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_덕질로 알게 된 오픈 채팅방 그녀

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5)

by 땡자

남자아이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은 첫아이 편노를 통해 거의 다 깨졌다. 남자아이라면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아도 더 놀고 싶다고 떼를 부리며, 걷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뛰어다닌다 했는데 편노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면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다닌다는 태권도장, 당연한 듯 아무 생각 없이 편노를 데리고 집 근처 태권도장을 등록했다. 첫 등원 후 편노는 기합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많이 뛴다며 가지 않겠다 했다.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반별 축구팀을 만들어 레슨받는 것이 유행이었던 그때, 편노도 당연히 축구클럽에 등록했다. 하지만 역시나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공을 차며 뛰어 노는데, 편노는 잔디에 앉아서 친구들의 경기 중계를 했다. 1년 동안 배웠지만 몸에 밴 기술보다는 축구 중계 실력만 늘어 나는 더이상 축구레슨 비를 내지 않았다. 그 뒤로 검도, 인라인, 수영 등 다른 운동에 도전했지만 편노는 어떤 운동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을 사랑하는 그런 편노가 주말마다 가자고 조르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철도박물관이다.


오래되긴 했어도 저렴한 입장료를 생각한다면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한 박물관일 뿐 편노처럼 한 달에 3~4번 갈만한 곳은 아니다. 격주에 한 번씩 철도 박물관에 가다 보니 편노처럼 자주 오는 초중고 학생들이 보였고 편노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해졌다. 그중 몇 명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오프라인 모임에도 여러 번 참석을 했다. 철도 박물관에서 직접 만난 그 아이들은 정말 기차와 전철을 사랑하는 아이들 같아 편노가 철도 모임이나 행사에 간다고 하면 나와 남편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편노의 철도사랑은 덕질로 이어갔고 철도 박물관에 이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기차 여행을 다녔다.


편노는 점점 더 깊게 철도에 빠졌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차와 지하철 이야기를 했다. 특히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에게 철도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재미있다고 들어주던 친구들은 매번 철도 얘기만 하는 편노를 피하기 시작했다.


나는 편노에게 ‘친구가 네 이야기를 들어주면 너도 가끔은 친구가 원하는 축구도 한번 해야 친구관계가 유지가 되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때는 편노가 어려서 이해를 못 했는지 자기 얘기만 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편노는 철도 덕질이 깊어질수록 학교에서는 이상한 애, 관종 등으로 불리며 외톨이가 되어갔다. 외톨이가 된 편노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철덕(철도 덕후)친구들과 더 가까워졌다. 전국에 퍼져있는 철덕 친구들은 직접 만나기가 어려워 네이버 카페, 네이버 채팅 그리고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을 했다. 나는 철도박물관에서 몇 번 봤던 친구들이라 온라인 속에서 만나도 괜찮다 생각했고 가끔 편노의 아이디로 온라인 속 대화 내용을 확인도 하고 있었기에 편노의 철덕활동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학교 친구가 없으면 어때, 같은 관심사로 통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된 거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그 친구들 덕분에 내 마음이 편했다.


5학년 2학기쯤, 편노는 주변 철덕들에게 덕질을 인정받아 온라인 철덕 카페의 스태프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나의 언니가 20대에 구입한 20년이 훌쩍 넘은 캐논 DSLR로 다양한 기차와 지하철 사진을 찍었다. 카페 스태프가 된 이후부터 일까, 편노는 예전 내가 알던 어린 철덕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형, 누나들과 소통을 많이 했고 종종 그들과 출사를 가기도 했다. 물론 나 또는 남편과 함께 말이다.


어느 날 편노가 철덕 모임에서 알게 된 누나한테 중고 카메라 렌즈를 사겠다며 혼자 가고 싶다고 하길래 중고거래는 사기도 많으니 엄마가 같이 가겠다고 했다. 편노는 렌즈만 사고 온다며 굳이 혼자 가고 싶다고 우겼다.


갑자기 나의 똥촉 레이더가 움직였다.

‘이거 뭐 있는데’


그럼 그 누나한테 내가 확인해 볼 테니 핸드폰 좀 보여달라고 하니 편노가 우물쭈물 말이 없다.


“편노야, 당장 핸드폰 가져와.”

“아니, 그냥 안 살래.”

“그래도 가져와.”

“안 사도 될 것 같아.”


나는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하는 편노를 더는 볼 수가 없어 편노방으로 돌진해 편노의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다. 잠금 설정이 되어있지 않아 나는 바로 깔려있는 앱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카카오톡도 확인했는데 별것이 없었다. 내가 잘못 짚었나 싶었는데 카카오톡 채팅 미리 보기 팝업이 뜬다.


‘엄마가 뭐래? 오늘 올 거야?’


이거다 싶어 확인하니 숨김으로 설정된 카톡 방이었다. 그 채팅방은 내가 편노에게 폰을 뺏은 이날보다 이틀 전에 대화가 시작된 채팅방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한 여자와 편노의 대화가 있는 그 채팅방에는 평범한 철도 이야기와 카메라 이야기가 있었고 본인이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너무 힘들다는 내용과 임용고시를 준비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 등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편노는 그 누나에게 ‘네’ ‘기운 내세요’ 등 단답형 답장을 썼고 이게 다 인가 싶어 카톡 화면을 바쁘게 밀어 내려갔다. 그렇게 바삐 손가락을 움직이다 한 사진에 내 손가락이 멈췄고, 그 순간 내 몸이 떨리고 소름이 끼쳤다. 여자의 팬티 사진과 가슴 사진이었다. 손가락이 너무 떨렸지만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하고 선생님이라고 한 그 여자가 쓴 글을 읽었다. 여동생이랑 싸웠는데 너무 화가 난다며 여동생의 팬티 사진과 가슴 사진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에 편노의 답이 궁금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편노는 아무 답도 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보낸 톡이 편노에게 카메라 렌즈를 중고로 팔겠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다 읽고 나는 도저히 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워, 편노에게 ‘아빠, 퇴근하시면 그때 같이 얘기하자’라고 말하고 안방 침대로 쓰러졌다. 그 시기 ‘N’번 방 사건이 터져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었고 나도 몹시 그 범인에게 화가 나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미래에 내 아들이 성범죄자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에 너무 두려웠고 ‘어떻게 내 아이가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에 편노가 밉고 싫고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웠나?’싶은 죄책감이 몰려 괴로웠다. 남편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반복되는 이 생각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남편이 퇴근하고 우리 셋은 소파에 앉았다.

나는 남편에게 편노의 카톡을 보여주다 나도 모르게 참았던 화를 편노에게 퍼부었다.


‘너! 내가 그렇게 키웠어?’’

‘너! 범죄자야. 범죄자는 경찰서로 가야 해. 가자!’

‘너 같은 애가 N번방도 만들고 그러는 거야!’

‘너! 미쳤어?’

‘너를 믿을 수 없어.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진을 받았어?’

‘너 왜 그랬어?’

‘왜?’


내가 편노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을 말을 모두 내뱉었다. 그리고 편노의 얘기는 모두 변명일 것 같아 듣고 싶지 않았다. 난 너무 화가 났고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쏟아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편노는 울고 있었고 남편은 선생이라는 그 여자가 이상하다며 전화를 해보자 했다. 하지만 편노는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한다. 연락처도 모르면서 렌즈를 사러 나가겠다니. 다시 화가 밀려와 편노를 다그치려고 하니 남편이 나를 말린다. 남편은 편노의 다른 철덕 오픈 채팅방 확인하면서 편노 말고도 그 여자에게 야한 사진을 받은 아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며 편노도 당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편노가 그 선생이라는 여자에게 신체 사진이나 돈을 보내지 않아 다행이라며 남편은 편노를 혼내기는커녕 울지 말라고 달래주었다. 그 뒤 남편과 편노는 편노방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에 잘못된 행동을 한 12살 편노와 어린아이에게 함부로 행동한 그 사람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그냥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편노의 핸드폰을 열어 그 선생이라는 사람에게 ‘나는 OO 엄마야. 너 또 한 번 우리애한테 톡 보내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테니 여기서 그만해라!’라고 톡을 보냈다. 그리고 편노에게 몇 가지 벌을 줬다.



편노가 받은 벌

- 1년 동안 일반 스마트폰 대신 초딩용 폴더폰 사용

- 혼자 철덕모임 참석 불가

- 한 달 동안 게임 금지

- 모든 종류의 오픈 채팅방 참여 금지



그렇게 그 일이 마무리되고 며칠 뒤 나는 편노가 활동하는 모든 철덕 커뮤니티에서 그 사람의 아이디를 찾았다. 그 어떤 곳에서도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예전부터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4년 전 일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이 떨린다. 앞으로 내가 이 아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웠다. 내가 계획한 ‘육아’에는 이런 데이터 자체가 없었는데 왜 이 아이는 예고도 없이 사고를 치고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지 너무 원망스러웠다. 육아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엄마의 몸은 편해지지만 마음은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편노가 클수록 내 마음의 상처도 커져갔지만 그 상처가 커질수록 나는 더 단단한 새살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렇게 버텨내고 또다시 이겨냈다.


편노의 육아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상한 아이’ 편노가 아닌 ‘특별한 아이’ 편노라는 믿음 아래, 그리고 ‘나는 썩 괜찮은 엄마’라는 긍정의 정신 아래. 매 순간 찾아오는 그 좌절과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꿔본다.






*감사할 일*


야한 동영상을 보는 나이 때가 빨라졌다며 평균 초등학교 5학년부터 보기 시작한다는 뉴스 보면서도 내 아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 편노도 보긴 보겠지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렇게 뉴스처럼 딱 초5에 이런 일이 생길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데 음란물 경험도 미리 하는 게 나은 건가….

잘못된 호기심 한 번으로 인생 전부가 망가질 수 있는데 다행히 나의 똥촉이 그때는 잘 작동해 줘서 감사했고 그 뒤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아 감사했다.


또한 내가 준 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지켜준 편노에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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