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비와 숙박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 순간,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움직이면 그게 다 돈인데 어디에 예산을 집중해야 할까?
예산의 대부분은 교통과 숙박이 다 잡아먹기 마련이라 ‘어떻게 가고, 어디에서 자느냐’는 돈을 절반으로 줄일 수도, 두세 배로 늘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애초에 사진으로 봤던 장소를 직접 보고 싶은 게 목적이었으니까. 목적지의 수단에 불과한 교통과 숙박은 최대한 저렴하게 가면 되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꺼려졌다. 싸구려 숙소에서 받은 후줄근한 불쾌함이 여행 전체의 추억의 질을 바꾸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최저가는 여행의 본질적인 목적인 ‘즐거움’에 위배되는 절약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비행은 무조건 저가항공으로 가야 했다. 고가 항공과 가격차가 기본 두배라 인당 추가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여섯 배까지 차이가 벌어졌다. 모아놓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그나마 저가항공이 아니었다면 다른 나라로 떠날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니 비좁은 자리도 감지덕지, 기내식 생략도 감지덕지였다. 여러 가지 불편함쯤이야 몇 시간만 참으면 될 일이었다. 결국, 가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한 가닥 망설임을 ‘확인’ 버튼으로 지워냈다.
다음은 숙소였다. 여행사 결제 창을 닫고 포털사이트로 돌아와 호텔을 검색했다. 그래 봐야 광고성 짙은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낯선 지역의 윤곽을 잡는 데에는 그거나마 밑그림 삼아 필요한 지푸라기였다. 먼저 날짜별 호텔 가격을 체크한 후, 관심 가는 호텔은 블로그를 통해 직접 찍은 사진을 일일이 확인했다. 룸 컨디션을 호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건 면접관이 포토샵 처리 한 프로필 사진을 그대로 믿어주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홈페이지 사진과 실물 사진은 같은 방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딴판이었다. 기본적인 가구 배치는 같았으나 홈페이지에서는 말끔하게 지워져 있던 오래된 연식과 때 묻은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일이 손품을 팔아 미리 보기 하며 찾는 방은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가격 대비 만족감이 드는 ‘가성비’가 좋은 방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성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만족감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내가 가진 돈에 정보력을 더해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뿐이지 최고를 선택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작년 제주도 여행에서였다. 공사 시즌이라 이십만 원 밑의 특가로 뜬 오성급 호텔을 충동적으로 예약해 버렸다. 너무 사치를 부린건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들었으나 지난 세월 중에 가장 고생스러웠던 순간을 끌어다 붙여 합리화하는데 성공했다. 여행 첫날, 고풍스러운 건물과 야자수가 어우러진 입구에 내리는데 귓가에 무전기로 ‘고객님 들어가십니다’라고 사인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무전을 듣고 달려와 모인 직원들이 환한 미소를 건네며 짐을 받아 들었다. 고객만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호텔의 정책에 따라 로비 한쪽에 마련된 룸에서 감귤주스를 마시며 체크인 종이에 사인을 했다. 고급 의자에 앉아 고급 테이블에 놓인 고급 종이에 고급 펜으로 사인을 하며 주스를 마시는데 창문 너머 넘실대는 푸르디푸른 제주바다까지 고급지게 보였다.
이튿날 예약한 숙소는 바닷가 앞에 자리한 일박에 육만 칠천 원짜리 비즈니스호텔이었다. 숙소는 마지막 날에 제일 좋은 데를 잡는 법이라던데. 일정이 꼬여 두 번째 날은 숙소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호텔은 호텔이었다. ‘비즈니스’와 ‘호텔’이라는 단어로 최소한의 상식은 갖추었겠다 싶어 믿음이 간 데다 십만 원 안쪽으로 멀찍이 떨어진 숫자에 호감이 가서 예약한 곳이었다. 건물은 서울에서 흔히 보는 모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규모가 더 크고 건물 명칭이 좀 더 얌전하게 쓰여 있을 뿐. 심미성보다 기능성을 살리는데 집중한 점은 비슷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건물 장사가 예술혼을 쏙 빼고 판에 박은 도면에 의지해 만든 게 대놓고 드러낸다는 점에서 빼박이었다.
‘안에서 하는 거 뻔하잖아. 딱히 독특할 필요 있나?’
‘어차피 잠만 잘 거잖아. 멋질 필요 없지.’
이런 외침이 울리는 듯한 직육면체 건물로 들어서자 어쩔 수 없이 마음도 네모네 지는 듯했으나. 매일같이 귀족놀이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육만 칠천 원짜리 방을 예약했을 때부터 감수한 세상이니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자고 가기로 했다. 트렁크를 끌고 카운터에 당도하자 서 있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직원은 키를 내밀며 강조했다.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분실하면 보상비 내셔야 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끝끝내 잃어버린 손님이 많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어절마다 쐐기를 받는 바람에 약간의 위협감마저 드는 말투였다. 협박은 아닌데 왜 협박 같지? 짧은 만남이었으나 그가 직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배정받은 층으로 올라가자 하얀 페인트로 칠한 벽과 빽빽하게 들어선 철문, 기하학적인 무늬가 난무하는 카펫이 펼쳐졌다. 그나마 로비는 대리석을 깔고 낮은 조도의 조명을 비춰 따뜻한 감이 있었는데 복도는 현대식 사막처럼 삭막했다. 키에 적힌 방 번호를 찾아 헤매는 마음이 오아시스를 찾는 것처럼 다급해졌다.
방은 나쁘지 않았다. 침구는 깨끗했고 벽에는 꽤 널찍한 티브이가 걸려 있었다. 욕실도 욕조가 없다 뿐 깔끔했다. 그러나 눈부시게 하얀 형광등 아래 방을 꽉 채운 침대에 앉아 꿉꿉한 냄새를 맡고 있으려니 우울하고 심란해졌다. 창문 밖으로는 호텔 뒤편 주차장이 내려다 보였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이 숙소에 묵는 사람들은 다들 얼마짜리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딱 육만 칠천 원어치의 만족감일까?
마음을 괴롭히는 숙소는 하룻밤짜리 감옥과도 같으나 어릴 때 묵던 숙소에 비하면 감지덕지. 꽤 럭셔리해진 자리라는 걸 안다. 어릴 적 가족여행 다닐 때, 우린 이름만 호텔인 모텔이 아니라 입구에 모텔이라고 쓰인 ‘진짜 모텔’에서 묵은 적이 있는데 거긴 또 어쩐지 모텔이라기보다는 ‘여관’에 가까웠다. 머물렀다간 손님들이 남겨 놓은 듯한, 야리꾸리한 공기가 감도는 방에 누워 사방을 둘러싼 꽃무늬 벽지와 눅눅한 이불에 질식할 것 같았던 기억은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워 성인이 된 뒤에도 아무리 성욕이 넘칠지언정 모텔은 피하게 된 나였다. 그 시절에 비하면 비즈니스호텔은 다락같은 신분상승이었다.
그러나 돈을 더 보태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나는 숙소가 단순히 여행지에서 묵는 잠자리일 뿐이라고 여길 수는 없게 되었다. 이상하게 내 집이 좀 허름한 건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괜찮은데 딱 하루 묵는 숙소는 세세한 항목까지 유별나게 체크되며 날 선 감각을 예민하게 괴롭히고는 한다. 로비에서 방까지의 분위기, 침구의 상태, 욕실의 청결도, 방 안의 냄새와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한꺼번에, 어느 것 하나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고 일일이 보인다. 마음에 안 드는 장소는 떠나면 그만인데. 일단 체크인 한 숙소는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야 하기에 신중해야 했다.
다시 숙소를 잡아야 하는 기로에 놓인 나는 마우스를 손에 쥐고 한참을 망설였다. 여행지에서의 며칠은 짧은 며칠이지만 평생 기억되는 장기적인 며칠이기도 했다. 별 다섯 개짜리 해마를 택할 것인지 그 돈으로 찢어진 커튼을 바꾸는 게 나을지 갈등이 되었다. 추억도 소중하지만 커튼 역시 매일 보는 거라 일상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항목이었다.
대안은 에어비앤비였다. 창 하나를 더 열어 에어비앤비 홈피로 들어가 보니 현지의 감성을 담은 독특한 하우스인데 평도 좋고 가격은 호텔의 절반쯤인 집이 다채롭게 줄지어 있었다. 그중 날짜가 맞는 집을 골라 예약을 마쳤다. 예측 가능한 편리함은 호텔에 못 미치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별을 해마로 득템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에어비앤비 홍보글처럼 되었으나 홍보글은 아니에요^^ 모두들 좋은 숙소 만나 대박 여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