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점멸한다.
자연을 밀어낸 자리 위에는 부동의 콘크리트와 강철의 빌딩들이 가득 찬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첫인상은 굉장히 빽빽하고 숨 쉴 틈 없는 답답한 도시였다. 서울은 내게 굉장히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무언가였고, 흔들리지 않는 덩어리였다. 하지만 15, 16년도에 서울 안에서 직접 살기 시작했다. 이때 비로소 처음으로 서울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깜빡이고, 시민들은 움직였다. 때로는 시끄럽고 때로는 행동하고 어쩔 때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나아갔다. 매일 밤 불빛들이 도시를 밝혔다가 날이 밝으면 불빛들은 마치 죽은 듯 틱 하고 꺼져버렸다. 끊임없는 도시의 반짝임은 마치 매일 뜨고 지는 태양과 달을 따라 하며 우리의 일상을 압축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잠원동에 살 당시, 1주일에 한 번씩은 심야에 강남대로 산책하곤 했다. 밤의 거리는 해가 떠있는 낮 보다도 더 밝고 화려하게 느껴졌다. 해커스, 파고다 등 대형 간판들이 넓은 도로를 환하게 비춰줬고, 이들은 달 보다도 밝았다. 지상에서는 별빛보다 밝은 간판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깜빡이고 반짝였다. 시끄럽고 반짝이는 밤거리는 모두가 잠들 시간이 되어서야 가장 생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몇 년이 지나서, 영상처럼 고장이 나거나, 꺼져가면서 점멸하는 순간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반짝임은 분명 죽어가는 마지막 점멸이다. 하지만 서울에 처음 입성해서 느꼈던 서울의 불빛들이 순간 겹쳐 보였다. 그 무엇보다 밝은 빛으로 거리를, 도시를 채웠을 불빛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서울 전체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빠르게, 더 불규칙하게, 더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들은 지금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발견된다. 서울에 산지 7년째인 나 또한 도시 속에서 더 밝게 빛나기 위해 점멸하는 무언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