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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Apr 18. 2023

그리움과 먹먹함은 세트메뉴 @ 수필

일단 쓰고 우기는 문학장르

일단 쓰고 우기는 문학장르. 이번 글은 수필이라고 우겨 봅니다. ^_^



춤추는 가족_이중섭



나는 몇 년 전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 2:한국' 편을 읽고 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일부러 전시회를 찾아보진 않았다. 그러던 중 2020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사망 후 2021년 'MMCA 이건희 컬렉션'이 열렸고 나는 관람 예약을 위해 PC 앞에서 광클릭을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 후 나는 이중섭도 전시회도 한참 잊고 있었다.


2주일 전 블로그 닉네임 '올리브와 레몬나무'님의 포스팅을 통해 'MMCA 이건희 컬렉션_이중섭' 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사이트에 들어가 예약을 했다. 누가 보면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미술 전시회를 통해 작가의 고뇌와 작품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단순하게 전시회의 분위기가 좋아서 간다.  예를 들면, 읽을 책도 구입할 책도 없지만 그냥 도서관과 서점이 좋아 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미술관 가는 길 차 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화가 이중섭은 황소와 아이들 소재의 그림을 많이 그렸고 아내와 두 아들과 멀리 떨어져 살았고 그 뒤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다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기본 정보를 들려줬다. 설명하는 동안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등 했지만 나는 드디어 이중섭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마음에 괜히 설레었다.


설렘은 잠시 뿐. 나는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자 들뜬 감정은 사라지고 이상하게 내 배꼽 속에 무직하면서도 뜨거운 작은 돌멩이 같은 무언가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지? 나는 미술관을 다니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하고 낯선 감정이 어색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아이들과 끈_이중섭



1940년 대 완성한 연필화, 엽서화 작품을 지나 나는 '아이들과 끈' 작품 앞에서 발이 멈춰졌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얼굴이 나는 너무 슬퍼 보였다. 내 눈에는 아이들이 잡고 있는 초록 끈이 뱃속 아이의 생존을 책임지는 탯줄처럼 보였다. 그 끈을 탯줄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다시 보니 마치 아이들이 그 끈을 놓치면 힘들게 버티며 살았던 삶이 무너져 버릴까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웃고 있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이 그림 속에서 이중섭은 나에게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전시장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내 배꼽 깊은 곳에 있던 무직하고 뜨거운 그 무엇이 조금씩 위로 움직여 내 갈비뼈를 아프게 했다. 미술관에서 제공되는 작품 해설을 읽어보니 그림 속 아이들의 신체 일부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며 얽혀 있는데 이는 이중섭의 작품 대부분에서 볼 수 있고 이런 특징은 심리적인 '분리 불안'의 징후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한다.


'분리 불안'

내가 이 작품에서 느낀 슬픔과 불안도 그 이유 때문이었을까.



게와 물고기와 새와 아이들_이중섭



중섭은 참으로 놀랍게도
그 참혹 속에서 그림을 그려서 남겼다.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포판에서도 그렸고,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고,
잘 못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
표랑 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구상. [이중섭의 인품과 예술], [대향 이중섭] 한국문학사, 1979년 4월 141쪽-



'작품의 보호를 위해 은지화가 전시된 공간이 어둡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푯말을 지나 은지화가 전시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나는 은지화를 보기 전에 작품 옆에 적힌 이중섭의 친구 '구상'이 쓴 글을 읽고 내 갈비뼈를 아프게 했던 그것이 더 위로 올라와 내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목구멍을 막아 그랬는지 이내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났다. 내가 봐도 어색한 내 모습을 남편과 딸들이 볼까 싶어 쓰고 있던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은지화 소재 역시 아이들, 가족, 새, 게, 물고기였다. 나는 은지화를 감상하는 동안 과연 이중섭은 어떤 마음으로 그저 그리고 또 그렸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에게 쓴 편지_이중섭



은지화 전시 공간을 벗어나면 일본에 있는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남덕)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오랫동안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작품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와 아들 야스카타군에게 보낸 편지화다. 야마모토 마사코를 천사라고 부르며 만세를 외치는 그 편지 양 끝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파랑새를 머리 위에 올려둔 아내는 온화한 미소와 손짓을 하고 있으며 두 아이들은 웃고 있다. 그 그림 속에 이중섭은 그들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다른 끝에는 네 가족이 웃으며 포옹하는 그림이디. 나는 편지 속 두 그림을 보면서 가족을 향한 이중섭의 사랑과 그리움이 느껴졌고 그 당시 이 편지를 쓰는 이중섭도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제발 행복했기를 기원한다.


야스카타군에게 보낸 편지화에는 단순하게 꽃, 새 그리고 손을 그렸고 달랑 '야스카타군. 아빠, ㅈ ㅜ ㅇ ㅅ ㅓ ㅂ'만 쓰여있다. 엽서 표지 같은 이 심플한 편지화에 나는 그동안 내 목구멍을 뜨겁게 막고 내 얼굴을 붉게 만든 그 무엇이 내 눈으로 올라와 눈 밖으로 뜨겁게 흘러내렸다. 예상하지도 못한 내 모습에 나 스스로 당황했고 속으로 나이 드니 주책이다 생각하며 급하게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전시관 입구부터 내 몸을 무직하고 뜨겁게 만들었던 그 무엇을 눈물로 흘려보내고 나니 그 무엇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딸려오는 먹먹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중섭이 그저 그리고 또 그렸던 이유도 그리움과 먹먹함을 어떡해서든 토해내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라는 셍긱을 해본다.





전시회 출구에서 아이들이 나를 찾는다. 나는 눈물자국을 싹 지우고 웃으며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 남편과 아이들도 이번 전시회는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단다. 그리고 바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조잘조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중섭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찰나의 순간에 감사했다.   






그렇게 행복한 토요일을 보내고 4월 16일 일요일.

오늘이 세월호 희생자 9주기였다는 것을 아침 운동 중 몇몇 사람들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고 생각이 났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바로 프로필 사진을 변경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짧게 기도를 드렸다. 사실 그 사건 이후 2~3년 동안 나는 아주 크게 의미 있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잊지 않고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어서일까 어느 시점부터 나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했고 기도 또한 하지 않았다.

말로만 기억하겠며 떠벌렸지 솔직히 내 진심을 다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어제 이중섭 전에서 아주 짧게 느꼈던 그리움과 먹먹함이라는 감정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들의 고통이 아주아주 미세하게나마 느껴졌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심을 다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그리고 힘 있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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