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돈걱정

돈 자랑하는 사람들

by 에브리데이미

나보다 잘 사는 사람 곁에 있다 보면 잊고 지내던 소유의 부재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원래는 없는 줄도 몰랐던 것들인데. 왜 마음은 궁핍해지는 걸까. ‘있어야 하는 것이 없거나 모자람’이라는 뜻의 결핍에 가까워지려는 걸까. 내 형편에 맞추어 두었던 풍족함의 기준이 초라해질 때면 겨우, 이런 말 한마디에도 흔들려 버리는 것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안마의자 샀는데 진짜 시원하더라. 친정이랑 우리 집에 한 대씩 들였는데 좀 걱정돼서 ‘여보 우리 이러다 나중에 거지되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남편이 ‘노후준비는 내가 다 해놨으니까 걱정 마.’ 이러는 거 있지.



박 실장님의 남편은 한 달에 천만 원을 버는, 연봉 1억이 넘는 회사원이라고 했다. 평생 주부로 살아오던 그녀는 영국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시간 여유가 생기자 우리 회사 실장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덕분에 열 명 남짓한 전 직원은 점심시간마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그녀의 아름다운 소비 생활을 들으며 빈부격차의 온도차를 같은 테이블에서 체감해야 했다.


월 200만 원으로 이제 막 네 살, 한 살이 된 애 둘을 먹여 살리는 강 대리. 강 대리보다 열 살은 많은데 역시나 월 200인 네 식구의 가장, 김 과장. 전세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워킹맘 최 팀장. 대학원 다니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버는 내가 있는 자리였다. 한 마디로 안마의자를 두 대씩 사면서 노후준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가 우리의 무능력이라고 치더라도 능력으로 치면 커피 타는 일과 워드 다루는 기술만 탑재한 그녀에 비한다면 무능력이랄 것도 없는 우리였는데. 왜 우리는 영세한 회사에서 겨우겨우 먹고살고 그녀는 가장 낮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가장 여유로운 건가, 하는 팔자소관의 운명론적인 문제는 속만 상하니 비교해봤자 득 될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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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그녀의 이야기에 담긴 나름의 달콤한 부분을 찾아 잠시 대리만족을 느끼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싶었다. 나가서 일은 안 하는데 돈 걱정은 없고 웬만한 욕구는 어렵지 않게 충족되는 삶을 살아본 주인공이 화려한 성장을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비현실적으로 달콤한 구석이 있었다. 팍팍한 삶을 잠시 잊는 기분으로, 설탕이 잔뜩 들어간 마카롱을 베어 무는 심정으로 자랑 섞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까지는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체념한 지 오래인데. 자랑에서 그치지 않고 선을 넘는 순간에는 마카롱 가루에 사래가 들린 것처럼 목이 매여 왔다.


아들내미가 시험 잘 보면 아이패드를 사주려고 중고카페를 뒤지고 다닌다는 최 팀장에게 박 실장은 다그치듯 “무슨 중고로 사. 그냥 새 거로 하나 사줘.”라며 무안을 주었다. 유럽 여행 썰을 푸는데 강 대리가 유독 말이 없자 “어머! 자기 아직 유럽 안 가봤어? 이 나이까지 안 가보고 뭐했어?”라며 혼을 냈다. 나에게는 “남편이 잘 버는 여자들은 아무래도 여유가 있으니까 일할 필요 없지”라며 문화센터로 출근해 운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요새는 남편이 못 버는 여자들이 일하는 게 아니라 능력 있는 여자들이 일하는 시대라는 걸 모르시는 듯).


그녀 앞에 서면 우리의 남루함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월급 받은 기념으로 기분 좋게 산 구두 한 켤레는 길거리의 중국산 싸구려에 불과하다는 걸 들켜 버리고, 칠 년째 입고 있는 코트를 보면 유행에 뒤떨어진 한물 간 디자인이라는 지적을 당했다. 넉넉지 않은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자랑거리인 알뜰함이 그녀 앞에서는 센스 없는 무딘 감각으로 조롱되거나 지지리 궁상으로 격하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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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사람 입에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기 마련인,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인데 어쩌다 보니 감출 수 없었던 부티였다면 그저 조금 질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른 척해줘야 하는 걸 고의적으로 들춰내면서 깎아내리는 어법은 아무래도 지나친 감이 있었다. 너의 없음으로 나의 있음을 확인하고, 위축되는 상대를 보며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사람들. 박 실장은 구별 짓기의 서열화가 습관이 된 사람이었고 없는 사람 기죽이는 데에는 돈 이야기가 최고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목적대로 잔뜩 기가 죽은 우리들은 한마디 반박도 못했다. 괜히 말을 더 꺼냈다가는 감추고 싶은 현재의 처지가 드러나 버릴까 봐 농담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중고보다는 신상이 좋은 게 당연했고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보다 정품 브랜드가 질 좋은 게 맞았으니까. 내 코트의 디자인이 한물 간 모양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았으니까. 다들 알고 있었다. 자기 행색을 본인들이라고 몰랐을까. 유행에 걸맞은 옷을 입고, 언박싱을 하고, 해외여행을 떠나고, 비싼 사교육을 시키고 넓은 집에 사는 것. 돈이 많으면 하고 싶지만 지금은 당장 먹고살며 애 키우기도 벅차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을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었을까. 다들 뻔히 아는 형편을 새삼스레 들킬세라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방법 따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저 모멸의 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어였다. 박 실장이 없는 우리끼리의 자리에서조차 기껏 한다는 욕이 “자랑이 너무 심해”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랑이 심하고 왜 불쾌한지까지 까발리려면 내가 받은 상처도 드러내야 했기에 차마 욕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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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평판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자꾸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이해가 안 돼서 왜 그럴까 추측해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면 직접 그 일을 겪어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망가져 본 적이 있어서 알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틀린 게 분명한데 본인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는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처음에만 해도 ‘왜 저러지’하는 의구심을 품었던 ‘이상한 일’이었으나 반복적으로 보고 겪는 동안 ‘익숙한 일’이 되어 버리면 정당성에 대한 비판의식이 옅어지고 양심상의 저항마저 포기되면서 ‘원래 다 그런 거지’로 수용되고 만다. 수동적인 객체에 불과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적극적인 주체가 되는 이유다.


박 실장의 대화를 엮어 본 후, 일이 그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유추를 해보았다. 미국에서 남편이 MBA를 하던 시절, 집에서 유학비를 대줄 형편이 아니었는데 주위에는 넉넉하게 유학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제일 가난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는 했다. 가난한 유학생 시절에 상류층의 자제들 곁에서 느꼈던 서러움이 한처럼 쌓여 이제와 우리에게 이런 형태로 쏟아지는 중인가 보다, 약자들을 참 잘도 골랐다 하면서 그녀 곁에 있는 시간을 견뎠다.


박 실장을 겪고 난 뒤의 나는 일로 만난 사이에 개인적인 사정을 드러내게 될까 봐 조심하게 되었고, 입성에도 조금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옷 고르는 기준이 단순히 예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너무 없어 보이지 않기’가 기준이 된 건 그때부터였다. 옷은 바람과 해를 가리는 수단을 넘어 동정의 시선을 차단하는 방패와도 같은 무기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무기가 ‘때깔’뿐인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흔히들 가난은 감추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사람의 빛깔 역시 돈으로 포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비싼 옷을 입었다고 해서 인성도 고급이라는 법은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드리우는 햇빛, 그 이면의 그늘을 수수하지만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이들이 다시 환하게 밝히는 장면을 목격할 때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마음은 박해서 애써 얻은 빛에 그늘을 드리우는 이들은 통장잔고 빼고는 닮고 싶은 게 없었다. 박 실장은 구별 짓기를 통해 경제적 우위에 서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역시 그녀의 말과 행동을 기준으로 구별 짓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우리에게는 소비의 쾌락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가족이 있었고, 가족 곁에 있다 보면 나보다 잘 사는 사람 곁에서 받았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었다. 스크래치와도 같은 상처들은 그녀에게서 멀어지는 골이 되었을 뿐,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최후의 한방이 되지는 못했다. 앞으로 남은 평생에 내가 얼마를 벌든 때깔만큼이나 빛깔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심을 갖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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