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6)
장난: 주로 어린아이들이 재미로 하는 짓. 또는 심심풀이 삼아 하는 짓
조리돌림: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하기 위하여 끌고 돌아다니면서 망신을 시키는 행위
(출처: 네이버)
‘2년 내내 전교 부회장! 축하해!’
‘이모를 닮아서 반에서 노는게 아니라 전교에서 노는 구나.’
‘전교 회장으로 나갔어도 당선됐을거야. 부회장 아쉽지만 2연속이라니 대단하다.’
4학년때까지 단 한번도 반장이 된 적이 없었던 편노가 5학년 1학기 부회장에 당선이 되고 연이어 6학년 1학기도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나는 편노에게 이번에는 회장선거에 나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하니 회장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아 경쟁률이 높을 것 같다며 안전하게 부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그때 나는 속으로 수학은 못해도 나름 계산은 하는구나 싶어 기특하기도 했고 본인이 하고싶다는 것을 해야 후회가 없으니, 모든 결정은 편노가 하게 두었다.
편노의 예상이 적중했다.
회장선거 후보는 여섯 명, 부회장선거 후보는 한 명, 편노 뿐이었다. 편노는 그렇게 투표없이 6학년 전교 부회장에 당선됐다. 조금 싱겁게 됐지만 뭐 어떤가 부정하게 된 것도 아닌데. 온 가족이 편노의 당선을 축하했지만 편노는 잘 모르겠다며 기분이 별로라고 했다. 그땐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당선이 되고 한달정도 지났을까, 편노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잘 나오지 않고 말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오픈카톡방 사건도 있었고 13살이면 사춘기도 올 때라 생각해 편노의 그런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친정 엄마와 통화 중에 부회장 당선과 요즘 편노가 방에만 있는 것이 사춘기가 온 것같다고 말하니, 친정 엄마는 나는 아빠 성격 닮아서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모른다며 애가 평소와 다르다싶으면 좀 더 신경을 써야한다며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뒤로 한참동안 친정 엄마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날 오후 엄마 얘기 때문일까, 현관에서 들어오는 편노의 얼굴이 슬퍼보였다.
“편노야, 학교에 무슨 일있어?”
“친구랑 싸웠어?”
“아니, 나 친구없어.”
“.....”
“엄마, 나 괜히 선거 나갔나봐. 단일후보가 나쁜거야?”
“왜? 누가 단일후보라고 뭐라고해?”
“아니야.”
“왜?”
편노와 한참을 이야기 했다.
부회장 당선 후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단일후보로 당선되니까 좋냐?’, ‘단일후보 주제에 부회장이라고 잘난척이야!’, ‘나같으면 사퇴한다.’, ‘그렇게 관심받고 싶냐?’ 등 편노에게 하루 몇번씩 반복해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명 안되서 무시했지만 점점 많은 아이들이 편노에게 인싸아이들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편노 이야기에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1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친하게 지낸 A,B 들도 같이 그랬는지 다그치듯 편노를 몰아갔다. 그 친구들은 그런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나서서 편노 편을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나는 A,B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13살 또래집단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아이들도 어쩔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이해가 됐다. 그래 그럴수 있어라고 계속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기니 나도 모르게 피가 거꾸로 쏟아졌다.
“왜 이제 얘기해! 부회장 그게 뭐 중요해, 당장 사퇴하자. 내일 엄마가 학교가서 담임선생님한테 얘기할게.”
“아니, 가지마.”
“왜 그딴 애들한테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듣고있어? C가 시작한거야?”
“엄마, 그냥 그렇다고 얘기한거야. 한 학기만 부회장이라 이제 몇 개월 안남았으니까 괜찮아.”.
“뭐가 괜찮아. 난 안 괜찮아. 단일후보가 된게 네 잘못도 아니잖아.”
“애들 말. 그냥 무시하면 되니까. 엄마 너무 흥분하지마.”
“무시할 수 있겠어? 너무 힘들면 또 엄마한테 얘기해야해. 엄마도 그땐 지금처럼 흥분하지 않고 잘 들어줄게. 그리고 수준 낮은 애들이 하는 헛소리 장난질이라 생각하고 무시하자.”
내가 너무 흥분을 했을까 오히려 편노가 나를 달래준다. 사실 내가 학교에가서 편노를 괴롭힌 아이들에게 따져 묻는다 해도 그 아이들은 괴롭힌게 아니라 그냥 장난 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부회장 사퇴를 한다해도 이미 편노 마음에 난 상처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편노가 이 사실을 먼저 깨닫고 나에게 ‘괜찮다’라는 거짓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의 괜찮다는 거짓말에 또 속아준다.
아이들의 장난은 생각보다 유행 패턴이 짧다. 금방 다른 타겟을 찾는다. 그런데 그 짧은 유행이 또 편노에게 왔다.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했던 편노는 정말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얘기했다는데,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 그 여학생만 지나가면 몇몇 아이들이 ‘편노야, 네 부인 지나간다.’, ‘OO가 내일 편노가 너한테 고백한데.’ 등등 짓궂은 장난을 쳤다. 거기까지 괜찮았다. 딱 거기까지만 괜찮았다. 어릴적부터 운동을 잘하고 친구들이 많던 C가 편노의 핸드폰을 뺏어 그 여학생에게 편노가 쓴 것처럼 여러장의 고백 문자를 보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그 여학생은 편노 때문에 불쾌하다는 얘기를 친구들에게 했고 그 이야기가 전교에 널리널리 퍼져갔다. 남자아이들에게는 놀림감, 여자아이들에게는 비호감이 되어버린 편노는 부회장 사건의 상처와 함께 더 깊이 우울해졌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편노방 벽에 큰 주먹자국을 발견한 뒤었다. 또 다시 난 뒷북치는 엄마였다.
편노는 이건 장난이 아니라 조리돌림이라며 그냥 죽고 싶다고 했다.
‘죽고 싶다고?’ 나는 심장을 지탱하는 혈관이 끊어져 발 밑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낳아 준 엄마 앞에서 살고 싶지않다고 울부짖는데, 나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는데, 나는 왜 여태 몰랐단 말인가. 열 세살이면 다 컸으니 편노는 혼자 잘 할 거야, 난 쌍둥이 딸들 돌보기에도 벅차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열 세살이면 아직 어린 아인데…
매번 뒷북 치는 엄마지만 이제는 뭔가 달라져야할 시간이라 느껴졌다. 다음 날 무작정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편노 얘기를 다 듣자 조금 놀란 담임선생님은 편노가 그 여학생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놀림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다며 C군에게 주의를 주겠다고했다. 나는 C군을 직접 만나 혼을 내주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했다. 그리고 편노는 남편 회사에서 추천해 준 심리상담 센터에서 3개월 치료를 받았다. 편노 혼자 다니기는 꽤 먼 거리지만 상담선생님이 자기 얘기에 집중해 주시면서 믿어주는 것 같다고 너무 좋다고 했다.
3개월만에 치유될 편노의 상처는 아니지만 상담을 통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나 역시 그 과정을 통해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할까 전전긍긍하지않고, 엎질러진 물을 어서 깨끗하게 닦고 그 잔에 새로 물을 담아 마실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이 생겼다.
이제 엄마 3단계 진입이다.
엄마 단계가 높아질 수록 다음 단계 진입이 어려워지겠지만 마지막 보스를 깨고 나면 에베레스트 정상 위에 오른, 힘들었지만 보람되고 어려웠지만 깨달음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것 같다.
*감사한 일 *
이 글을 쓰기 전 편노에게 이 이야기를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지만 지금은 다 잊었다며 허락을 해준다.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억지로 지우려말고 물 흐르듯 흘려보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때 빨리 알아채지못해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