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8)
편노가 일반 중학교 입학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때보다 더 긴장했으며 매일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다녀왔습니다.’
‘어, 별일 없었어?’
‘네’
‘반 친구들은 어때?’
‘그냥’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내 질문에 매번 별일이 없다고 얘기하는 편노를 믿지 못했지만, 내가 아이를 24시간 따라다닐 수 도 없는 일. 답답하지만 그냥 그렇게 1학기가 지났고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편노가 같은 반 친구와 자동차 전시회를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 언제?’
‘같이 갈 친구 이름이 뭐야?’
‘어디 살아? 어느 초등학교 나왔어?’
‘공부는 잘해?’
편노는 내 질문에 그게 왜 중요하냐는 듯 쳐다보며 친구 이름만 달랑 알려주었다. 편노가 친구와 함께 어디를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 거의 1년 만이었다. 나는 속으로 ‘드디어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은 건가? 제발 편노와 잘 맞아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괜히 기분이 좋았지만 나는 마음과 다르게 이상한 질문들을 해댔다. 다행히도 교통수단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편노와 새로운 친구는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는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새로운 친구 덕분에 편노는 중학교 1학년 생활에 활기도 생기고 안정도 되었지만 그렇다고 예전의 일들이 같은 초등학교 졸업생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진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가끔 편노가 예민해지거나 거칠어질 때면 나는 ‘사춘기라 그런 거야’라며 나 스스를 다독였지만 속으로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척 긴장을 했었다.
2019년 겨울,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빠르게 전 세계로 퍼졌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명과 일상생활을 위협했고 급기야 2020년 평범했던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전국 대부분의 학교 수업이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고 우리 집 세 아이들도 모두 집에서 학교 수업을 받았다. 학교를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일찍 오게 될 줄 그 누가 상상했을까. 평범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변해버려 다들 허둥지둥했지만 금세 주어진 환경에 빠르게 잘 적응했다. 특히 편노의 표정이 많이 편해 보였다. 처음엔 ‘원래 집돌이라 집에만 있으니 좋은가’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학교에 등교하면 어쩔 수 없이 매일 마주쳐야 하는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편노에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아도 그저 스쳐 지나치는 것조차도 버거웠던 편노에게 코로나 19는 세상을 구하는 어벤저스 같은 존재였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등교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로 인해 그 아이들을 매일 보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비대면 온라인 수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편노와 그 아이들에 머릿속에서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엷어졌는지 아님 새로운 중학교 생활과 친구들에게 집중하느라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는지 굳이 누군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한 그때 그 일은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이별을 뜻하지만 편노에게는 더 할 수 없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주는 말이었다.
코로나 19로 학교 수업 방법이 변화된 것처럼 친구들과 노는 방법도 달라졌다. 직접 만나지 못하니 ZOOM, DISCORD와 같은 온라인 프로그램에 접속해 영상으로 만나 놀기 시작했다. 이 변화된 놀이법은 축구와 같은 외부 활동보다는 실내 활동을 즐기는 편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편노가 좋아하는 노래들 모아 라디오처럼 들려주기도 하고 직접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편집해 친구들에게 재미를 주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소통하다가 우연찮게 반 친구 몇 명의 고민 들어주었고 그게 소문이 났는지 어느새 편노에게 상담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내 경우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줘도 너무 자주 오래 들으면 급속도로 피곤해지는데, 편노는 나와 달리 그 자체를 즐겼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1년이 다 되도록 비대면 온라인 수업은 지속되었지만 코로나 19는 종식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전면 비대면 수업은 점차 대면 수업으로 비중을 늘려갔다. 비대면 수업 기간 동안 편노의 마음은 평온해졌고 자존감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런 편노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 대한 믿음이 더 단단해졌는지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이 찾아와도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간 편노는 큰 문제없이 잘 지냈고 특히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선생님들과 친해졌고 교실보다 교무실을 더 편하게 생각했다. 편노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학교 대소사와 관련된 포스터와 영상을 만들며 바쁜 날을 보내면서도 얼굴에는 생기가 돋았다. 나는 그런 편노에게 ‘학교에서 월급 주냐?’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 19로 우리의 일상은 잠시 멈췄지만 그 멈춤 덕분에 편노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었고 바닥으로 내려갔던 자존감이 조금씩 차올랐다. 그렇게 편노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수도자가 오랜 시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나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깨달음을 얻는다. 엄마가 아이를 믿고 기다린다면 그만큼 아이는 단단하게 성장한다.
*감사할 일*
코로나 19로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불편해졌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감사한 일들도 많았다.
잠시 멈춤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졌지만 그 할 일들이 없어져서 생겨난 여유 시간을 통해 우리 가족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편노는 나름 과거를 치유할 수 있었고 쌍둥이 딸들 또한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그녀들 또한 편노만큼 우여곡절이 많다. 언젠간 풀어놓아야겠지...)
코로나 19야! 그 동안 고마웠어. 그런데 이젠 너도 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