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세. 까탈스러운 큰 아이

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1)

by 땡자


결혼은 내 인생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빨리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아 자녀 계획도 없었던 내가 결혼 2년 만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내 임신의 최고 공로자는 3대 독자인 아빠와 결혼해 딸만 셋을 낳은 엄마이다. 아들을 낳지 못해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 힘든 시집살이를 했던 친정엄마는 시대가 한참 지났는데도 엄마처럼 고생하지 말고 아들을 낳아 내가 시댁 어른들에게 예쁨 받기를 소원하셨다. 애 생각도 없는데 아들이라니. 엄마의 걱정이 부담스럽고 이해가 안 되었지만, 엄마의 진심을 알기에 엄마의 조언대로 임신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계획이 철저했는지 아님 아이가 나에게 오려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준비 1년 만에 아이가 생겼다. 심지어 엄마가 계획한 개띠 해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전 새벽. 양수가 터져 겁이 나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간호사 왈 “괜찮으니 걱정 마시고 병원 문 열 때 오세요.”라고 한다. 자기애 아니라고 쉽게 말하나 싶었는데 나 스스로도 아직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일단 한동안 비어있을 집을 치우고 짐을 챙겼다. 아이 낳기 전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아이가 쑥 잘 나온다는 얘기를 들어 아침에 삼겹살 파는 음식점을 찾아봤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라면 누구나 겪는 진통을 치르고 아이가 태어났다. 갓 태어난 내 아이를 보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이 안 갔는데 난 그저 부끄러웠다. 그 이유는 간호사가 아이 낳기 전 관장하는 걸 깜빡해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아이 낳기 전에 잘 먹어야 한다고 아침도 든든하게 잘 먹었는데 말이다. 나의 부끄러움을 눈치챘는지 갑자기 4명의 간호사들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를 불러줬다. 그 뒤로 그 노래는 큰아이 생일의 주제가 되었다.


3.8kg 건강하게 태어난 나의 첫아이 편노 (큰 아이의 닉네임)는 신생아 때부터 몸에 센서를 달고 태어났는지 안아주지 않으면 낮잠을 자지 않았다.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내가 버릇을 잘 못 들였다며 그냥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안아주지 말라고 하길래 하루 날 잡고 낮잠 자는 시간에 안아주지 않고 계속 침대에 눕혀두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말한 지쳐 잠드는 매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편노는 3시간이 넘게 얼굴색이 까맣게 변할 때까지 쉬지 않고 울었다. 이렇게 계속 울린다고 지쳐 잘 편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냥 다시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 뒤로 아이는 자라고 나의 어깨와 허리는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방법 1. 유모차를 태운다.

잘 안 자는 애들도 유모차를 타면 잔다는 썰에 혹해 승차감이 좋다고 소문난 수입 유모차를 지르고 배송되자마자 편노를 태웠는데 안전벨트를 매 주자마자 벗어나겠다고 울면서 발버둥을 쳤다. 실패였다.


방법 2. 파도 소리 나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준다.

어떤 소리도 통하지 않았고 들려주는 소리와 편노의 울음소리가 합쳐져 더 시끄러울 뿐이고 내 가슴속에 화가 더 활활 타올랐다. 실패였다.


방법 3. 차를 태워 돌아다닌다.

갈 곳도 없지만 일단 태워 돌아다녔다. 편노가 잠이 들었다. 드디어 낮잠을 자는 건가 했지만 시동이 꺼지자마자 자동으로 눈을 버쩍 뜬 편노. 휘발유만 낭비했다. 실패였다.




그 외 몇 가지를 더 해봤지만 성공하지 못해 그냥 낮잠 재우기를 포기했었다. 낮잠을 안 잔다고 성장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안 자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는 것이 더 해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땐 아이가 낮잠을 안 자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몰랐기에 나 스스로 멋진 엄마라고 느꼈었다. 참 바보 같은 결심인데 말이다.


7세 이전의 아이가 낮에 안 잔다는 것은 기관에 보내지 않는 이상 주 양육자에게 10분 이상 쉬기를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집안은 강도 높은 지진이 난 것처럼 엉망이 되고 밥공기에 밥, 반찬 그릇에 반찬을 덜어 먹는 행위는 사치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낮에 잠을 안 자니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쭉 잔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이가 일찍 자니, 자는 동안 집안일도 하고 TV도 보고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먹을 수 있겠다는 부푼 꿈을 꾸었는데 그냥 나도 함께 그렇게 푹 꿈꾸며 잔다는 옥에 티가 있었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좋은 건데. 그런데 그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괜히 너무 억울했다.


낮잠 안 자는 편노. 이것이 내가 편노에게 첫 번째로 받은 행복불행 종합 선물이었다.






*감사할 일*

다행히 낮과 밤이 바뀌지 않고 밤에 잘 자준 편노에게 감사하다. 아이에 따라서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주 양육자가 3교대 근무자보다 더 힘든 강도의 피곤을 맛본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다크서클이 가슴까지 내려올 것 같다. 지금 잠이 없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양육자님들 조금만 힘내세요. 좀 크면 알아서 잘 자요.


그렇게 잠이 없던 편노도 고1이 되니까 낮잠도 자고 밤잠은 더 많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