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의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내가 가장 존경하고 한심해하는 규는 ENTP인 나와 끝자리 하나 다른 소울메이트다. 토론과 공상을 좋아한다는 점을 빼면 나와는 정반대의 기질을 지녔다. 고3 시절에는 독서실 옥상에서 서로의 개똥철학을 몇 시간이고 읊어대곤 했는데, 어쩐지 청춘 영화같아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해 수능 점수에 낭만이라곤 개똥만치도 없었다. 규와 나는 각각 재수길과 유학길에 올랐다.
의지의 규는 성적 수직상승에 성공해 서울의 한 유명 미대에 들어갔다. 그러다 (뜬금없게도) 수영 강사 일을 하더니, 수영장을 하나 열었고, 지금은 나름 그 분야에서 성공해 전국에 일고여덟 개의 크고작은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뭐가 됐든 녀석은 한다면 해내고 마는 정통파 스타일이었다. 뻔하지만, 규는 성공적인 가장으로 거듭나, 자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아내를 만나 결혼할 거라 했다. 아직 그런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만 빼면, 규의 계획은 하나같이 순조로워 보인다.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가치관이지만, 규의 계획적인 'J' 의 면모만큼은 훔치고 싶을 정도다.
규는 자신이 아는 사람 중 내가 가장 특이하다고 했다. 볼 때마다 어떤 점 하나는 무조건 달라져 있다고.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야." 라며 논쟁에 불을 지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가 표하는 나름의 존중에 무례를 범하지 않기로 했다.
녀석은 내 불안정성을 긍정하는 몇 안남은 사람이기도 하다. 나도 규처럼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아래서 안정적인 삶과 건강한(?) 가치관을 길러올 수 있었다면, 불안정함을 창의력의 원천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었을까나.
머리가 커서인지, 언제부턴가 우리의 논쟁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너니까' 라는 마법의 문장으로 깔끔하게 매듭 지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