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집에 가고 싶다. 오늘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 이건 집에 가라는 몸의 신호가 아닌가.’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는 지혜의 머릿속에는 컴퓨터 화면과는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출근 후,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떠오른 이 생각은 업무를 하는 중간에 집중력을 잃을 때마다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럼에도 몸은 기계적으로 일을 해 나가던 와중, 마침 반갑게도 동기인 경은 메신저 알람이 울린다. 지혜는 메신저 창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도 전에 클릭해 메신저 창을 띄웠다.
“지혜야, 오늘 바빠?”
“아니? 이번 주에 할 거 대충 마무리했어.”
“그럼, 커피 타임?”
마침, 집에 가고 싶어 하던 지혜는 경은의 메신저가 너무 반가워 바로 대답했다.
“좋지. 언제 갈래?”
“지금! 나 일하기 너무 싫어. 목요일이라 그런가.”
“그런 게 어딨어. 맨날 하기 싫은 거지. 근데 지금은 조금 그래서, 이따 3시쯤 내려가자.”
“오케이~.”
고요하고 적막한 사무실에는 15명 남짓한 사람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업무를 하고 있다. 무언가 부스럭대는 소리나, 어딘가에 다녀오는 발소리, 업무차 하는 대화조차 없이, 숨은 쉬는지 의심해야 할 정도로 고요한 채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만이 가득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혜는 왜인지 화장실 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1시간가량이 지나, 살짝 부산스러워진 분위기를 틈타 지혜는 경은과 잠시 여유시간을 갖는다.
“어후, 우리 팀은 왜 이렇게 다들 조용한 걸까. 진짜 아무런 말도 안 해 다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린 진짜 너무 시끄러운데. 할 말이 없는데도 와서 괜히 떠든다니까? 지금 나 나온 줄도 모르고 사무실에서 다들 또 얘기 중일걸?”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일하는 얘기 하거나 회사 얘기해. 다른 부서에서 뭐 이런 일이 있었다, 이런 거. 가끔은 싸운다? 오늘은 어떤 분이 출근했으면 떠들지 말고 일이나 하라고 뭐라 하시더라. 어우, 진짜 듣기 싫어. 그냥 조용히 일만 하다 가고 싶다.”
경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지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것도 그렇게 좋지는 않아. 우리 팀은 진짜 아무 말도 안 하고 일한다니까? 너무 조용해서 화장실도 못 가겠어. 눈치 보여서.”
“그래? 그래도 밥 먹을 때는 얘기 하지 않아?”
“뭐 가끔 이벤트 있으면 얘기 조금 하고, 아니면 그냥 핸드폰 보면서 먹어. 아니 저번에는 하루에 회사 와서 딱 두 마디 한 적도 있다? 안녕하세요, 가보겠습니다. 이렇게 두 마디 끝.”
“그럼 와서 얘기하려면 회의 잡아야겠다. 그때는 말할 거 아니야.”
“맞아. 회의할 때는 말 하지. 근데 끝나면 바로 자리에서 일해. 아니 쉬지도 않는다? 밥 먹을 때 빼면 계속 자리에 계셔 다들. 자리에서 쉬는 건가? 어떻게 그러지?”
지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생각을 쏟아냈다. 함께 입사한 지 1년이 조금 안 된 두 사람은 각자의 부서 분위기에 아직 적응 중인 신입사원이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쉬는 시간에 각자 부서에 적응하느라 힘든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지혜의 말을 들은 경은이 말했다.
“우리 부서는 왜 이렇게 극과 극일까. 중간이 없네.”
“그러게,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조용하거나.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데 진짜.”
“하, 근데 어제 그거 봤어?”
그렇게 두 사람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혜의 사무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다들 정말 업무를 하는 건지, 다 해놓고 딴짓하는 건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본 바로는 부서의 모든 사람은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내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일을 열심히 하느라 조용한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은과 쉬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잠시 쉬어서인지 업무가 금방금방 처리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렇게 잡생각 없이 일을 끝내다 보면, 금방 또 퇴근 시간이 된다.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지혜 씨 내일 봐요.”
“고생했어요. 지혜 씨.”
늘 하던 인사를 주고받은 다음 사무실을 나선다. 사무실에서 나가 회사 밖으로 가기 위해 경은이 있는 옆 부서의 자리와 회의실을 지나쳐가야 했다. 그 때, 지혜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회의실 안에서 언성을 높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그거 안 된다고.”
“안된다고만 맨날 하면 어떡해요.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 불편하게 할 거예요?”
업무 회의라고 해도 조금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말이 오갔다. 지나가는 길에 경은에게 메신저로 물었다.
“싸우시는 거야 안에?”
“아니 그냥 회의. 늘 저렇게 얘기해.”
“너무 살벌하다.”
“아냐, 그래도 저렇게 말해서 좀 빨리빨리 처리되는 게 있긴 해.”
“아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지혜는 모든 의견을 고려하느라 한세월 걸리는 그동안의 회의를 떠올렸다. 서로서로 존중하는 의미였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지만 반대로, 저렇게 싸우는 듯이 말하면서 주장하는 일이 없으니, 회의시간은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뭐가 더 나은 거지. 우리 부서가 나은 건가. 어렵다. 퇴근이나 해야지.’
바로 머릿속의 생각을 털어낸 지혜는 회사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