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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Sep 14. 2020

어른들의 놀이터, 러쉬

 본격 소비 탐구 에세이

  러쉬는 약 18년 전, 한국 땅에 처음 문을 열었다. 기억하기로 당시의 대한민국은 목욕도 참 ‘열심히’ 했다. 자고로 목욕이라고 하면 한 달에 한번 대중목욕탕에 가서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때를 불려 미는, 공동의 업이자 ‘지난한 노동’으로 얻는 개운함이 목적이었지 혼자 욕조에 들어가 거품을 가지고 노는 건 ‘사치스럽고 낯간지럽다’는 인식이 강했다.  거품 목욕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나 하는 줄 알던 시대였다.


 이후 상황은 변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공동’에서 ‘개인’으로 바뀌어가는 가운데 목욕 역시 공동의 장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좁혀 갔고, 경제적 풍요와 성문화 개방을 거치면서 ‘거품 목욕’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때마침 들어온 러쉬는 거품 목욕이 ‘우아한 사모님’에게만 허락된 특권이 아니라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누구든’ 빠져들 수 있는 놀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 


 

 ‘욕조 속에 폭탄을 투척 하자!’라는 파격적인 컨셉이 그대로 담긴 러쉬의 버블바와 배쓰밤은 욕조 안을 핑크빛 거품으로, 우주의 오로라로, 화려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급기야는 거품 목욕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풍성한 거품 퍼포먼스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고 끌리듯 러쉬의 세계로 입성하게 되었다. 덕분에 러쉬는 강남역, 명동, 코엑스, 홍대 등 유동성이 높은 대신 임대료도 비싼 시내의 ‘튀는 것이 곧 생존’인 매장들이 존재의 연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행인들의 눈길과 발걸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큼지막한 ‘세일’ 문구를 붙여 놓고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 심리를 자극하거나 나레이터 도우미를 고용해 샘플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벌이지 않고서도 말이다.


 대신 러쉬는 자신의 존재를 흥미롭게 과장했다. 매장 근처 1km 반경을 장악하듯 쏟아내는 강렬한 향으로 비염 환자가 아니고서는 무시하기 힘든 냄새를 아우라처럼 풍긴다. 비닐 포장을 씌우지 않아 날 것 그대로 드러난 비누에서 풍기는 향의 조합이다. 러쉬는 ‘내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내려면 일단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맡게 해야 한다’는 전략이라도 세운 듯, 가게 밖 거리로 냄새를 풍겼고, 엄청난 농도의 후각 공세 덕에 제품에 호의적인 취향을 가진 이들을 추려낼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처음으로 매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아주 재미있는 ‘비누 가게’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어린애들이 자기 몸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과자 집을 발견하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비누라고 하면 공장에서 일정한 정량으로 잘라낸, 하얀색 네모가 경험의 전부였는데 여기에서는 커다란 케이크 같은 덩어리를 직원이 직접 손으로 잘라내 종이에 싸서 팔고 있었고 나무 상자에는 과일 빛을 닮은 배쓰밤이 과일처럼 쌓여 있었다. (비록, 100g을 잘라달라고 하면 꼭 110g어치를 주면서 “죄송하지만 손으로 하는 거라 정확히 맞출 수가 없어요.”라는 점원의 변명과도 같은 설명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실수로 90g을 잘라내는 일은 결단코 없었다- 10g의 부과쯤은 칼라풀한 샤워 타임을 상상하며 적당히 넘기고 말았다.) 


 브랜드끼리의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비슷비슷한 여타 화장품 용기와 달리 검은색 통에 개성 있는 캘리그래피가 디자인되어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매장의 인테리어는 제품 디자인만으로 팔 할쯤 완성되고 있었다. 청아한 유리병이 진열된 여타의 화장품 가게에서는 조심스럽게 사리게 되던 몸짓이 여기서는 편안하게 풀어지며 자유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파는 매장에 들어가면서 일정한 매출을 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가게에 들어온 기분이 아니기는 오랜만이었다. ‘생산, 매출, 홍보, 이익, 재고처리’ 같은 단어들은 가게 점원이 소리 내어 그 낱말을 발음하지 않더라도 가게에 흐르는 압박감을 통해 어느 정도 전달되기 마련인데 분명 그 모든 단어를 동일하게 거쳤을 러쉬에는 그런 류의 심각한 경영방침보다는 ‘아 몰라. 재밌으면 장땡.’이라는 느낌의 가벼운 발랄함이 연출되고 있었다. 즐거운 파티장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나는 러쉬가 '자연환경 보호'를 철학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철학을 '창의적으로 위트있게' 표현하기 때문에 좋다.


 ‘아름다운 외모’를 강조하는 여성의 포스터가 걸려 있지 않는 것도 컨셉과 맞아떨어졌다. 완벽한 외모의 연예인 사진이 크게 확대되어 걸려 있는 여타 화장품 브랜드 광고는 은연중에 마음을 무겁게 압박하기 마련이다. 광고가 전달하는 은근한 메시지인 ‘이걸 쓰면 이렇게 예뻐질 수 있다’는 잠재의식을 파고들어 ‘나는 저렇게 예쁘지 않다’는 비교의식으로 이어지고는 하니까.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모델을 보다 보면 내 눈가의 잔주름이 미워지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를 보다 보면 새삼 볼 위의 기미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반면, 러쉬에는 우월함을 매개로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없어 불필요한 비교의식에 마음을 소모하지 않고 남은 에너지를 제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브랜드에 대한 호감과 제품에 대한 호기심, 팩은 어차피 해야 되니까 한번 써 봐도 괜찮겠다는 계산이 적지 않은 가격대에 대한 저항을 이겨내고 ‘이렇게까지 문질러주는데 안사면 욕먹겠지’ 같은, 오늘 처음 봤고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점원에 대한 눈치까지 더하면 마스크 팩 하나쯤은 살 충동이 일었다.




 러쉬는 어른들의 놀이터였고 어른들의 놀이터가 대부분 그렇듯, 공짜가 아니었으나 꽤 재미있게 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장소였다. 오프라인 구매층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점포 위기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오프라인 매장의 자구책으로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전략이 중시되고 있는 요즘, 화장품 브랜드에서의 ‘경험 소비 마케팅'의 선두는 러쉬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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