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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택들이 만들어 낸 오늘

빈곤 속 풍요

by 재비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는데 속은 썩어있었다. 이제 자책할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역무원도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당황하는 듯했으나, 전차가 오니 '코레데스 코레!' (저거 저거)하면서 타면 된다고 바디랭귀지를 했다. 나는 감사의 말을 외치며 전차를 탔고, 무사히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다음 집을 찾아가야 하는데 집주인 언니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정신없이 다닌다고 핸드폰도 확인을 못했는데, 역에 도착하면 연락하는 얘기였다. 마중 나온다고. 바로 전화를 했다. 곧 역에 온다는 언니를 기다렸다. 그리고 출구로 나갔는데 언니가 서있었다. 인사를 나눴는데 그때 정말 안도의 감정이 물밀듯이 들어와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벌써 늦은 오후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언니는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내가 살 집은 완전히 역세권이었고, 역에서 1,2분만 걸어가면 있었다. 그리고 집에는 '요미'라는 푸들이 있었는데, 이 집에 꼭 오고 싶은 이유였다.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애견인이기도 하고, 반려견이 있다는 건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캐리어랑 짐을 대충 풀고, 언니가 집에 살면서 지켜야 할 룰을 알려줬다. 청소용품이나, 휴지 같은 것들은 한 달에 금액을 나눠서 내고, 욕실 청소와 화장실 청소는 1주일에 한번 돌아가면서 하기. 내가 사용할 냉장고나 밥솥은 따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었다. 싱크대는 같이 사용하고, 깨끗하게 정리하기. 그리고 그릇이나 식기는 알아서 사용해도 된다 했다. 그렇게 설명을 들으면서 있으니 긴장도 풀려서 아침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내 배에서 엄청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언니는 주변에 있는 큰 마트가 있다며 가는 길을 설명해 줬고, 나는 미리 환전해 둔 돈을 들고 집을 나섰다.



처음 가본 일본마트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생각보다 많은 제품들이 있었고, 신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소분 돼있고 손질 돼있는 토막 생선이라던지, 먹음직스러운 도시락은 하루에 3번 나오는데 생산한 지 3시간이 지나면 50% 할인을 해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냉장상태도 아니고, 마트 내에 시설에서 제조하고, 실온에서 바로 판매하는 신선한 제품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겨냥하는 만화 원피스 루피가 그려진 작은 도시락을 하나 샀다. 그리고 일본 쌀과자도 하나 샀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언니랑 얘기하면서 요미와 같이 일본에서의 첫 식사를 시작했다. 처음 외국에 나와서 모르는 사람이랑 있는데 이상하게 안도감도 느끼고 편안했다. 그냥 예전부터 내가 알던 곳인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오기 전에 너무 다사다난해서 그런지 언니가 편안하게 대해줘서 그런지 일본에서의 생활은 너무너무 기대됐다.



그날 낯선 곳인데도 쓰러지며 잠이 들었다. 집은 역 바로 앞이라 전차가 지나갈 때 항상 종소리가 났다. '띵띵띵띵띵~' 안내방송도 들렸다. 처음에는 밤이나 새벽에도 들려서 잠이 깨곤 했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완전히 적응하고 나중에 그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다.



며칠 지나니 한국에서 내가 보낸 소포가 왔다. 우리 집은 3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꽤 무거운 소포를 한 우체국 여성분이 오셔서 배송해 주셨다. 박스를 풀고 짐을 정리하니 정말 우리 집 같았다. 항상 가족들이랑만 살다가 이렇게 나와 사니 너무 자유롭고 좋았다. 내가 자율적으로 그 집의 정해진 규칙만 지키면 모든 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일본의 생활을 만끽해 보고자 블로그를 시작했다. 지금은 닫아두었지만, 여러 가지 있었던 일을 기록했다. 블로그를 통해 주변에 사는 동생 한 명을 만나게 됐다. 그 친구도 워홀러였고, 나보다 2달 정도 먼저 일본에 도착했었는데, 벌써 한국에 가고 싶다 말하며 향수병이 살짝 걸린 거 같았다. 그래도 기왕 왔으니 잘 적응해 본다고 했다. 나보다 일본어도 훨씬 잘하고, 지금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보는 그 친구의 환경은 내가 되고 싶은 상태인데 그렇게 얘기하니 감정이 복잡해졌다.



며칠 동네 산책도 하고, 외국인 등록증이랑 주민증도 받고 등록했던 어학원을 방문했다. 팜플렛에서는 뭔가 허름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직접 가보니 철길옆에 작은 건물이었다. 들어가서 레벨테스트를 받았는데 문법이랑 스피킹을 하게됐다. 나는 당연히 초급일 줄 았았는데 중급 1반에 들어갈 레벨이라고 해서 놀랐다. 솔직히 긴장해서 아무 말이나 막 했는데, 선생님이 잘 봐주신 거 같았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어학원 첫 수업을 듣게 됐다. 반에 들어가서 앉아 있었는데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사람들이 그 좁은 교실에 20명 정도가 있었는데 한국 사람이 나 혼자인 거다. 그럼 그게 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중국 사람이었다. 중국인들을 처음 만나본 데다가 같이 수업까지 듣는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맨 앞자리에서 빵을 먹는다던지, 선생님한테 질문하면서 반말로 하고, 자기네들끼리 엄청 웃고 떠들어서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중국인에 대해 인식이 좋고 나쁘고 가 없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학원을 다니면서 그 어학원에 오는 중국인들이 싫었다. 무례하고, 시끄럽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좋은 어학원을 갔어야 했나...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 1달 정도 듣다가 선생님에게 얘기했다. 반을 좀 바꿔주면 안 되냐고 너무 시끄럽고 공부를 할 수도 없다고. 근데 그 선생님도 당장은 반을 바꾸기가 힘들다고 했다. 중급반도 3개가 있었는데 그래도 다른 반에는 한국인들이 몇 명 있었었는데, 우리 반은 나 혼자...


어학원을 다니면서 2주가 지났다. 어느 정도 동네도 익숙해지고, 전차 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교통카드도 만들면서 일본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다 슬슬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온 돈은 200만 원 남짓인데, 그때당시 엔화가 높았어서 100엔에 1200원~1300원 정도였다. 그리고 월세는 5만 엔이어서 60만 원 정도 내야 했다. 월세만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공과금도 1/n이고, 내 식비나 교통비도 필요하니까 한 달에 최소 100만 원을 써야 한다고 하면... 당장 일을 구해도 1달 뒤에 월급이 나오니까 촉박했다. 그때부터 일본의 알바천국인 '바이토루'라는 홈페이지를 보면서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집을 구하게 됐던 카페에서도 한국인들이 일본 내에 알바자리도 올리고 있어서 문의해봤다.



나는 경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제과제빵 계열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은 잘 안 통해도 기술이 있으니까 보여주면 일하는 건 문제없다고 생각했고, 일은 일본사람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쪽 위주로 이력서를 넣었지만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도 당연할 것이 나도 이력서를 보며 사람을 채용할 때 아무리 관련 경력이 있어도 외국인은 면접을 보지 않는다. 한국사람이 와도 소통 부분이 잘 안 될 때도 있는데, 단순 노무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업무일수록 언어는 필수라는 것. 직장을 구하면서 점점 압박감을 느꼈고, 내가 왜 카페에서 일할 때 열심히 노력해서 일본어를 하지 않았는지 엄청나게 후회 됐다.



어느 날 많이 돌린 이력서에 회신이 왔다. 역내에 있는 작은 제과점이었다. 일단 통화로 얼버무려서 면접일자를 잡고 시간에 맞춰서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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