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자 Mar 19. 2023

미라클 올빼미




2014년 어느 겨울, 나는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 갇혔다. 그 후 2년 동안 동굴 속에서 나는 분노와 원망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내 마음이 불안할수록 분노와 원망은 커졌다. 안주가 점점 커지고 풍성하니 술의 양도 늘고 나도 모르게 동굴 속 삶을 즐겼다. 내가 그렇게 즐기는 동안 현실 속 일상은 무너졌다. 



2016년 어느 겨울, 밤인지 낮인지 모른 채 나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지금 몇 시지?'

'애들 밥은 줬나?

'내가 왜 여기 누워있지?'


나는 머릿속이 깜깜해졌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다 못해 불안을 느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눈알은 이리저리 방향성을 잃어버린 채 정신없이 돌아갔다. (당시 큰아이는 11살, 쌍둥이 딸들은 7살이었다.)  


침대 밖을 나와 거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넘은 늦은 밤이었다. 거실 바닥에는 레고 블록들이 널브러져 있고 거실에 펴 둔 상위에는 미미, 바비와 함께 마시다만 맥주캔들이 있었다. 물론 저녁 설거지는 그대로 싱크대 위에 쌓여있었다. 나는 숙취 때문인지 신경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두통 증상을 달고 살았고 습관적으로 타이레놀을 먹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타이레놀 한 알을 털어먹고 청소와 설거지를 시작했다. 집안 정리를 다 하고 나니 새벽 3시를 넘겼고 나는 다시 자려 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멍한 상태로 새벽 6시를 맞이했다. 


그때 보낸 3시간 내외의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오롯이 '나'로 그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뿌듯했고 행복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시간, 그 기분을 계속 갖고 싶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2년 동안 동굴 속이 좋다며 그냥 이대로 살겠다 했던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새벽, 나만의 시간을 맞이하려면 일단 멀쩡한 정신으로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해가 떠서 지기 전까지 나는 계속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일단 멀지 않은 길은 걷기로 했다. 그리고 인터넷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져 오전에 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몰 의류 포장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내 상황을 알 길 없는 지인들은 얼마나 번다고 알바를 하냐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일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만들어준 고마운 일들 중 하나였다.  물론 새벽에 자던 취침 시간도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맞춰 일찍 잤다. (사실 낮에 몸을 많이 움직여서 아이들 재우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적이 더 많았다.) 그렇게 일 년이 넘도록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몸이 알아서 깨어났다. 


새벽 다섯 시부터 일곱시까지 나는 20여 년 만에 일기도 쓰고 책도 읽었다. 일기를 쓰는 동안 내 불안이 안정됨을 느꼈고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이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쓰기와 읽기'가 재미있어지다니 나답지 않아 어색했지만 그래서 더 계속해보고 싶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꿈도 꾸고. 그러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2016년 겨울, 그 새벽에 만난 3시간이 나에게 미라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라클 모닝' 책 속 주인공의 미라클 모닝은 나보다 훨씬 체계적이었고 그 책을 읽고 실천하는 다른 사람들의 미라클 모닝 또한 속이 꽉 차 보였다. 아는 게 병이라 했던가, 그전까지 기적이라 여겼던 나의 새벽시간이 왠지 허접하게 느껴졌다. 나는 급하게 필사 모임, 독서모임, 조깅 등으로 2시간을 꽉 채웠다. 처음 한 달은 뿌듯했다. 그다음 한 달은 부담스러웠다. 그다음다음 한 달은 새벽 다섯시에 울리는 알람을 듣지 못했고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나태해지는 나에게 실망을 했다. 실망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미라클 모닝은 기적의 시간이 아니라 괴로움과 스트레스의 시간이 되었다. 2021년 재취업 후, 나의 미라클 모닝은 일주일에 하루만 지켜도 '애도 셋이나 키우고 출근도 하는데 이 정도면 잘했다'라며 나를 합리화했다. 


이제 5년 전 나의 3시간의 기적은 사라져버렸다. 






딸들 수학 학원은 숙제를 다 못해가면 나머지 수업을 해야 한다. 나머지 수업을 아주 싫어하는 그녀들은 무조건 숙제를 다 하려고 하고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나와 남편에게  SOS 한다. 지난 수요일 딸들이 밤 10시가 넘어 수학 숙제를 물어본다. 


'엄마, 나 이 문제 좀 알려줘.'

'뭔데? 내일 엄마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11시까지만 알려줄게. 빨리 줘봐.'

'아. 그럼 이 문제만 알려주고 주무세요. 나머지는 우리끼리 해보고 모르면 학원 가서 선생님께 물어볼게'

'그래.'


그 주는 미라클 모닝을 하루만 했기에 '목요일에는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조깅도 하고 책도 읽자'라고 마음먹은 날이라 내 마음이 조급해져 아이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알람이 울렸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아침 일곱시 반,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웠다. 숙제하느라 새벽 1시에 잤다며 10분 뒤에 깨워달라는 그녀들의 말에 나는 미라클 모닝 핑계로 어제 끝까지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오늘 미라클 모닝을 지키지 못한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미라클 모닝'의 기적을 맛보겠다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보다 나만의 시간을 우선순위로 생각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있어야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 생각했다. 지금 고등2인 큰 아이는 밤마다 무엇을 하면서 몇 시에 자는 지도,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들이 새 학기 교우관계로 힘들어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나는 지금 매일 미라클 모닝을 하지 못하고 어쩌다 일찍 일어나면 솔직히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대며 다시 침대로 돌아가기 일쑤다. 지난 목요일 아침 이후 종일 나는 나의 미라클 모닝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금요일 새벽, 전날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기적의 시간을 수정했다. 





왜 미라클 모닝 했는가?

- 내가 처음 맞이했던 기적의 순간이 새벽이었기 때문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홀로 있는 시간이 새벽이었기 때문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그들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나의 도움이 무조건 필요했다. 아이들이 깊이 자는 새벽이나 돼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이 기적이라 믿었고 그 시간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 남들도 다 새벽에 하기 때문



어떻게 생각이 정리되었나?

- 내가 처음으로 맞이했던 그 새벽만이 기적이라고 생각한 편협한 생각을 내려놓기로 함

- 내가 모르는 타인의 미라클 모닝과 비교하면서 욕심을 내려놓기로 함

- 엄마, 아내, 딸 역할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나를 위함이고 기적이라 생각했던 교만을 내려놓기로 함

-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어 예전보다 내 손이 필요 없어졌지만 밤늦게까지 할 일이 있는 아이들 곁에 함께 있어줘야 할 시기임. 
  내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미라클 모닝 때문에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기를 망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젠 내가 애들보다 일찍 퇴근해서 저녁 하면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엄마!','엄마?', '엄마!, 엄마!, 엄마!'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숨넘어가듯 하루 종일 나를 찾던 소리보다 '예독아, 어디야?','책소금 저녁 뭐 먹고싶어?','편노야, 자라' 등 내가 아이들 찾는 소리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 이제 어쩔 건가?


이제 나는 미라클 모닝러가 아닌 미라클 올빼미로 전격 변신하고 시간 때를 변경한다.

'기적이란 기적을 믿는 사람들 이에게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미국의 미술사가(검색해 보니 그렇단다)인 버나드 베런슨의 말처럼 기적은 새벽 시간에만 오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믿는 순간 매초 일어날 것이니 내가 미라클 올빼미가 되어도 기적은 일어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난 그 곁에서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미라클 올빼미'다. 올뺌~올뺌~








매거진의 이전글 첫 번째 모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