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목표
“야 근데, 우리 아까 인천에서 그거 찍어야 하지 않았을까…?”
멍한 표정으로 공항 벤치에 앉아 있던 형일이 기운이 쏙 빠진 목소리로 옆에 앉은 준호에게 말했다.
“뭘 찍어?”
“오태영 여권 잃어버린 거, 한 편 뚝딱이었을 것 같은데.”
“아 그러네. 조회수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러면.”
“너희 지금 나 팔아서 조회수 만들려고 하냐, 지금.”
“그럼, 장기라도 팔 수 있지.”
설렘 가득했던 인천 공항의 힘찬 투닥거림에 비해, 이곳 캘거리 공항에서는 긴 비행에 지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투닥거렸다.
“자 일어나자. 우버 왔어.”
계속 핸드폰을 보던 준호가 제일 먼저 짐을 챙겨 일어났다. 앞장서서 택시 승강장을 향해 걷는 준호의 뒤를 태영과 형일이 휘적휘적 쫓아갔다. 조금씩 멀어지는 준호를 보며 형일이 함께 가는 태영에게 말했다.
“지금부터라도 찍을까?”
“지금 뭘 찍는데? 성준호 엉덩이 찍어봤자 뭐 안 나올 것 같은데.”
“아니, 언제 어디서 에피소드가 나올지 모르잖아. 인천에서처럼.”
“그런가?”
형일이 잠시 멈춰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고는 다시 준호를 바짝 쫓아갔다. 그 사이 준호는 택시 승강장에 도착해 예약한 우버 차량을 찾았다. 예약한 차량의 기사님을 만나 예약 확인을 마칠 즈음, 형일과 태영이 촬영 중인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합류했다.
“뭐해, 짐이나 실어 얼른.”
“아무 일도 없었어?”
“우버 잡는데 일은 무슨 일.”
“그렇지?”
형일이 머쓱한 얼굴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캐리어를 차량 트렁크에 넣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타게 된 차량은 세 사람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대한민국의 기아 차량이었다. 까만색 K3였는데, 조금 작고 오래된 듯 보였다. 가져온 캐리어 중 두 개를 트렁크에 넣자, 트렁크가 가득 찼다. 나머지 하나는 준호와 형일이 뒷자리 좌석에 챙겼고, 태영은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이거 몇 시간 타지?”
“1시간 반으로 나와. 구글 맵에.”
“한참 가네.”
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을 태운 차가 출발하고, 오랜 비행에 지친 세 사람은 각자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우버의 목적지는 캘거리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캔모어라는 작은 마을에 예약한 숙소였다. 세 사람은 살면서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캐나다 밴프의 로키산맥을 첫 여행지로 선택했다. 그리고 숙소는 밴프에서 조금 떨어진, 그렇지만 숙박비는 비교적 저렴한 캔모어로 예약했다.
공항을 출발한 우버의 창밖에는 온통 영어밖에 없는 간판과 표지판이 즐비했다. 높은 건물이 많은 캘거리 도심을 지나자,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넓은 평야가 나왔다. 앞자리에 앉아 변해가는 창밖을 감상하던 태영은 이쯤에서 들려야 하는 형일의 호들갑이 들리지 않자, 뒤를 돌아봤다. 뒷자리에 앉은 준호와 형일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자신은 잠들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 태영은 다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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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캐나다 여행은 지난해 추석 연휴의 첫날, 수원의 어느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이 카페에는 배경음악과 함께 준호와 태영의 노트북 소리, 그리고 형일이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공간을 구성하는 소리에서 문득 의아함을 느낀 준호가 형일을 바라보았다.
“넌 뭐하냐.”
형일은 빨대에서 입을 떼지 않은 채 준호를 빤히 바라보다 대답했다.
“관리 감독?”
“너 관리 들어가기 전에 시작해라 너도.”
“네엡.”
그제야 형일도 노트북을 꺼내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트북 소리는 두 명분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번엔 태영이 형일을 보고 말했다.
“노트북 꺼낸 걸 시작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
“그래, 내가 숙소 몇 개 보내놨으니까 훑어보던가.”
그럼에도 태영을 바라보던 형일은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거 재밌을까?”
“뭐, 여행?”
“어. 그냥 이렇게 여기 가서 우왕~ 저기 가서 우왕~ 하는 게 재미가 있는 일일까? 심지어 남자 셋이서?”
“여행 주최자가 꺼낼 얘기는 아니지 않냐.”
“아니 들어봐. 내 말은 그러니까, 이 투어에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우왕~ 만으로는 이 어떤 도파민이 충분하지 않잖아? 그러니까 가서 뭔가 목표 의식을 갖고 결과를 남겨오자는 이거야.”
뜬금없는 형일의 말에 준호와 태영이 어리둥절하게 눈만 깜빡이며 형일을 바라보았다.
“여행은 우왕~ 하러 가는 거 아니야?”
“그러게. 여행가서 목표가 뭐가 있냐. 여자 친구 만들어오기?”
“포부가 창대하네, 낭만적이고. 그럼 난 뭐해야 되냐.”
“가 있는 동안 여자 친구랑 안 싸우기.”
“쉽지 않다.”
태연하게 둘이 떠드는 준호와 태영을 보던 형일이 드디어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금세 생각한 내용을 찾았는지 두 사람 앞으로 노트북 화면을 돌려놓았다. 화면에는 영상이 하나 실행 중이었다. 화면을 돌려놓은 형일은 다시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자 이것 봐. 이 사람은 시카고 가서 유명한 고기 샌드위치 다 먹는 거 목표로 다니고 온 거잖아. 이렇게 뭔가 컨셉을 딱 잡아야 한다 이 말이지. 그저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는 재밌지 않을까?”
“오 민형일이. 웬일로 생각을 꽤 많이 하네.”
“그럼. 이게 얼마짜리 여행인데. 본전을 뽑고 본전에 이자까지 벌어야지.”
뿌듯해하는 형일과 호응해 주는 태영의 옆에서 준호가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렇게 컨셉 잡고 갈 거면 그거 다 찍어서 올릴까? 유튜브에?”
“촬영을 하자고? 그거 보통 일 아닐걸? 그거 그냥 핸드폰으로 막 찍어서 만들어도 되는 건가.”
“아니 나 고프로가 있어. 그거 열심히 들고 찍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야 너무 좋다. 캐나다 정도면 꽤 잘될 것 같은데? 나도 고프로 아는 형한테 빌릴 수 있을 듯.”
“여행이 어째 갈수록 피곤해질 것 같냐….”
걱정에 찬 태영을 뒤로하고, 이미 신나버린 형일과 준호는 여행 계획 가득 유튜브 촬영을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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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은 여전히 잠들지 않고 변해가는 창밖의 캐나다를 감상했다.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던 창밖의 풍경은 도착지로 가면 갈수록 크고 작은 암산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로키산맥을 감상하던 태영은 혼자만 감상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으로 3일 동안 계속 볼 경관이기 때문에 뒷자리의 친구들을 깨우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거대한 암산에 차가 완전히 포위되고, 저 멀리 산기슭에는 동화책에서 꺼내온 듯한 모습의 산장이 하나씩 등장할 때쯤 우버 기사가 태영에게 캔모어에 거의 다 도착했음을 알렸다.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뒷자리의 친구들을 깨웠다.
“아저씨들, 일어납시다 이제. 거의 다 왔대 우리.”
“어으으..”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소리를 내며 형일과 준호가 일어났다. 좁은 차 안에서 팔다리를 뻗을 수가 없기 때문에 구겨져 있던 상체와 어깨라도 뒤로 펴며 정신을 차렸다. 두 사람이 현실로 돌아오는 동안, 까만 승용차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의 작은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