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에브리데이미 Nov 07. 2019

제 살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커오면서 살이 찔 때마다 바로바로 지적을 받고는 했다. 가족, 친척, 이웃집 아줌마, 아는 오빠, 선생님, 직장 상사 등등. 주위에 포진한 이들은 원래 알던 라인에 변화가 보이면 발견한 점을 즉각적으로 만인에게 공포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살쪘어?


너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지적의 뉘앙스와 강도는 사람마다 달랐으나, 남의 살에 대해 꼭 돼지고기 근수 따지듯이 무심히 평한다는 점은 비슷비슷했다. 죽은 돼지고기와 달리 살아있는 나는 내 몸에 대한 논평을 고스란히 두 귀로 듣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죽은 돼지처럼 못 들은 척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했다. 


 따로 와서 은밀히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꼭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 크게 떠들어대는 바람에 상처 받은 마음보다 나 때문에 싸늘해질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먼저 염려하고는 했다. 진지하게 정색하면 ‘성격까지 안 좋다’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웠던 나는 수치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여유로운 척, 농담으로 눙치거나 삐진 표정으로 장난치듯 째려보는 리액션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는 살찐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함부로 대하는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그러니 나도 살이 찌면 비난받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살을 찌운 행적(고칼로리 음식 과다 섭취)을 반추하자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뒤, 내 몸으로 증명해 버린 기분이었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라도 고칼로리 음식은 삼가고 식이조절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음식량과 운동량을 조절해 몸을 관리하는 건 엄연히 내 몫이고 개인의 영역인데 내 몸이 내 것이라는 점을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장난이랍시고 사람을 피가 나게 때리면 구속되는 건데.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한 구속력이 지나치게 낮았다.


싫은 사람 추가:  몸무게 잴 때 옆에 와서 보는 사람


 '날씬함'의 기준 역시 지나치게 높았다. 내 몸은 사실 건강검진 표상으로는 한 번도 비만이라고 나온 적 없는 ‘건강한 몸’이었다. 몇 킬로그램씩 빠지고 쪘을 뿐, 늘 ‘표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살쪘다’는 지적을 받았고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나 스스로도 ‘살쪘다. 잘라내고 싶다.’는 혐오 의식을 품고는 했다.


 날씬함을 넘어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매가 추앙받는 사회에서 날씬함의 기준은 이미 건강의 적정선을 넘은 상태였다. 그런 면에서 ‘건강한 돼지’의 줄임말인 ‘건돼’는 병적인 미적 기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지나치게 슬림한 팔뚝과 다리, 쏙 들어간 배에서 벗어나는 건강함은 단박에 ‘건장함’이 되어버리고 건장함은 곧 돼지로 비하된다. 건강을 위한 날씬함이 아니라 시각적인 쾌락을 위한 스키니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표준처럼 여겨진 날씬함의 정체였다.



 주위 사람들이 살찌면 바로바로 지적하는 게 거의 습관이 되어 있던 애가 있었다. “이게 다 너희들 몸매 관리해주는 거야. 계속 지적해줘야지 긴장감이 생겨서 관리를 하게 된다니까.”라며 무례함을 사명감으로 정당화하던 애였다. 그는 종종 본인의 선입견을 그럴듯한 자기 계발 스피치로 포장하고는 했다.


  이건 노력의 문제야.
나는 뚱뚱한 애들 보면 게을러 보이더라.
자기 관리 안 한다는 소리잖아.


 

  이게 무슨 쥬비스 홍보실장 같은 소리람.     


 내 주위에는 뚱뚱한데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데? 몸매 관리는 자기 관리의 일부임이 맞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자기 관리의 척도는 다양하다. 몸매 관리에 돈 쓰는 대신 저축하는 건 ‘자산 관리’, 책을 읽는 것은 ‘지식 관리’, 사람을 잘 챙기는 건 ‘인간 관리’,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은 ‘여유 관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함부로 비난하는 건 ‘인성 관리’와 ‘교양 관리’가 덜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상대의 인격이 부족하다고 해서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의 결점을 지적하는 자체로 선을 넘는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살’에 관한 품평은 이토록 자유분방하게 무례한 걸까?     


 배우 하재숙은 언론 인터뷰에서 “배우 일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엄청나게 독서를 하고 악기를 배우고 춤을 배우

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그저 날씬해지는 게 자기 관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서글펐다”라고 말한 바 있다. 몸매 관리가 자기 관리의 전부는 아니며 하든 말든 남의 살이다. 뚱뚱한 몸을 보는 게 괴로우니 안구 정화를 위해서라도 살 빼라는 언어폭력은 멈춰달라. 우리 귀의 정화를 위해, 할 말 안 할 말을 구분해서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전 04화 가정주부입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앞치마 벗는 김에 노브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