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_성장 상향 곡선! 현재 진행 중

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by 땡자


"엄마, 졸려서 안 되겠어. 믹스 커피 한잔만"

"오케이. 그런데 요즘 커피를 자주 마시는 듯. 횟수 조절 좀 하시오."


편노가 시험기간 중 나에게 부탁하는 품목 중 하나, 커피 심부름이다. 나는 편노에게 커피를 타 주면서 '스마트폰이나 패드 볼 시간에 시험공부하면 굳이 커피가 필요 없을 텐데. 편노 위장아!! 네가 고생이다.'라며 차마 편노에게 대놓고 크게 말하진 못하고 조용히 소심하게 웅얼거린다.




일반 중학교 진학 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되기보다 그 경험을 통해 편노가 성장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편노와 나 그리고 남편은 중학교 진학 때와 달리 고등학교 진학은 아무 걱정 없이 일반 고등학교로 결정할 수 있었고, 더불어 편노의 아주 평범한 성적도 고등학교 진학 결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편노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같은 동네이긴 하지만 교통이 조금 불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편노에게 사설 셔틀을 신청해 등교하면 편할 것 같다고 했지만 대중교통 러버인 아이는 본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아직도 왜 셔틀을 타고 등교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는 이해할 수 없다.) 굳이 버스를 타고 등교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 한번 다녀봐라. 한 달만 지나면 셔틀 신청해 달라고 할 텐데.'라고 생각하며 편노가 하고 싶은 대로 뒀다.


편노는 '왜 여기로 이사 온 거야.', '버스 배차 시간이 너무 길어!' '아 피곤해.'라는 말을 거의 매일 아침 하긴 하지만 입학 후 7개월이 다 되어가는 10월 현재까지 셔틀을 타고 싶다거나 나에게 라이드를 부탁하진 않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편노만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오기를 부리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자기만의 생각 또는 룰을 정하고 지키려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아이가 어릴 때는 예쁘지도 귀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았는데 17살 코 밑이 시커멓고 여드름이 쏟아져내린 그 얼굴이 너무 예뻐 보이다니 나도 참 이상하다.


중학교 내내 학교 행사 영상과 포스터 제작을 도맡아 했던 편노는 고1이 되자마자 나와 남편에게 '영상'분야로 대학을 가고 싶다며 H대학, K대학, S대학이 목표라 했다. 현재 편노의 성적으로는 언감생심. 하지만 나와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부모가 가라는 학원에 가고 학교에서 보는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점수에 맞춰 자신의 미래를 정하려고 하기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편노의 생각이 기특해 보였다.


"좋아!! 꿈은 크게 가져야지!"

"목적지를 모르고 출발하면 우왕좌왕하는데 너는 목적지를 정했으니 네비를 잘 찍어서 그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해보자."

"그래! 네가 목표 대학에만 입학한다면 네가 원하는 '각 그랜져' 사줄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아빠, 엄마에게 알려줘."


남편과 나는 편노의 꿈에 조건 없는 지지를 약속했다. 편노의 성적과 관계없이 나는 혼자 3년 뒤 H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주책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 각 그랜져 (1세대 그랜져 2.4): 현대자동차에서 1986년 7월 24일에 출시되어 1992년 9월까지 판매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선이 많아 각이 져 보인다고 하여 '각(角) 그랜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편노는 스스로 정한 진로를 위해 입학 당시 도전하려 했던 학생회장 선거를 포기하고 방송부를 지원했다. 나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방송부원이 된 편노는 선배들 모의고사 듣기 평가를 위해 7시까지 등교해 준비를 했고 체육대회, 축제, 백일장 등 행사가 있을 때는 밤을 새워 포스터를 만들었다. 가끔 타 학교 친구의 영상 의뢰로 거금 '만원'을 받고 제작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편노가 제작한 영상과 포스터를 직접 확인하지 못해 '품질'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 작업을 하는 동안 편노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아이 얼굴에 고스란이 나타났다.


사실 편노의 성적은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아주아주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1학기 중간고사 성적보다 기말고사 성적이 조금 나아졌고, 1학기 성적보다는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또 아주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 예전에는 시험을 봐도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었던 아이가 점수 때문에 속상해하기도 하고 몇 등급이 나올지 걱정을 한다.


그렇게 편노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성적도 생각도 현재 상향 곡선 진행 중이다.


편노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 인성이 더 좋은 아이, 생각이 더 깊은 아이, 잘 생긴 아이, 키 큰 아이.... 더 나은 아이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나와 함께하는 아이는 편노이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충만하다.



며칠 전 편노는 미리 계획한 대구-> 울산-> 부산 당일치기 출사를 다녀왔다. 하루 동안 세 도시를 다녀오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라 나는 새벽 6시에 편노를 수서 SRT역에 내려줬다. 해가 뜨지 않는 어두컴컴한 역에 내려주면서 마음속으로는 엄청 걱정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잘 다녀와.'라는 말만 하고 바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소리 내어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기도하며 육아의 목표는 '자립'과 '독립'이라는 오은영 박사의 말을 되뇌었다.


오후가 되자 편너에게 전화가 욌다.

‘엄마! 바가를 보니 답답한 마음이 뻥 뚫려’ 기분이 좋아!‘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






*감사한 일*

누구나 힘든 첫 아이 키우기. 어떤 누구도 경험한 적 없기에 더욱 힘든 첫 아이 육아.

그 과정이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나는 첫 아이 육아를 통해 부모가 항상 같은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기다리고 믿어준다면 아이는 성장 상향 곡선을 그리며 커 나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매일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준 나의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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