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이상하고 특별한 너 (4)
2013년 가을, 편노가 ‘KBS 전국노래자랑’ 예선 참가 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요청이라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편노야? 송해 할아버지 나오시는 그 전국노래자랑에 나가고 싶다고?’
‘어. 학교 앞 육교에 걸린 현수막에 내용 있으니까 엄마가 확인해서 신청해 줘.’
‘아. 그래. 그런데 거기 왜 나가고 싶어?’
‘음. 그냥. 송해 할아버지도 보고 싶고.’
편노가 한 살이 되던 해 다시 일을 하게 된 나는 망설임 없이 그리고 당연한 듯 친정 부모님께 편노를 맡겼다. 다행히 편노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잘 따라주었고 엄마, 아빠도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겁다고 하셨다. 특히 엄마는 엄마가 도와줄 테니 여자라고 애 낳고 집에 있지 말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건 아마도 엄마의 진심이자 소원이었을지도.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로 남은 외할머니를 모셔야 했으며 위로는 공부하는 오빠 둘, 아래로는 여동생 셋을 책임져야 했던 장녀였고 3대 독자 아빠와 만나 딸만 셋을 낳아 집안에 대를 끊어버린 죄인으로 모진 시집살이를 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평생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기에 딸은 다르게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편노의 주 양육자가 친정 부모님이 되면서, 나는 아이들이 주 양육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평소, 엄마는 TV보다 라디오를 즐겨 들으셨고 집보다는 밖에서 친구들 만나고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아빠는 엄마와 정반대로 집에서 책 읽는 것과 뉴스, 스포츠, 바둑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을 즐겨 보셨다. 그렇게 다른 두 분이지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좋아하셨던 것은 바로 트로트였다. 엄마는 집안일하시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따라 부르셨고 아빠는 매주 일요일 전국노래자랑 출연자의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트로트를 접할 수 있었던 편노는 3살 늦은 나이에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뽀로로의 주제가보다는 한혜진의 ‘너는 내 남자’ 와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열창했다.
아이가 동요가 아닌 성인가요를 부르는 것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괜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엄마와 아빠에게 되도록 아이 앞에서는 트로트는 듣지 마시고 동요나 영어 노래를 들려주면 좋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 좋자고 내 자식을 나이 든 노부모에게 부탁하는 마당에 무슨 불평인가 싶기도 했고 트로트가 뭐 어떤가. 어리다고 꼭 동요를 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지 않은가. 트로트 노래 가사에 욕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용이 불순한 것도 아니고 서로 같이 부르면서 교감하고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나 싶어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꽉 낀 청바지 갈아입고 거리에 나섰다. 오늘따라 보고 싶어 너무나 보고 싶어~’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항상 축하무대 초대 가수처럼 편노가 등장해 트로트 노래를 불렀다.
아직 어린 편노지만 마치 진한 사랑에 상처가 있는 것 마냥 얼굴을 찡그리고 목소리를 꺾는다. 가족들은 그런 편노 모습을 볼 때마다 귀엽다며 박수를 쳐주며 용돈을 주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편노는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무대나 대회가 있으면 준비과정 따윈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신청하는 무모한 자신감이 넘치기 시작했다.
편노와 엄마, 아빠를 모시고 전국노래자랑 예심 장소인 용인시청에 도착했다. 내 생각보다 3~4배나 많은 사람들이 참가자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시청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많은 참가자 모습에 긴장이 되어 편노에게 ‘너 할 수 있겠어?’, ‘안 떨려?’, ‘괜찮아?”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했다.
안내 데스크에서 신청자 확인을 하고 번호표를 받고 번호표 사진을 분명히 찍어 두었는데 어디에 저장해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740번대였던 것은 확실히 하다. 예심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했지만 1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있었고 그중 편노는 740번대였기에 오후에나 무대에 설 것 같아 편노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점심을 먹고 오자 했지만 배가 안 고프다는 편노였다. 아마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편노는 긴장되냐는 내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준비한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가 너무 많았고 심지어 그 노래를 부른 참가자들 중 합격자보다 불합격자가 더 많이 나오는 광경을 보면서 언제나 무모하게 자신감이 넘쳤던 어린 편노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참가자가 많다는 것은 웬만한 실력이 아닌 이상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기에 나는 아이에게 실패라는 경험을 맛보게 할 수는 없다는 모성애 가득한 어미 모드로 변신해 편노에게 선곡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자기는 괜찮다며 끝까지 부르겠다고 했다. 아이가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아 시끄러운 대기실에서 편노를 데리고 나와 주차장에서 조용히 다시 얘기를 했다.
‘너 그 노래 부르면 무조건 불합격이야. 그래도 괜찮겠어? 남들이 안 부르는 노래를 불러야 합격될 가능성이 높다고!’
‘......’
‘너 그 노래 불러서 불합격되고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마. 엄마는 미리 말했다.’
‘.....’
‘아! 이젠 엄마도 몰라. 네 마음대로 해.’
편노는 내 이야기에 아무 대답도 안 하고 그냥 나만 쳐다보았다. 나는 더 이상 얘기해 봤 자 편노가 못 알아듣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어느덧 700번대 참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나와 편노는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편노 바로 앞 두 팀 모두 어린이 참가자였고 심지어…참가 곡이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였다. 그때 나는 긴장하고 있을 편노 걱정보다는 ‘이럴 줄 알았어.’라며 선곡을 바꾸지 않은 편노를 속으로 답답하게 생각했다.
드디어 편노의 차례.
전주가 나가고 편노가 ‘야~’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관객들이 웃기 시작했고 두번째 소절을 부르자마자 ‘땡!’ 불합격을 알리는 실로폰이 울렸다. ‘땡 ’소리에 당황한 편노는 관객석을 두리번거리다 무대를 내려왔다. 무대에서 내려와 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기 시작한 편노.
그때 편노의 울음 속에서 나는 역시 바보 같은 엄마였다는 것을 또다시 깨달었다. 많이 떨렸던 아이에게 끝까지 믿음을 주지 못했고 불합격이라는 실패를 아이가 경험하면 나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실패를 경험한 아이의 감정 그리고 내 감정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무턱대고 그 불합격이라는 경우의 수만 없애려고 그렇게, 나 편하자고 아이를 주차장으로 끌어내 다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엄마만 믿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걱정 말고 다 해보라고 했던 그 엄마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나는편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무 말없이 편노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꼭 안아 주기만 했다.
내 아이가 아무 걱정 없이 커줬으면 하는 내 생각, 내가 꿈꾸는 즐겁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내 아이에게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배워가고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참 많고 그들을 이해하기보다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나는 내 아이들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바랬던 것이다.
한참을 지켜 보시던 친정 아빠는 노래는 못해도 괜찮다며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셨고 엄마는 지금 그 말이 편노에게 위로가 되겠냐며 아빠의 허리춤을 꼬집으셨다.
이 글을 쓰는 오늘.
송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공석이었던 전국노래자랑 사회자에 개그맨 김신영이 발탁되어 처음으로 방송을 한다. 본 방송 시간을 깜박하고 시청하진 못했지만 8살 어린 편노을 떠올리며 2022년 10월 16일 전국노래자랑 다시 보기를 찾아 봐야겠다.
*감사할 일*
편노의 무모한 전국노래자랑 예심 에피소드를 통해 모든 도전은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칭찬받을만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