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3)
편노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연고 없는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했다.
쌍둥이를 돌봐 줄 이모님을 구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세 아이 키우기’ 전쟁터에 지원군 ‘청자초이’없이 홀로 던져졌다. 그때 나는 ‘밭일할래? 애 볼래?’라고 물으면 밭일하겠다고 한 이유를 정확히 이해했다.
2년이 넘게 독박 육아에 지쳤는지 아님 고립되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왔었는지 ‘누구 하나만 걸려라 확 물어버리겠다’라는 뜨거운 ‘화’가 내 정신을 지배했다. 게다가 체력도 바닥을 뚫고 땅속으로 꺼져갔다. 죄 없는 아이들과 서울로 장거리 출퇴근하는 남편에게 그 ‘화’를 토해 낼 수 없었지만 이 뜨거운 ‘화’는 식혀야 했다. 하지만 방법을 몰라 그저 매일 밤 애꿎은 맥주캔만 찌그려뜨렸다. 다행히 시간은 내 편인 것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다. 편노는 초등학교로 쌍둥이 딸들은 어린이집으로. 그때부터 시원한 맥주로도 해결되지 않던 나의 ‘화’가 식기 시작했다.
매년 2월~3월 되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단어가 인터넷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위치하고 이와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육아서 방법처럼 자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나는 초등학교 입학 또한 관련 도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책을 읽는다고 반 친구가 많아지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학교에 적응을 잘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입학 시즌에 불안한 학부형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이라 겁이 없었나?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편노의 돌+아이 기질은 열성경련 때문이 아니라 열성경련의 원인처럼 나의 돌+아이 유전자인 것 같다.
나의 좁은 대인관계 속 나름 대형 조직인 5인의 동네 친구들이 초1 되기 전 한글, 수학, 영어, 태권도, 피아노 정도는 다녀야 하고 입학하면 축구팀이랑 반 모임에도 들어가 한다고 했지만 ‘아이가 원하는 사교육만 하자’라는 나의 육아 원칙에 따라 편노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다. 사교육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했는데 학부모 모임이라는 새로운 사회관계가 나를 힘들게 했다. 사실 나는 직장 생활 이외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관계가 주는 낯선 공기가 싫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드러내는 행동 자체가 싫고 관심 없는 이야기에 가식적인 공감의 추임새를 넣는 것도 싫다. 이런 나였지만 자식이 뭐라고 첫 학부모 모임에 참석을 했다. 자기소개로 시작한 그 모임은 다들 ‘몇 년생 누구 엄마입니다.’라고만 했다. 왜 나이를 꼭 얘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던 나는 ‘안녕하세요. 편노엄마 OOO입니다.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고 앉았는데 어디선가 ‘그런데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다. ‘아. OO년생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답을 하고 모임 내내 물 위에 기름처럼 동동 뜬 채로 집으로 왔다. 그날 자려고 누웠다가 내가 무슨 말을 했나 복귀하면서 이불 킥을 여러 번 날렸고 ‘다시는 가지 말자’ 다짐을 했다. 그렇게 생에 첫 학부형 체험을 정신없게 하던 중 늦은 저녁, 모르는 번호의 전화 한 통이 왔다.
“혹시 OO 엄마야?”
“네, 누구세요?”
“아, 같은 반 OO 엄마야?”
“네….”
받자마자 반말을 하는 그 사람은 통화도 일방적으로 본인 말만 쭉 하고 끊었다.
내용인즉, 편노가 OO를 왕따 시켜서 아이가 힘들다는 내용이다. 그녀의 전화예절에 기분은 나빴지만 ‘왕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정말 편노가 그랬는지 확인 없이 그저 편노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OO 엄마에게 ‘미안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전화를 끊고 ‘이 녀석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배운 거야’, ‘착한 줄 알았는데 이거 뭐지.’, ‘내가 잘못 키운 건가’라는 생각 때문에 갑자기 화가 나, 자는 아이를 깨워 따졌다. 아이는 잠결에 다짜고짜 취조하는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우는 편노를 달래기보다는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엄마한테 설명해 봐.’라고 또 다그쳤다. 한참을 운 아이는 OO 이가 자기가 발표를 하면 잘난척한다며 재수 없다고 놀렸고 축구도 못한다고 따돌려서 화가 났었고 참다가 오늘 OO를 밀치고 ‘너 왕따 당해볼래!’라고 말해서 OO가 울었다고 했다. 편노는 다시 울면서 나에게 잘못했다고 이젠 안 그러겠다고 했다. 아이 이야기가 끝나자, 얼굴도 모르는 OO 엄마 얘기만 듣고 내 기분을 상하게 한 그녀의 일방적 행동처럼 나는 ‘편노=문제아’라는 공식을 미리 세우고 편노한테 화난 내 감정을 쏟아낸 것을 깨달았다. 바보 같은 엄마다.
다음 날 편노는 OO 이에게 사과를 했고 나는 OO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못한 내 얘기를 했다. 그녀는 미안하다 했다. 그때도 역시 반말로 말했지만 무슨 상관이랴. 내 아이의 진심을 전했으면 됐다 생각했다.
평균 40점대 받아쓰기와 수학 실력을 가진 편노 였지만, 상담을 할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라 생각해 1 학기 학부모 상담을 신청하지 않았다. 내가 상담 신청을 안 했다고 하니 동네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답다.’ 한 마디만 하고 각자 학부모 상담 다녀온 이야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 얘기 중에 1학기 동안 상장 하나 못 받은 아이는 편노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가 실력이 안되니까 안 줬겠지’라고 내가 얘기하니 한 친구가 1학년이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며 2학기 학부모 상담은 쓸데없이 고집부리지 말고 가보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왜 편노는 상을 못 받았을까? 실력의 문제일까? 아님 내가 모르는 다른 문제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2학기 상담 첫날 1등으로 신청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왜 이제 오셨어요?”
“네?”
“제가 편노 어머님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아세요?”
“네? 저를요?”
첫인사부터 내가 예상했던 상담과는 차이가 났고 끝날 때까지 그 예상은 빗나갔다.
담임 선생님은 처음부터 편노한테 무시를 당해 1학기 내내 속상하고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웃으면서 편노가 어떤 행동을 했길래 그렇게 속상하셨냐고 물어보니 선생님은 한 예로 수업 시간 아이들에게 ‘무’는 ‘무’라고 써야 한다고 얘기하니 편노가 ‘왜 무우라고 쓰면 안 되냐’고 물었단다. 그게 뭐가 잘못인가라고 생각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선생님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수업 시간마다 자기 말에 딴죽을 걸고 수긍하지 않는 편노의 태도는 본인을 무시하는 행동이 확실했고 그 때문에 속상하고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그 얘기 끝엔 편노에게 ADHD는 아니지만 다른 큰 문제가 있으니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정신과 상담! 그 단어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선생님을 떠나 아이를 먼저 키워본 사람으로서 충고해 주는 것이라며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 좋은 심리 상담 프로그램 소개했다. 학부모 상담 시간 절반을 교회 심리 상담 설명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선생님이 아닌 판촉사원과 상담하는 기분이 들었다.
묘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한참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편노를 세심히 지켜보다 진짜 문제가 심각하다 싶으면 심리 상담부터 받아보자고 결론을 내렸지만 남편과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이 생겼다. 그 뒤 ‘편노=문제아’ 공식이 다시 떠올랐고 편노가 내 기준의 보통 아이보다 이상한 행동을 하면 신경이 쓰였고 아동심리센터 검색을 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학기 초에는 없는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참석하지 않았던 학부모 모임에 열심히 참석했고 다녀와서 이불 킥 했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며칠 뒤 반대표가 급하게 반 모임 일정을 알렸다. 무슨 일인 가해 참석했더니 반대표는 담임선생님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하면서 장례식장에는 본인만 가도 되는데 근조화환을 보내야 하지 않겠냐며 다른 학부모 의견을 물어봤다. 다들 장례식장은 못 가지만 근조화환 정도는 괜찮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대표는 강요는 아니니 하고 싶은 분들은 만 원씩 송금해달라는 얘기를 전달하고 모임이 끝났다. 난 왜 학부모가 담임선생님 시어머니 장례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 근조화환 비용을 송금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반 모임에서 알게 된 A 엄마가 전화가 왔다.
“언니, 돈 보냈어?”
“아니”
“나도 안 보냈어. 근데 보내야 할까 봐.”
“왜”
그녀는 우리 반에서 편노와 A 군 만 상장을 못 받은 것 같은데 그 이유가 자기랑 나만 선생님께 촌지를 안 줘서 그런 것 같으니 이번 근조화환 비용 함께 내자는 얘기를 했다. 촌지? 지금 이 시대에 촌지를 받는다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 어이없는 짓을 내가 하고 말았다.
어느 날 편노가 ‘나만 상장을 못 받았다’며 미술 학원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 엄마도 받아봤는데 별것 없어 그냥 막 주는 거니 괜찮다고 하니 그 말에 엄마는 받아봐서 자기 마음을 모른다며 더 울었다. 편노가 아무리 미술 실력이 좋아도 그 반에서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다음 날 백화점으로 향했다. 여름방학 때 선생님께 편지 쓰기 숙제 덕분에 담임선생님 집 주소를 알고 있었기에 백화점 오픈하자마자 가서 한우세트를 구매해 바로 담임선생님 집으로 배송시켰다. 배송이 완료되었는지 며칠 뒤 하교하는 편노 손에 흰색 A4 사이즈 종이가 나풀거렸다. ‘표창장, 착한 어린이상’을 받은 편노는 쉬지 않고 자랑을 하면서 행복해했다. 마냥 좋아하는 아이 기분에 맞장구쳤지만 내 머릿속엔 비싼 한우세트와 표창장이 함께 훨훨 날아다녔다.
편노 초1 땐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가 교실 청소를 했다.
내 순서가 되어 교실에 들어서니 담임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편노가 요즘 확실히 달라졌으니 이젠 걱정할 필요 없다며 청소 끝나면 냉장고에 시원한 음료수 하나 꺼내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나갔다. 난 대답 없이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편노=문제아’라는 공식의 오류를 발견하고 ‘문제아= 내 기준으로 아이를 문제아로 단정 짓는 아이 주변의 미성숙한 어른’이라는 공식을 새로 썼다.
*감사한 일*
편노의 1학년 담임선생님 덕분에 그 뒤로 나는 쭈욱 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나가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을 주신 그분께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딸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는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공식적인 반 모임과 학부모 카톡 단톡방도 금지시켰다. 당연히 비공식 모임은 있었겠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에 학교 방침에 무조건 땡큐 땡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