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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자 Oct 13. 2023

주말 달리기_2023 서울 레이스 하프마라톤




서울: D-DAY

춘천: D-21



2023년 10월 8일 오전 5시 30분 서울 레이스 하프마라톤 당일, 조금 일찍 일어나 여유 있게 준비를 했지만 남편의 장트러블로 인해 집에서 조금 늦게 출발했다. 대회 시작 20분 전에 도착한 나와 남편은 충분한 준비운동 없이 출발 대열에 합류했다. 남편은 직장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갔고 나는 나의 목표 달성을 위해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 뒤에 자리를 잡았다. 작년보다 날씨도 좋고 달리기도 더 한 것 같은데 작년에 없던 목표시간이 생겨서 그런지 처음 뛰는 사람처럼 긴장을 했다. 나는 출발 신호와 함께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 뒤를 바짝 쫓았고 스마트워치 대신 그녀의 페이스를 믿고 달렸다. 그리고 달리다 그만 뛰고 싶은 생각이 들 땐, 나처럼  그 페이스메이커의 뒤를 따르는 이름 모를 수많은 여성 러너들의 모습을 보며 자세와 호흡을 재정비했다. 이 페이스만 유지하면 2시간 10분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 같았다.  


 여기까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다.






5km마다 급수대에서 수분을 보충하며 안정적으로 달리던 중 13km 정도에서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달리는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올 수는 있지만 화장실을 다녀오면 페이스가 무너져 목표 시간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아 참고 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정신이었고 충분히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1분도 안 지나서 바로 돌변했다. 짧은 시간 동안 내 방광의 소변 수위는 점점 올라왔고 이성의 끈이 점점 느슨해졌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고개를 돌리며 화장실을 찾았지만 그 많던 화장실은 보이질 않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깜깜해질수록  나의 방관의 수위는 더 빠르게 차올랐다. 15km 코너를 돌고도 화장실이 없으면 그때는 대회를 포기하고 어디든 들어가자는 생각을 하고 최대한 방관에 집중을 하며 코너를 돌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경찰서 황금색 참수리가 환하게 반짝거렸다. 무작정 참수리를 향해 달렸고 그 모습을 본 경찰은 내가 엄청 다급해 보였는지 여자 화장실에는 사람이 있다며 남자화장실 자동문을 열어주었다. 성별을 따질 겨를 없이 열린 문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세면대 거울 속 내 얼굴이 ‘이제 살았다’라고 내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짧지만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 나는 2시간 10분 목표 대신 남은 거리 즐겁게 달려 완주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5km를 더 달려 골인 지점에 도착해 기록을 확인하니 2시간 11분 52초였다. 목표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내 예상을 깬 꽤 괜찮은 기록이었다.


집에 오는 길, 남편은 내 기록이 아쉽다 했지만 나는 전혀 아쉽지 않다. 나는 1분 52초라는 간극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조금 맛보았고 새로운 마라톤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 식상하다 생각해지만 나는 오늘의 경험으로 그 식상함이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내가 느낀 마라톤과 인생의 공통점
목표에 맞춰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계회대로 진행돼도 목표달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해도 성공인지 실패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아무리 연습해도 출발선에 서면 처음처럼 긴장된다
아무리 연습해도 매번 처음처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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