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세. 열성 경련 그리고 레벨 업

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2)

by 땡자


24개월이 지나고 편노는 어느 정도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이지만 ‘엄마’라는 단어를 빼곤 다른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남자애라 늦을 수도 있고 아이들마다 성장 속도가 다른 것뿐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청자 초이님(주석:나의 자매들끼리 부르는 엄마의 애칭)은 귀한 손자가 발달장애는 아닐까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자꾸 그림카드를 보여주며 말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 왜 병원에 안 가보냐고 그냥 지켜보는 나를 답답하게 생각하셨다. 엄마의 이런 말들이 가끔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27개월이 넘어갈 때쯤 나도 조금 마음이 불안했다.


허벅지가 두꺼워 범보 의자(주석: 2006년 유행한 육아 템)에 잘 앉지도 못했던 우량아였던 편노, 낮잠 그까짓 것 안 자면 어떠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면 됐다고 생각할 즘, 첫 열성 경련이 일어났다. 갑자기 아이에게 39도 넘는 열이 났지만 친정엄마는 일하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으시고 급히 큰언니를 불러 동네 소아과로 향하셨다. 하지만 소아과로 가는 차 속에서 편노가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경련을 일으켰고 동네 소아과 대신 종합병원 응급실로 방향을 바꿨다. 다행히 종합병원이 친정집에서 가까워 큰일 없이 아이는 치료를 받았다. 정신이 없었던 엄마는 치료가 다 끝나고서야 내게 연락을 하셨다.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왜 지금 연락했어! 애는?’이라며 괜히 엄마에게 화를 냈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하느님, 제발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라며 안 하던 기도를 했고 나보다 더 당황하셨을 엄마에게 화를 낸 내가 미웠다. 복잡한 생각들로 내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막상 응급실에 들어가니 기저귀만 찬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 웃음 하나로 내 머릿속 생각들은 답을 찾고 사라졌다. 그 뒤 난 물은 없어도 부루펜 계열 해열제와 타이레놀 계열 해열제는 꼭 챙겨두었다.


첫 번째 열성경련 이후 편노에게 열이 조금만 나도 하루 종일 긴장했었고, 머리에 열은 나는데 손발이 차가워지면 병원 갈 준비를 했었다. 그렇게 긴장하고 준비를 했지만 막상 두 번째 열성경련이 발생하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꼭 필요할 때 항상 없는 남편은 그날 역시 회식으로 연락이 되지 않았고 나는 기다릴 수 없어 무작정 아이를 안고 택시를 탔다. 사실 열성경련은 응급실에 가도 열이 내려가는 주사와 해열제를 주는 것 이외 별다른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늦게 연락이 되어 새벽에 도착한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서 괜한 인턴에게 ‘왜 열이 안 내려가냐’며 소리를 질렀다. 아침이 되어 담당 의사를 만났고 열성경련의 원인을 물었다. 정확한 원인은 없지만 유전적인 영향이 제일 큰데 자라면서 없어지니 걱정 말라고 했다.


유전적인 영향! 내 탓이다.

내가 편노처럼 3~4살 때, 여러 번 열성경련이 발생해 나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가 나를 업고 밤마다 문 닫는 약국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그런 나 때문에 편노가 아프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애들은 아프고 나면 더 자란다’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두 번째 열성경련 후, 편노의 입이 터졌다. 그동안 못 했던 말들을 하고 싶었는지 깨어있는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말 못 할까 봐 걱정했던 내가 이제 말 많다고 ‘편노야 좀 조용히 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편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첫 기관 등원 날. '아싸 이제 나도 편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엄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즐겁게 등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편노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일부러 도보 가능한 어린이집을 미리 신청해 보낸 것이었는데, 첫날부터 편노는 노란 버스를 타고 가겠다며 울었다. 그 뒤 유모차, SUV 모양의 유아용 전동차 모두 동원했지만 둘째 날, 셋째 날….. 일주일 내내 등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어린이집 원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려 셔틀버스 마지막 코스에 우리 집을 넣었다. 매일 아침, 편노는 2분도 안 되는 노란 버스 여행을 기다렸다. 그 뒤, 한참 동안 편노의 꿈은 버스기사님이 되는 것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이 해결된 뒤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큰 병치레도 없어 의사 말대로 열성경련이 크면서 없어지는구나 생각했었다. 평소보다 조금 피곤해 보일 뿐 열도 없고 다른 증상도 없었던 어느 날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아이가 순식간에 기절을 해버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의사를 불렀다. 정말 아이가 죽은 줄 알았다. 앞이 깜깜했다.


응급처치가 끝나고 병실로 옮겼지만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입원 절차를 안내하는 간호사에게 나도 모르게 신경질을 내며 왜 안 깨어나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간호사는 나 같은 부모를 많이 만났는지 살짝 웃으며, 아이가 힘이 빠져서 자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라는 답을 하고 병실을 나갔다. 차가운 얼음팩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는 아이를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잘 버텨줘서 고마웠다. 대부분의 열성경련은 지속 시간이 짧아 해열제 이외 다른 약물치료나 검사는 하지 않는데 경련 지속 시간이 길거나 편노처럼 의식이 없을 경우 뇌에 산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뇌질환이 발생될 수 있어 입원 기간 동안 뇌 검사를 받았다. 다들 별일 없을 것이라 했지만 그 시절 나는 일단 일이 생기면 부정적인 것부터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온갖 나쁜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혔다. 다행히 결과는 정상이었고 편노는 6살이 이후 지금까지 열성경련을 발생하지 않았지만 편노의 동생, 쌍둥이들이 태어나 6살이 될 때까지 열성경련에 대한 나의 긴장감을 멈출 수 없었다.


편노의 열성경련 덕분에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엄마 1단계 수업을 통과하고 2단계로 레벨 업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아이에게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기도했다.





*감사한 일*

세 번의 열성경련 덕분에 나와 아이 관계가 더 가까워지고 단단해졌다. 엄마 역할은 처음이라 내 아이지만 남 같았고 그냥 나를 해방하는 존재로 느껴졌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진짜 편노 엄마가 되었다.


현재 고1인 편노가 가끔 돌+아이 짓을 할 때면 그때 뇌에 살짝.. 돌+아이 세포가 추가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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