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C
광청종주 (광교산~청계산)
버들치고개-형제봉-비로봉-시루봉-백운산-바라산-하오고개-국사봉-이수봉-청계산 정상 (매봉)- 원터골
편도거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약 25km
편도시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8시간 ~ 9시간 소요 (보통걸음 기준)
코스 A, B, A+B 를 조금 다니면서 트레일 러닝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덜컹 5월 31일에 열리는 2025 거제 100k 대회 30 km 코스를 신청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일단 저질렀다. 저지르고 보니 대회까지 3개월이 남았었다. 이왕 신청했으니 DNF(중도 포기) 없이 완주하고 싶었다. 욕심을 내자면 5시 30분 컷오프도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40km 대회에 참가하는 남편과 함께 주말마다 산으로 갔다. 코스 A, B, A+B콤보는 길어야 20km 내외였다. 그 이상의 장거리 트레일 러닝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준비한 코스 C, 광청종주다. 광교산에서 시작해 청계산으로 끝나는 편도코스로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거리는 조금 다르다. 내가 선택한 광청종주는 코스 A 버들치고개에서 시작해 청계산 정상 (매봉)까지로 총 25km 거리다. 이 코스는 등산으로도 9시간 정도 소요되는 꽤 길고 난도가 높다. 그만큼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러닝 조끼나 작은 배낭에 1리터 물통 2개 이상, 바나나 1개 또는 방울토마토 한주먹, 떡이나 김밥 한 줄, 미니 약과나 초콜릿, 에너지 젤 3개 정도, 식염포도당 사탕, 모자, 선글라스 (햇볕 가리는 용도도 있지만 봄과 여름엔 눈앞으로 날아오는 벌레를 막아주는 역할도 함), 등산용 장갑, 스틱 (가벼울수록 좋음), 손수건 (땀도 닦지만 줄줄 흐르는 콧물도 닦아줘야 함), 방풍재킷, 응급키트(상처연고, 반창고, 진통제 등 장거리 산행엔 필수), 신용카드, 보조 배터리. 개인적으로 준비물을 다르긴 하겠지만 대략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단 일출 전이나 일몰 후 시작한다면 헤드렌턴을 꼭 준비하자. 이 준비물은 봄과 늦은 가을 기준이다. 겨울에는 더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다. 나같은 초보자에게는 달리기보다 등산을 권하고 싶다. 기온이 낮아 땀이 식으면서 저체온증이 생길 수도 있고 낙엽으로 가려진 빙판길을 잘 못 지나가다간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났다면 출발하자. 코스 A와 B는 애피타이저다. 오르막에서 에너지가 남는다고 무리하게 뛰지 말자. 천천히 가볍게 지나가자. 정상석에선 인증숏만 찍고 바로 출발하자.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시루봉까지 에너지를 비축했다면 백운산을 지나 바라산까지 약 4.1km 능선길 달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렇게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지점에서 첫 광청종주 중도포기를 했기 때문이다. 자주 달려 익숙한 코스 A와 B를 메인 디쉬처럼 달려버렸더니 남은 에너지가 없었다. 시루봉에서 바라산까지 3~4번을 쉬면서 물과 음식으로 에너지를 채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바라산 정상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시루봉으로 돌아와 수지 성당 입구로 하산했다. 하산 후 오후 4시부터 잠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예전부터 산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첫 종주 실패로 더 어렵고 까다로운 상대가 되었다. 다시 도전하려니 선 듯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대회는 한 달 전으로 다가왔고 숙도 예약도 모두 끝난 상태였다. 포기하기엔 너무 늦은 시기였다. 어쩔 수 없이 코스 C에 다시 도전해야 했다.
첫 번째와 동일하게 준비물을 챙겼지만 이번엔 오르막은 최소한으로 달리고 내리막은 최대한 속도를 내자라는 다짐으로 두 번째 광청종주를 시작했다. 한 번 경험했다고 바라산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다. 내친김에 하오고개까지 쭉 달려갔다. 하오고개는 의왕시에서 성남시의 경계이다. 예전에 산고개였겠지만 지금은 육교가 놓아져 쉽게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 이 다리를 만나면 광청종주의 반 정도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표면적 거리상으로 절반일 뿐이다. 동일한 지형도 고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 얘기는 하오고개 육교를 지나자마자 증명된다. 하오고개에서 국사봉까지는 1.5km뿐이 안 되는 거리자만 워밍업 구간 없이 가파른 돌밭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짧은 구간이지만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르막으로 인해 여태껏 '할 수 있다'라며 다독거렸던 정신줄을 확 놓을 수도 있다. 체감상 '숨 돌릴 틈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나 같은 트레일 러닝 초보자는 달릴 수 없는 구간이다. 광청종주 완주를 하고 여기서 잠깐 '쉬지 않고 걷자'로 계획은 변경하자. 이 계획은 포기가 아니라 목표달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코스 A와 코스 B는 이 구간에 비하면 비단길이다. 정말 고난도 깔딱을 넘어서면 이수봉까지 1.5km 평탄한 능선길이다. 같은 1.5km지만 천국과 지옥 정도의 차이다. (두 곳 모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써본다.) 코스 A와 B에서도 그랬지만 산은 깔딱 구간 뒤에 평탄을 길을 내어준다. 산이 심술을 부리는 걸까? 아님 밀당을 부리는 걸까? 아님 이 맛에 산에 오라고 유혹을 하는 걸까? 산의 진심은 모르겠지만 이 매력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 같다. 산에 매력에 푹 빠지다 보면 어느새 청계산 정상 매봉을 만난다. 이수봉에서 매봉으로 가는 길은 중간에 표지판을 꼭 확인하자. 샛길이 많이 있어 잘못 들어서면 매봉을 만나지 못하고 하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봉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동이라 어렵지 않지만 버들치고개부터 누적된 체력 소모로 적잖이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끝이 보이니 정신이 또렷해지며 끝까지 밀어붙이는 에너지가 생긴다. 그렇게 매봉 정상봉에 도착하면 서울 시내와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경도 멋지지만 광청종주를 해냈다는 부뜻함에 넘치는 자기애와 자존감에 황홀감을 느낀다. 어떤 도전도 어려움도 모두 이겨낼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오른다. 여기서 남은 음식도 탈탈 털어먹는다. 몸은 가볍게 마음은 충만하게 한 뒤 원터골을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내려가는 것쯤이야 라고 쉽게 생각한 하산길은 다시 한번 내 뒤통수를 쳤다. 내가 변덕스러운 건지 산이 변덕스러운 건지 매봉 정상석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싹 사라졌다. 돌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돌계단이 끝나면 그냥 계단이 나오고 또 돌계단이 이어진다. 뛰지 말고 굴러갈까?라는 생각을 3번 정도하고 나면 원터골이 나온다. 드디어 최종 도착지다. 원터골 등산코스 지도 앞에 벌러덩 누어버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사회적 체면 따윈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누워 5분 정도 지나니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벌떡 일어나 옷과 신발을 털고 아무렇지 않게 원터골을 벗어났다.
나의 첫 광청종주 기록은 총 거리 26km, 소요 시간 6시간 54분, 누적상승고도 1958m이다. 좋은 기록인지 나쁜 기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번 광청종주 기록으론 거제 100k 30km 5시간 30분 이내 완주 목포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주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뒤로 세 번째 광청종주를 도전했지만 감기로 인해 백운산에서 하산했다. 한 번의 성공이 영원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걸 코스 C를 도전하며 깨닫는다. 산과 로드를 달리면서 산행과 마라톤을 인생에 비교를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코스 C를 세번 도전하고 나는 2번째 트레일 러닝 신발을 샀다. 2026년 봄이 오면 이 새신을 신고 다시 한번 폴짝 뛰어올라야겠다.
산을 달리다 보면 '굳이 정상까지 가야 해? 가면 누가 상 줘?', '정상에 가면 뭐 달라?', "걸어가도 힘든데 굳이 달릴 필요가 있나?', '중간에 내려가도 아무도 모르잖아. 그냥 내려가'. 등 '왜?'라는 생각에 주춤할 때가 있다. 애초에 이런 생각을 안 하면 되는데 아직 내공이 부족한지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내 발을 멈추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 시작을 안 했어야지. 이왕 하기로 했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왜'라는 생각을 지워버린다. 정상석에서 인증숏을 찍는 내 모습, 탁 트인 풍경을 보면서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고 있는 내 모습, SNS 기록하며 뿌듯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멈춰있던 발이 가볍게 들린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넘기다 보면 목적지에 닿는다. 목적지 도착한 나는 출발지에 있던 나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 나 좀 멋있는데 라는 자존감으로 조금 성장한 나를 발견한다. 이런 생각과 감정은 비단 트레일 러닝이나 마라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을 사는 동안 무수한 깔딱 고개를 만난다. 한두 번은 피할 수 있겠지만 평생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방법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이다. 나만 그만두지 않으면 기회는 무한하다. 일단 해보자.
광교산에는 내가 소개한 3가지 코스보다 더 맛있는 코스로 가득하다. 그리고 내가 맛보지 못한 코스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러다 대하소설이 될 것 같아 여기에 소개되지 않은 코스는 이 글을 읽는 이가 직접 찾아 맛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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