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세_진통과 성장

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7)

by 땡자


편노는 곧 중학교 진학을 앞둔 13.5세였다.

어느 날 중학교 진학 수요조사 가정통신을 가져왔고, 그때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학군 내 어느 중학교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설문조사일 뿐이고 사실 1순위 답은 정해져 있는데, 나는 선뜻 그 중학교 이름을 쓰지 못했다.


나 혼자 심각했고 망설이고 고민했다.

그 1순위 중학교는 A 중학교로 우리 동네 초등학생 부모라면 당연히 A 중학교 지원을 한다. 그 이유를 간략하게 적자면,


A 중학교

장점: 집에서 가장 가까움/ 학교 분위기가 좋음/ 특목고 진학률이 높음/ 후드티와 집업 점퍼가 교복임/ 급식이 타 중학교에 비해 맛있음

단점: 딱히 없음


많은 아이들이 1순위로 A중학교 지원하기 때문에 중간에 전학 온 아이들은 1순위 중학교 입학이 안될까 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편노의 경우 6년 동안 한 초등학교도 다니기도 했고 다자녀 특혜로 원하는 중학교 입학이 가능했기에 A중학교 진학은 100프로 확정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문제였다. 편노와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던 아이들 대부분이 A중학교 진학을 할 텐데, 그럼 초등학교 내내 편노가 겪었던 일들이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까? 아니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더라도 편노가 그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그 자체로 힘들어하거나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특히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잘 지내던 아이들도 힘들어한다는데, 다시 내 아이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면 어떡하지?


나는 하루 종일 나의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 온갖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편노와 나 스스로 그 상황의 속 비극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달랑 종이 한 장의 가정통신문이 500 페이지가 넘어가는 장편 소설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읽기 힘든 장편소설 같은 상황을 회피하고자 술을 마시고 자버렸을 텐데, 이젠 그런 상황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면 일단 현관 밖으로 나가 걷는 습관이 생겼다. 정해진 루트 없이 마냥 걷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나도 모르게 멈추고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단어의 힘일까 14년 동안 편노를 키우면서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그리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천천히 실마리 풀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 가정통신문 내용과 편노의 진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공립학교 대신 대안학교 진학은 어떨지 남편의 의견을 물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남편은 내 생각도 나쁘지 않다며 집에서 등교 가능한 대안학교부터 찾아보자 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는 양육의 가치관과 방향이 같다. 남편과 함께 우리가 사는 지역 내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그중 몇 곳을 정해 입학 상담과 설명회 신청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편노의 일로 많은 도움을 주신 6학년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담임선생님은 일반 중학교 대신 대안학교 진학을 고려 중이라는 내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며 조심스럽게 선생님 의견도 이야기해줬다. 선생님 생각에는 편노는 보통 아이보다는 언어능력이 남달라 또래 친구들과는 소통이 힘들었던 것 같고 그래서 유독 학교 선생님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편노가 눈치가 없어서 바쁜 선생님들을 귀찮게 한 것 같다고 죄송하다 하니, 의외로 선생님들도 어린 편노와 대화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어른들과 대화가 편한 편노이기에 초등학교 내내 좋은 친구를 못 만난 것뿐이라며 어느 학교를 진학해도 편노는 잘 적응하고 좋은 친구도 꼭 만날 것 같다고 했다. 중학교 생활은 초등학교 생활과 정말 다르기 때문에 편노는 더 잘 지낼 것 같다며, 말 끝에 담임선생님은 일단 공립 중학교 진학을 한 뒤 대안학교 편입을 고려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처음부터 대안학교에 입학하면 나중에 일반 고등학교 진학이나 대학 진학 때 검정고시를 봐야 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일도 생긴다는 이유와 함께 말이다.


담임선생님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어머님, 편노는 언어능력이 탁월해서 6년 동안 힘들었던 거예요. 그만큼 특별한 아이예요’라고 내 멋대로 이해했다. 그리고 나에게 ‘편노, 어디 부족한 것이 아니에요. 보통 아이처럼 일반 중학교에 갈 수 있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남편과 상의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상담.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편노만 쏙 빼고 결론을 낼 뻔했다.

아차 차차, 또 실수를 할 뻔. (속으로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를 또다시 몇 번 외쳤다.) 저녁식사 중, 편노에게 “중학교 진학 사전조사” 가정통신문 덕분에 이날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에피소드와 나와 남편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 뒤 편노의 생각을 물어봤다. 편노는 일반 중학교와 대안학교 다 괜찮지만 그냥 남들 하는 것들은 다 경험해보고 싶다며 일반 중학교 지원을 하고 다녀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일까. 저녁식사 때, 편노가 나와 남편의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말할 때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괜히 눈동자만 계속 굴리며 방황을 했던 편노가 달라진 것이다. 그때 나는 편노의 눈 속에서 고개를 숙인 채 구부정하게 웅크리고 앉아 있던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천천히 그 자리를 일어나 걸어 나가려고 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2004년 7월에 태어난 나의 아이가 보였다.




편노가 원하는 대로 A중학교를 지원해 입학했다.

중학교 3년 동안 전쟁터 수류탄처럼 좋은 일, 나쁜 일 구분 없이 팡팡 터졌지만 난 더 이상 노심초사하지 않았다. 편노가 스스로 좋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겼고 혹여나 나쁜 일로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흉터가 남기 전에 응급처치를 재빠르게 할 만큼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아주 길게 한숨을 뱉어본다.

휴~~~ 우우웅

안도의 긴 날숨쉬기이다. 이 날숨으로 숨 고르기를 하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이 평화는, 이제 편노 때문에 가슴 저린 한숨을 쉬기보다는 아이를 믿는 단단한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의 숨 고르기이다.





*감사한 일*

남편과 나는 양육에 대한 가치관 또는 방향이 같아서 감사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투기도 했지만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서로 같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조율하면서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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