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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Mar 06. 2023

첫 번째 모퉁이


걷다 보니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 게 있다고 믿을래요.
길모퉁이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나는 작년 처음으로 밤호수님의 에세이 클럽 3기 수업을 통해 8주간 첫 글쓰기를 배웠다. 쌤과 문우들과 매주 글쓰기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지만 두 편의 글을 써야 하는 숙제는 매주 내 가슴의 돌덩어리처럼 부담스러웠다. 그 부담이 커지자 나는 숙제 제출일을 매번 지키지 못했고 점점 내 글에 자신이 없어지고 부끄러웠다. 다행히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고 에세이 클럽 수업이 끝났다. 그 수업 이후 나는 스스로 글쓰기 능력은 없다 결론을 스스로 내고 다시는 글쓰기 수업 신청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 런. 데.

그 다짐은 '소설 창작 수업(기초반)' 수강 신청 포스팅을 읽고 4개월 만에 무너졌다. 글쓰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다신 쳐다보지도 않겠다던 그때 나는 내가 아니고 또 다른 나였던가. 아니면 나는 닭대가리인가? 무튼 아무 생각 없이 소설 창작 수업반을 신청하고 어제 8주간의 수업이 끝났다.

첫 수업 시간, 나와 8주간 수업을 함께 할 문우들 만났다. 줌을 통해 문우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들은 나와 다른 another level이라는 포스가 느껴졌다. 기초반이라더니 흥칫뿡! 중급자들이 신청한 게 아닌가. 이건 사기다. 하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나인 자작 사기라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었다.

나는 첫 수업부터 내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직 내 글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부끄럽고 주눅이 들었다.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한번 자리 잡은 그 생각은 한주 지날 때마다 배로 쌓여 4주 차 이후부터는 첫 문장조차도 써지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숙제를 제출하는 문우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며칠을 써도 문단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글 쓰는 재주가 없다며 5주 차부터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숙제도 제출하지 않았다. 우주의 기운이 내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들려고 그랬는지 그쯤 회사에 큰일이 터져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야근 덕분에 숙제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생겼고 수업도 2번이나 참석하지 못했다.

회사일, 집안일, 수업, 숙제.....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 가족들은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해 주고 도와줬지만 괜히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아서 괜히 속이 상했다. 사춘기 아이처럼 이 상황이 싫고 짜증이 났다.

나는 낯선 곳,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는 꽉 막힌 골목 말이다.

그 골목에서 우왕좌왕 갈팡질팡 헛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8주 차 마지막 소설 창작 수업 날이 다가왔다. 8주 차 수업은 줌이 아닌 대면 수업으로 서울 종각에 위치한 스터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당연히 7주 차 수업 후 일주일 뒤라고 생각했고 그동안 불성실한 나를 참아주고 이끌어준 쌤과 문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수업은 내가 생각한 일주일 뒤가 아니라 7주 차 수업 바로 3일 후 토요일이란다. 끝까지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다. 금요일 퇴근을 조금 일찍 하고 회사 근처 쇼핑몰에서 급하게 선물을 사고 포장지도 따로 준비하지 못해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을 했던 포장지로 얼렁뚱땅 포장을 했다.

부산, 광주, 인천. 나보다 멀리 사시는 문우들이 새벽부터 서두른다. 나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는 종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더 이상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회사에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정확히 밝히자
  -이 수업 이후로 더 이상 글쓰기 수업은 신청하지 말자
  -쓸데없이 일을 벌이지 말자
  -하나라도 잘 하자
  -너 자신부터 알아내라


구체적인 계획과 결론은 없지만 복잡한 생각의 가지치기를 하고 나니 머릿속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스터디 카페에서 3시간 동안 수업을 마치고 점심과 커피까지 긴 시간을 문우들과 보냈다. 배영준 작가님을 제외하고 처음 보는 문우들이었지만 줌으로 7주가 만나서 그랬는지 낯가림 대마왕 극 'I'인 내가 서슴없이 문우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고민 털어놓았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격하게 서로를 응원했다.

나는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8주 차 수업내용과 문우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막다른 골목이라며 안절부절 했던 나는 갑자기 출구를 것처럼 생각이 새롭게 정리되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갈 때 생각과 전혀 다르게 말이다.


-회사는 그만두겠지만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의사를 밝히자
-글쓰기. 쌤의 말씀처럼 자기검열을 하기보다 일단 쓰기부터 하자
-출판의 욕심은 없지만 그래도 목표를 두고 글을 써보자
-이것저것 배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날 저녁, 나는 식구들에게 당분간 수업 신청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잘 생각했다며 그 마음 변하지 말라고 덧붙여 말한다. 나는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많은데 그들은 내가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친김에 나는 마지막 소설 창작수업과 문우들의 만남을 통해 새로 꿈꾸게 된 나의 계획을 식구들에게 이야기하며 조언도 구했고 아이디어도 얻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1년이라는 기간을 정하고 시작해 보려고 한다.

막다른 골목이라 여겼던 길.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니 그 길 끝에는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모퉁이가 있었다. 이제 나는 나의 첫 모퉁이를 돌기 직전이다. 나는 모퉁이를 돌면 어떤 일이 생겨날지 모른다. 나는 그 모퉁이 앞에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망설이겠지만이지만 막다른 골목을 만나기 전으로 되돌아가진 않겠다.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막다른 골목을 여러 번 만나겠지만, 나는 그 길 끝에는 분명 모퉁이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길모퉁이를 돌면서 매번 어떤 새로운 길을 만날지 상상하며 설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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