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브리데이미 Sep 21. 2020

집을 바꾸는 따뜻한 메이크업, 캔들

소비 심리에세이

 노을이 찾아오기 전의 도시는 꽉 차 있으면서도 휑하고,
복잡하면서도 황량하다. 도시 어딘가.
누군가와 뒤섞인 자리에서 쨍쨍한 시간을 견디다 바라본
창문 위로 위로처럼 노을이 내리면 이 세상의 한 페이지 정도는
 동화 같은 버전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집 문을 열면 멜로드라마에서 일일연속극으로 채널을 바꾼 것처럼 생활 냄새 짙은 현실감각이 돌아오고는 한다. 구석구석 다 아는 집으로 공간 이동을 하면 내가 속한 세계에 대해 환상을 품을 여지도, 상상을 더할 여지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90년대에 건립되어 여기저기 세월을 못 따라간 감성이 유물처럼 보존되어 있는 우리 집. '그 시절에는 왜 저런 걸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싶은 취향이 곳곳에 날것 그대로 드러나 있는 집에는 옛 감성의 누런 바닥재가 바다를 덮는 물처럼 안방에도, 거실에도 들어차 있다. 여기에 예쁜 소품 한 점을 올려놓는다 한들 크게 뭐가 달라질까. 푸른 바다를 다른 이미지로 바꾸기 힘들 듯이 바다에 돌을 하나 던진다고 해도 바다는 그냥 바다고 누렁 바닥은 그대로 누렁 바닥인 것이다. 


루이뷔통 캔들을 들인다 한들, 크게 달라질 게 없지만... 만 원짜리 초에라도 불을 붙이면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어 버린다.

 

 건축가의 철학과 영감이 깃든 잡지 속 집들과는 영 다르게 존재 자체로 공간에 대한 철학의 부재를 증명하고 있는 우리 집이지만 가끔은 좀 특별하게 예뻐 보일 때가 있다. 바로 초를 켰을 때다. 건조기가 죽은 수건도 살려준다면 캔들은 죽은 인테리어도 잘 가려주는 필터 렌즈다. 심지가 꺼져있을 땐 공간을 차지하는 면적이 한 뼘뿐이지만 불을 붙이면 공간에 미치는 파장이 마법처럼 확장된다. 움직일 수 없는 소품에 불과하던 사물에 ‘불’이라는 따뜻한 생물이 일렁이면 집도 불빛을 따라 일렁일렁 참고 있던 숨을 내쉰다. 누런 바닥재도, 벽지의 얼룩도, 조화롭지 못한 소품의 배치도 필터링한 것처럼 봐줄 만해진다. 


 작은 불빛이 지휘하는 집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따뜻한 파도 안에 잠긴 기분, 방이 세 개인 집의 네 번째 방을 만든 기분이 든다. ‘후각의 변화’가 일으킨 감정의 변화가 노을처럼 방 안 가득 그윽하게 내려앉아 간다. 지하철에 집합한 군중의 냄새에서 벗어나 사적인 취향으로 지은 임시 피난처에 당도한 안도감…. 코를 자극하는 감각이 전신에 퍼지면서 은은한 졸음이 몰려온다. 낮보다 밤이 예쁜 집에 만다린 향이 퍼지면 집은 편안하면서도 흥미로운 ‘제3의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황홀함은 흔치 않다. 가만히 앉아서 언젠가의 그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만족 찾기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집에서의 시간도 특별하게 메이킹하는 ‘캔들 족’들이 늘고 있다. 캔들족은 비가 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비 내리는 날의 청량한 숲 냄새를 담은 캔들을 사고, 레몬을 녹인 초를 피워 바람이 뒤집지 못한 생선 냄새와 퀘퀘 묵은 불쾌함을 씻어낸다. 고요하지만 적극적으로, 내 것으로 허락된 공간과 시간을 자기의 취향대로 설계해 나간다.

 

스타벅스가 도시 한 켠에 뚜렷한 목적 없이 머무를 수 있는 ‘제3의 공간’을 창조했다면 캔들은 ‘나의 공간을 제3의 공간’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아이템이다. 익숙하면서도 색다르고 편안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지친 육신이 누울 자리를 마련해 놓는다.  우리의 마음과 체력은 종종 이율배반적이다. 피곤하면서도 놀고 싶고, 놀기에는 지쳐 있다. 휴식에 대한 갈망은 어둠을 원하지만 색다른 경험에 대한 갈망은 완전한 어둠 안에서는 얻기 힘들다. 캔들은 어둠과 빛 사이, 휴식과 경험 사이를 오가면서 후각적인 체험을 은은하게 선사한다. 





 24시간 전력 공급이 가능한 세상에서 스위치를 끄고 자진해서 어둠을 찾아 머무는 심리에는 밤에도 일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피로감이 짙게 배어 있을 것이다. ‘불을 한번 피우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는 캔들은 바쁘고 피로한 현대인들의 힐링 아이템으로 자리 잡으며 다채롭게 변화하고 있다.


의류 브랜드인 자라에서 출시한 캔들

 양키 캔들이 집들이 선물로 손꼽히던 시기를 지난 요즘의 캔들 시장은 대중화, 세분화, 예술화되었고 ‘조말론, 딥디크, 바이레도’ 등 프리미엄 향수를 담는 고급화로 발전했다. 더불어 꼭 향을 전문으로 하지 않아도 캔들을 제작하는 회사가 늘었는데 광고 지면이나 SNS와 같은 시각적인 홍보 외에도 회사의 이미지를 후각적인 요소로 전달할 수 있다면 고객들의 코끝으로도 기억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 감정, 심리 등 눈에 뚜렷이 보이지 않는 영역의 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을 피워 올리는 캔들은 나 자신으로 향하는 조용한 시선에 불을 밝히는 작은 스텝일 것이다. 전깃불이 밝히지 못하는 마음속 어딘가를 촛불에 비춰보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딥디크 https://www.diptyqueparis.com


양키캔들 http://www.yankeecandle.co.kr/


자라 www.zara.com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들의 놀이터, 러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