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D-7
춘천: D-28
추석 전날부터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생각 없이 기름진 음식과 술을 아주~ 잘 먹었다. 굳이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아도 2kg 정도는 가뿐히 늘었다는 것을 즉감 했기에 매일 아침 올라가던 체중계도 올라가지 않았다. 인간의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아니 안 하는 것 같다. 가끔은 착한 거짓말로 몸의 주인을 기쁘게 해 줄 만도 한데 이 친구는 융통성이 참 없다. 서울 레이스를 일주일 앞두고 스스로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한 나를 질책하기보다 융통성 없는 내 몸이 문제라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
아무리 핑계를 만들어도 대회가 코앞이니 주말 달리기는 해야 한다. 나와 남편은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고 트랙으로 나갔다. 15km 6분 30초 목표를 세우고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다.
'도시과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신작 소식에 소장해 둔 그의 책들을 살펴봤다. 그런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이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키 님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여기저기 떠벌렸는데 그 책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책이 우리 집에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새책 대신 중고책을 구매했다. 세탁기에 들어가면 한 짝씩만 나오지만 한참 지나면 제짝을 찾는 양말처럼 그 책도 분명 언젠가 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책이 추석 전날 도착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이 시기에 출간되었고 내가 책장을 살펴봤으며 이 책이 없다는 걸 알고 다시 구매한 이 모든 것에 괜히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 마라톤 7일, 춘천마라톤 28일을 앞둔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께서 다시 읽어보라고 한 거야. 이건 데스티니~~"
나 혼자 꼴값을 떨며 달리기 후 책을 펼쳤다.
첫 장부터 그의 글은 내 마음을 읽는다. 그의 글처럼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빠른 스피드, 호흡법, 케이던스 등등 그 따위 것들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꾸준히 거리를 쌓아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할 때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한다. 나는 그런 것들만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기 시작과 동시에 그만 달리고 싶다, 왜 시작했지, 속도도 안 늘고 나는 재능이 없어, 아 목말라 등등 오만가지 불평을 한다. 그런데 투덜투덜거리면서도 그다음 날 주섬주섬 다시 운동복을 입고 있다. ㅋㅋㅋ 이 정도면 나라는 인간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늘 나의 새 별명을 찾았다. 나는 투덜이 스머프다.
10/8 대회 목표는 2시간 10분 내 골인이다. 지켜질지 못 지켜질지... 일단 대회 전까지 가벼운 조깅과 수분 공급으로 컨디션부터 잘 조절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