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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하는 자유주의

건축학도의 영화일지 - <트랜스포머:ONE>

by 최재현

최근 많은 영화들을 보고 왔다. 영화 모임에서는 "샤이닝"과 "챌린저스"를 봤고, 극장에서는 호불호 논란이 강하게 있었던 "베테랑 2"와 "조커:폴리 아 되"를 보고 왔다. 하지만 좋고 작품과 말 많은 여러 작품들 중에서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트랜스포머:ONE"이다. 트랜스포머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전에 나왔던 범블비 이후의 실사영화 시리즈를 먼저 떠올렸다. 범블비의 새로운 속편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안 가지고 있었다. 가족 영화를 노린 새로운 실사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바뀐 디자인 때문에 나이가 들어버린 나에게는 향수보다는 어색함을 더 전해왔다. 그런데 새롭게 개봉한 트랜스포머가 애니메이션 작품이라는 점과 예상보다 호평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흥미가 생겼을지언정 혼자서 극장까지 가서 볼 각오는 안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트랜스포머의 강렬한 팬인 친구의 연락을 받고 함께 보러 갈 결심이 섰다.


영화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우리가 아는 모습이 되기 이전의 사이버트론을 배경으로 한다. 일반인이었던 두 인물이 어떻게 각 진영의 수장이 되었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찌 보면 건국신화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영웅의 탄생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과거 트랜스포머 팬들을 위한 추억의 이름들이나 친숙한 모습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알아보는 재미도 있다. 동시에 조금 더 서툴렀던 옵티머스와 온화했던 메가트론의 모습도 또 다른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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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에서는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이라는 이름이 아닌 오라이온 팩스와 D-16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포스터와 트레일러부터 이들이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이라는 걸 보여준다. 영화 내에서도 계속해서 암시를 보여주며 숨기기보다는 관객에게 어떻게든 둘에 대해서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편의상 계속해서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으로 부르고자 한다.


젊은 시절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은 가장 친한 광부 계급의 죽마고우로 그려진다. 옵티머스는 규칙을 깨더라도 궁금한 것은 못 참고 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전형적인 열혈 주인공의 캐릭터다. 반면 메가트론은 우리가 아는 악독함 보다는 원칙을 우선시하면서도 절친한 벗인 옵티머스를 보조하고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행동이 앞서는 옵티머스를 옆에서 도와주는 쿨한 친구 역할 또한 전형적인 클리셰 캐릭터다. 광부계급의 로봇들은 날 때부터 코어가 없어서 스스로 변신할 수 없고, 또 작은 몸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센티넬을 위해서 에너존이라는 자원을 목숨을 걸고 채집해 오면서 신분상승의 기회만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주인공 둘은 우연히 센티넬의 어두운 비밀들을 알게 되고, 행성을 독재하기 위해 과거의 영웅들을 배신하고 외부의 적에게 복종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범블비, 엘리타, 스타스크림 등의 인물들을 만나 세력을 키우기도 하고, 과거 전투에서 살아남은 알파 트라이온을 만나고 변신할 수 있는 프라임들의 코어까지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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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양면의 독재자인 센티넬을 쓰러뜨리러 가는 과정에서 두 인물의 태도와 의견이 계속해서 충돌한다. 옵티머스는 독재로 인해 탄압받는 시민들에게 자유를 다시 되찾아주고 싶어 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지만, 센티넬에 대한 믿음도, 규칙에 대한 믿음도 컸던 메가트론은 배신감과 복수심에 더 빠지게 된다. 결국 센티넬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두 인물은 서로 최고조로 대립하며 각각 우리가 아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으로 각성하게 된다. 이때 각성하는 장면은 위를 향하며 타락하는 메가트론과 추락하며 고결해지는 옵티머스가 대비되며 최고의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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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는 굉장히 미국적인 만화라고 생각한다. 신대륙으로 쫓겨난 사이버트론 사람들은 식민지배를 하려는 나쁜 무리와 자유로운 공존을 원하는 착한 무리로 나뉜다. 당연히 나쁜 쪽은 디셉티콘, 착한 쪽은 오토봇이다. 나는 사이버트론에서 쫓겨나서 지구라는 별에서 원래 살던 원주민인 인간들과 잘 지내보려고 하는 오토봇과 옵티머스의 모습이 미국의 건국과정과 유사하다고 느껴왔다. 심지어 옵티머스가 말하는 모습이나 주장하는 것들은 전형적인 미국인이 생각하는 미국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트랜스포머:ONE"은 자유주의자인 옵티머스 프라임이 사이버트론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미군의 사진과 함께 민주주의 배달이 간다고 하는데, 옵티머스 프라임은 실제로 자유민주주의를 본인의 고향에 배달한 셈이다. 실제로도 광부계급들을 설득시킬 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힘은 보태달라고 연설한다. 이 빨갛고 파랗고 금속재질로 반짝이는 존재는 계속해서 변신하며 자유를 곳곳에 뿌리내리게 한다.


시리즈의 주인공이 자유를 추구하는 캐릭터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에 등장하는 루피도 자유를 추구하는 캐릭터다. 옵티머스 프라임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다른 만화와는 집단의 규모가 남달라서 그렇다. 보통의 소년만화는 주인공과 그 주변 친구들 정도가 리더십의 대상이 된다. 혹은 대규모 전투에서 전장을 이끄는 장수나 용병 정도의 자리를 갖는다. 하지만 옵티머스는 프라임이다. 프라임은 사이버트론에서 왕과 같은 존재다. 프라임이 자유주의자인 점이 모순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왕과 같이 특권 계급에 위치한 인물이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진정성이 있을까?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추구하는 것 만으로 자유주의자라고 불릴 자격이 생기는 걸까?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하다.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않은 인물이 나타난다면 옵티머스는 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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