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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현 Sep 01. 2024

로컬라이징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다음 번째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였다. 꽤 오래전부터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다 못해 애정해 왔다. 빠지기 시작하고 감독의 이름을 기억한 것은 판의 미로가 처음이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릴 때 재밌게 보았던 미믹 또한 델 토로 감독의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델 토로 감독은 괴이를 묘사하고 다루는 데에 있어 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다. 피터잭슨이 킹콩, 스마우그 같은 신화에 가까운 대상들을 필름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면 델 토로 감독은 더 기괴하지만 동시에 신비로운 생물들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천재적이다. 흔히 괴물 혹은 크리쳐를 만들어낸다고 표현하지만 델 토로의 피조물들은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괴이에 가까운 존재로 표현하는 게 더 알맞다고 생각한다.

일라이자와 자일스 - <출처: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주인공인 일라이자가 우주국에 실험체로 잡혀온 인어와 교감하고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인어보다는 어인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작중에서 신으로도 묘사되기도 하는 이 존재는 마냥 기괴하기만 하지는 않다. 신비로운 힘을 사용하기도 하고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지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인어공주에서 에리얼이 왕자를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잃고 육지로 올라온다면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일라이자는 이미 목소리를 잃은 채 육지에서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중 스트릭랜드를 제외한 인물들은 다들 소수자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엘라이자는 말을 못 하고, 젤다는 인종이라는 소수를, 호프스태들러는 이방인, 자일스는 동성애자다. 영화가 단순히 괴이와의 로맨스 영화였다면 이 정도로 감동적이거나 매력적이지 못했을 것이지만, 악역과 주요 인물들 간의 캐릭터적 대비가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가고 강렬하게 연출해 준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가 붙은 채 개봉하였다. 판의 미로에서 쓴맛을 봤던 배급사의 로컬라이징이었을까? 아니면 sf에 인색한 한국 관객들을 위해 더욱 친절한 부제를 달아준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작품에서 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마냥 어색한 부제는 아니다. 조금은 쓸데없는 친절이지만, 작품의 주제를 잘 전달하는 부제이기도 하다. 특히 모양이라는 단어가 참 작품 전반에 어울린다. 원제를 직역하면 물의 모양인데, 사랑의 모양에서 모양은 물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모양이라는 뜻 그대로 해석해도 꽤나 말이 된다. 앞서 설명했던 작중 인물들의 특징 혹은 행태가 모양이라는 단어로 묘사가 가능하다. 특히 주인공 엘라이자가 인어에 대한 애정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점인데 이 또한 모양이라는 단어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일라이자와 인어의 교감 - <출처: 네이버 영화>

   인어가 사람들과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 바로 외견, 즉 모양 때문인데, 정작 주연들은 서로의 외견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가장 외견과 겉으로 보이는 자신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악역인 스트릭랜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모습에 심취한듯한 모습도 종종 보이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 있는 모습이나 캐딜락을 타는 자신을 떠올리는 모습은 마치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완전무결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작품 내에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거나, 자동차가 부서지는 등 겉모습이 망가짐과 동시에 스트릭랜드라는 인물도 점점 추락하기 시작한다.

스트릭랜드를 마주한 일라이자 - <출처: 네이버 영화>

   누구보다 괴이를 잘 표현하는 감독이기에 외견의 형태가 가져다주는 감각적인 충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테다. 물론 영화 내에서 다뤄지는 모든 이야기가 외형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 주인공 측과 자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강박적인 악역의 대비는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와 꽤나 잘 어우러진다. 또한 엘라이자와 인어의 모습을 초월한 사랑 또한 무형의 감정인 사랑이라는 존재를 상상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보이는 것보다 크고,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모양은 있는, 그 감정이 바로 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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