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태훈 Aug 15. 2022

레드필이란 수식에 대해

이념에 도구에 레드필을 붙이는 낯간지러움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때 '레드필'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쓴다. 그런데 나는 TERF든 PUA에서 파생한 매노스피어 계통의 담론에서 사용한 것이든 낯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다. 매트릭스의 네오를 생각해보라. 그에게 레드필로 알게 된 현실이란 것은 철저히 물리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중력과도 같은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다. 


남용되는 레드필

 그럼 인터넷에 떠도는 레드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보통 다음의 성격을 가질 때 레드필이란 수식을 사용한다. 1) 그것이 기존 사회적 통념과 조화하지 못하고 충돌을 일으킴 2) 진실에 접근하는 게 행복을 주기보다 고통을 동반한다. 뭐든 이 두 가지를 만족만 한다면 레드필이란 수식을 참 쉽게 쓰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깨달았다는 '현실' 또는 '진실'이라는 것이 겨우 '~에 의하면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정도의 현실 분석과 행동 양식에 대한 제시라는 것이다. 


절대 절망


네오가 본다면 코웃음 칠일이다. 네오의 현실은 물질 법칙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절망감이다. 레드필을 자처하는 이론가들은 기계문명만큼 확고한 기반 위에 서있는가? 나는 요즘 매노스피어의 거친 담론을 아주 흥미롭게 바라보므로 그들의 사례에서 이 낯간지러움을 풀어보고자 한다. 예외적인 케이스에 대해 이들이 설명하는 방식을 보면 이 레드필 이론가들의 부실한 기반을 알 수 있다. 


매노스피어의 레드필

 그들의 레드필 이론에선 주체적이고 남성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여자는 없다고 보며 하이퍼거미에 본능에 지배된 사냥꾼 같은 여자들만 존재한다고 간주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그렇지 않은 여자가 말뿐만 아니라 명백히 자신의 진정성을 삶으로 증명할 때다. 이때 이론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자가 컨디셔닝이 아주 잘 되어있다", "SNS가 발명되기 전에 만났던 사람이라 그래", "여자가 남자를 시골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만나서 그래" 난 이 설명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런저런 변명을 붙일 정도로 이론이 모든 현실을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스스로 "레드필은 칼처럼 자를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스스로 빠져나갈 구석을 꾸준히 어필해야 하는 이론이라면 그것에 '레드필'같은 수사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부끄러움

 역사를 보면 생산양식과 각 개체의 심리적 OS가 변함에 따라 인간의 인지구조와 몸은 손바닥 뒤집듯이 다르게 해석되었다. 시계를 발명하면서 변비도 발명되고 대량생산은 명품을 갈망하게 만든다. 구원에 대한 믿음이 중세의 인간의 질서의 의식을 결정지었고 카톨릭이 부(wealth)의 축적을 부정할 동안 기독교는 부를 쌓는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욕망의 수도꼭지를 개방했고 이것은 현대인간의 의식의 질서를 결정지었다. 다음은 무엇이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때가 되면 새로운 변명을 붙여야 할 이론에 불과한 것을 네오가 격어야 했던 절대적인 현실을 빗대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네오를 모욕하고자 하는 것이거나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채 선동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TERF의 레드필이든 매노스피어의 레드필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을 잘 설명하는 역사가 짧은 프레임에 불구하다. 이론을 주창해서 관심을 얻고 돈을 버는 주체가 아니고서야 각 개인이 겨우 이 프레임 하나에 목숨을 걸거나 물리법칙마냥 섬길 필요는 없다. 프레임 하나에 지배당해 현실에서 불 지르고 다니거나 삶의 가능성을 접어두는 건 문화 대혁명 시기의 중국인이 마지막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가에서 시작해서 행동가들로 인해 증명받는 이 이론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널리퍼졌다. 이미 현대인들은 불 지르고 다니는걸 즐기는듯하다.


 

결론

 기존 프레임을 완전히 깨부수며 속 시원하게 해 주는데, 그게 단지 사회와 부조화한다는 이유로 진실이 될 순 없다. 짧은 역사의 해석을 물리법칙으로 치환하지 않도록 겸손할 필요가 있다. 나는 히피 운동과 문화 대혁명의 사례가 정말 교과서에서 한 달은 투자해서 배울만한 재밌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들은 객관적이고 진실에 대한 겸허한 태도가 없을때 인간의 열정은 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레이 달리오: 변화하는 세계질서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