나오던 새벽에. 지난 번 요정의 딸인지 자매인지 얼굴이 꼭 닮아 있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이번에는 숨이 붙어 있었다는 것. 날갯짓을 하지도 마법가루를 뿜어내지도 않았지만, 흐트러진 사지가 간헐적으로 경련하며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얼른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그것을 수건으로 감싸고 약지로 온몸을 문질러주었다. 얼어붙은 새끼 고양이를 이렇게 되살리는 영상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분 뒤 요정은 쌀알만한 눈꺼풀을 끔벅이더니 고요히 멈춰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파스스 바스러진 가루를 모아 약을 포장하듯 종이 위에 흘려넣고 고이 접은 뒤 동네 하천에 가져가 뿌려주었다. 간단한 장사(葬事) 가 끝난 뒤 나는 증거 사진을 여기 저기에 보내고 올려봤지만, AI로 조작한 이미지 아니냐는 비웃음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 다음 해에도, 다다음 해에도. 봄이 찾아오면 보물찾기 하듯 어디선가 요정이 나타났다. 마치 제비가 같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계속 둥지를 트는 것처럼. 나의 작은 집이 요정들 사이에서 임종을 맞이하기 알맞은 곳으로 소문이 나기라도 한 건지. 나는 이 연약한 생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최장 기록은 일주일이었다. 작년, 개나리 몽우리가 터져나가던 시기에 찾아온 빨간 머리의 요정. 천장 모서리에 매미처럼 붙어있는 채로 발견된 그것은 나의 시야에서 숨으려는 듯 가구에서 가구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다니곤 했다. 나비의 유려함과 비행기의 강력함이 한데 섞인 황홀한 비행. 요동치는 생동감에 매료되어 휴대폰 영상으로 간직하려 했지만, 보름달이나 일몰의 웅장함도 담아내지 못하는 렌즈가 홀로그램처럼 빛나는 그 영롱함을 포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요정은 점점 쇠약해졌다. 오 일 째에는 내가 택배 상자로 대강 만들어준 우리 안에만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지, 모든 유기체는 무언가를 먹어야지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지. 면봉에 우유를 적셔 입가에 대주기도 하고, 머리맡에 잘게 다진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놓아주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삼키지 않았다. 칠 일째 되던 날 새벽, 힘없이 누워있기만 하던 요정은 박스에 붙어있던 벼룩파리 한 마리를 번개 같은 속도로 붙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앙증맞은 턱을 우물대며 한참 그것을 씹더니, 그 날 저녁 갈색 액체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기적이 눈 앞에서 소멸해버리는 상실감을 반복하며 나는 지쳐갔다. 요정을 마주할 때의 희열보다, 그 경이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쓰라림이 더 커졌다. 결국,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봄엔 요정의 아름다움을 영구히 보존하기로. 언제든 꺼내 바라볼 수 있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오직 나만을 위한 박제로 재탄생 시키기로.


동지가 갓 지났을 때 준비물을 미리 주문해 두었다. 미니 UV 램프, 레진액, 사각형 모양의 실리콘 틀. 몰드는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생각보다 작았지만, 요정을 좀 구겨 넣으면 대충 맞을 듯 싶었다. 어떤 형태로 넣어야 할까? 아기처럼 웅크린 포즈? 아니면 팅커벨처럼 두 다리를 교차한 포즈? 팡팡 터지는 행복한 상상 속에서, 벌써 화석의 매끄러운 감촉이 손아귀를 맴도는 듯 했다.


나의 조급함을 눈치 채기라도 한건지, 늦은 봄이 되어도 요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거리엔 슬슬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출몰하고, 떨어진 벚꽃잎이 아스팔트를 덮었다. 나는 집안 구석 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매일을 보냈다. 침대 아래, 전자레인지 안, 책장 사이… 어딘가 끼어 있을 조그마한 몸뚱이를 찾아내기 위해서. 집착이 병리적 수준으로 번지기 직전, 드디어 올해의 요정이 나타났다. 자길 기다린 걸 다 안다는 듯, 방바닥을 덮은 러그 정가운데에 떡하니 대자로 누운 모습으로.


환호성을 내지를 뻔한 것을 겨우 참으며, 나는 서둘러 책상 위에 작업 공간을 차렸다. 혹시라도 도망갈세라 시선은 바닥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그것에게 고정한 채로. 몰드에 레진액을 얕게 채우고 동봉된 이쑤시개로 기포를 콕콕 찔러 없앴다. 잠시 후 치뤄질 의식을 생생히 기록하기 위해 인스타 라이브를 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으로 켠 라이브라 그런지 모든 지인들에게 알림이 간 모양이다. 무슨 상황이냐, 실수로 눌렀냐, 오랜만이다… 올라오는 댓글을 흝으며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설명했다. ㅋㅋㅋㅋㅋ로 가득 찬 창. 대망의 메인 재료가 등장하면 이들도 말을 잃겠지.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춘 채 요정에게 다가갔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면밀히 살펴보니 흉곽은 아직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 나는 아주 신중히, 감질 날 정도로 천천히 손을 뻗어 눈부신 날개 끝을 집었다. 혹시라도 찢어 먹지 않도록 손끝의 감각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혹시 이 포획의 동작이 요정을 자극하진 않을까 가슴이 두근댔지만 다행히 어떤 반항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딱 칫솔 정도 무게의 몸을 조심스레 들어올려, 얼음 호수처럼 투명하고 얇은 레진 바닥 위에 살짝 얹어두었다.


눈을 뜬 상태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생각하며 이쑤시개로 툭툭 쳐 모양을 다듬어줬다. 수많은 포즈 후보가 있었지만, 의외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이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무릎을 세우고 벽에 기대 앉아 있는 무방비의 가녀린 신체. 구겨진 날개를 살짝 펴고, 얼굴이 잘 보이도록 고개를 돌리는 정도의 조정만 거친 후 나머지 레진액을 죽 짜서 부었다. 무색의 점성 있는 액체가 요정의 엉덩이, 무릎, 어깨를 지나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


몰드가 가득 차고, 황금빛 머리카락이 맑은 유동체 안에서 풀어져 느리게 흔들린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UV 램프로 레진을 구울 차례. 설명서에는 5분 이상 경화시킨 후 충분히 식혀 분리하라고 쓰여 있었다. 손전등을 닮은 램프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려온다. 두려움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대한 소유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설렘으로. 단단히 변해가는 레진이 내뿜는 접착제 냄새가 싱그러운 향기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봄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매번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그 계절을 이번에야말로 꽉 움켜쥘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잘못 본 것 같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던 합성수지 속에서 뽀글뽀글, 거품이 올라온다. 분명히 기포는 완벽하게 제거했는데? 눈부시게 새파란 램프의 빛을 더 깊숙히 비춰봐도 공기 방울은 더 늘어나기만 할 뿐이다. 미완의 보석을 들여다보려고 허리를 숙인 그 때,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는 그것과 눈이 마주친다.


섬뜩한 안광을 내뿜는 그것. 온 힘을 다해 어깻죽지를 파닥이는 그것. 반쯤 굳어 물렁한 얼음을 깨고 날아오르려는 그것.


요정은 수족관 속 인어처럼 느릿한 속도로 부상한다. 정수리부터 시작해 얼굴, 가슴, 배, 다리가 끈적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가짜 송진을 뜯어내려는 듯 세차게 날개를 턴다. 끓는 레진 방울이 피부에 흩뿌려지고, 끓는 레진 방울이 피부에 흩뿌려지고, 작열하는 고통이 파고든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망설임 없이 내 목으로 달려든다.


심장이 뛰는 박자에 맞추어 묽은 피가 경동맥을 뚫고 솟구친다. 귓가에 후루룩 쩝쩝 소리가 들린다. 필사의 힘을 다해 생명을 먹어 치우는 소리. 쿵, 나도 모르는 새 내 상체가 책상 위에 엎어진다. 볼에 닿는 차가운 감촉과 그 위로 고이는 피비린내. 어떻게든 요정을 붙잡으려 팔을 허우적대 보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점차 몽롱해진다.


꿈에 빠져들 때처럼 흐려지는 시야 끝에서 나는 보았다.

시뻘건 양분에 젖은 나의 찬란한 요정이 창문 틈을 비집고 날아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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