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데, 왜 해?

by 자두와두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요일은 언제일까. 토요일을 집에서 보내며 5일간 고생한 자신을 토닥여주는 사람도 있고, 일요일까지 신나게 놀면서 다음 한 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를 깔끔하게 불태우는 사람도 있다. 반면, 지혜에게 한 주의 마지막은 남자 친구인 태호과 함께 맥주를 마시는 금요일이었다.


“와, 시원하다. 역시 락스물을 마시고 나서는 맥주를 마셔줘야 해.”

“오늘도 물 많이 먹었어?”

“응. 오늘따라 또 사람이 많아서 괜히 마음이 급했어. 숨만 차고 물만 먹고 오늘따라 더 힘들었어.”


500cc 맥주잔의 거의 반을 비운 태호는 맥주를 마시느라 참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평소라면 늦은 저녁 9시, 금요일 밤이기에 아직 이른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늘 이 시간에 태호를 만나는 이유는 금요일 퇴근 후 항상 수영 강습을 받으러 가는 태호 때문이었다. 벌써 6개월이나 꾸준한 일정이었지만, 지혜는 문득 이 꾸준함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오빠 근데 아직 초급이라고 했나?”

“그렇긴 한데, 초급 중에선 좀 잘하는 편이야. 뱀의 머리라고나 할까?”

“원래 6개월 배우면 그 정도야? 초급이면 뱀보다는 지렁이 같은 거 아니야?”

“…왜 갑자기 공격하냐.”


갑작스럽지만 천연덕스러운 지혜의 질문에 태호는 잠깐 멈칫하고는 대답했다.


“아니 궁금해서. 오빠 맨날 물에 잘 못 뜬다고 그랬었잖아. 아직도 잘 안 떠?”

“어. 그게 진짜 안되긴 하더라. 강사님도 그냥 열심히 팔다리 움직이라고 하시고. 맥주병은 어쩔 수 없나 봐.”

“맥주병도 그 주둥이는 뜨던데 오빠는 그냥 전부 가라앉던…”

“왜 자꾸 공격하냐고 오늘…”


지난여름, 수영장에 놀러 갔던 두 사람은 태호의 맥주병 기질을 발견했다. 지혜는 사람이 물에서 숨을 참고 힘을 풀면 자연스럽게 몸이 뜬다고 배웠지만, 태호에게는 이 법칙이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도를 해봐도 물에 둥둥 뜨는 지혜와는 다르게 태호는 다리부터 시작해서 가라앉기 시작한 몸은 머리까지 수영장 바닥에 닿고 나서야 하강을 멈추었다. 이 사건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태호는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직도 그만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장난이야! 오빠 그것보다, 그 맥주병이 고쳐지지도 않는데 수영은 왜 그렇게 열심히 다녀?”

“재밌으니까 다니는 거지 뭐. 나 옛날부터 물놀이 좋아했거든. 운동도 엄청 되는 것 같고 좋아.”

“그래? 근데 보통 잘해야 재밌는 거 아니야? 남들보다 못하는 건 비교도 되고 기죽어서 하기 싫던데. 오빠는 그래도 재밌어?”

“잘해야 재밌는 것도 있는데, 수영은 못해도 그냥 재밌어. 뭐, 선수 할 것도 아닌데 못하면 어떻겠어.”


지혜는 문득 베이킹에 도전했던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베이킹 클래스에 투자할 비용이 아까워 유튜브에서 생크림 케이크를 만드는 영상을 보고 재료를 구매해 따라서 만들어본 적이 있었다. 재료는 의외로 간단했다. 생크림과 제누와즈, 안에 들어갈 딸기 정도였고 조금 욕심을 부려 케이크 상단에 생크림을 장식할 짤주머니까지 구매했었다. 큰맘 먹고 온 부엌을 다 헤집은 결과는 참패. 따라 한 영상에서는 그냥 주방 칼로도 반듯하게 다듬고, 짤주머니로 짜기만 하면 너무 예쁜 모양을 잡아주었는데, 지혜의 손에서 탄생한 케이크는 식빵에 생크림을 발라서 먹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딸기는 거들 뿐.


그 뒤로 베이킹은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지만, 그때 사용했던 짤주머니는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이사를 하면서 집안의 잡동사니를 정리하면서도 1번밖에 쓰지 않은 짤주머니는 짐가방에 고이 챙겨 새집까지 입성했다. 짤주머니로 생크림을 짜며 하얗고 판판한 케이크 위를 채우는 그 기분, 그렇게 테두리를 채우고 가운데 딸기를 올려놓으며 마무리하는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그럼, 내가 케이크 또 만든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작년에 내가 케이크 해줬었잖아.”

“아 그거. 뭐가 어떨 것 같아? 맛있게 먹겠지, 뭐. 꽤 맛있었는데 그 케이크.”

“그랬어? 근데 좀 안 예뻤잖아. 되게 삐뚤빼뚤하고.”

“파는 것보다는 그렇긴 했는데, 그 정도면 잘한 거지! 그리고 그것보다는 네가 해줬다는 게 신기했어. 맛있으면 된 거 아닐까? 파는 거 아니고 우리가 먹을 건데 뭐. 왜, 다시 해보게 베이킹?”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태호에게 왜인지 지혜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이 약간 바보 같으면서도 케이크를 만들며 느꼈던 그 재미를 다시 느껴도 된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그 재미의 결과를 함께 즐겨줄 사람이 생긴 기분이었다.


다음날, 점심을 준비하던 지혜는 문득 지난밤의 이야기가 떠올라 찬장 깊숙한 곳에 있던 짤주머니를 다시 찾았다. 1년도 넘게 지났지만, 케이크에 생크림을 가득 채우며 짜릿했던 그날이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다시 찬장에 짤주머니를 넣어둔 지혜는 태호에게 메신저를 남겼다.


‘오빠, 케이크 만들면 같이 먹어주기로 한 거 기억나? 나 진짜 만든다?’

‘좋아! 이번엔 블루베리로 부탁해.’


태호의 대답까지 받은 지혜는, 채팅창을 닫고 오래간만에 베이킹 재료를 파는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아침도 안 먹은 채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배고픔은 어느새 지혜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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