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카빙 수저 만들기
아주 사소한 관찰
살면서 무심코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많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들,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들. 많은 것들이 그 용도와 모양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곁에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카빙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숟가락의 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전에는 숟가락 볼은 커녕, 숟가락에도 신경을 써본 적이 없다. 하루 최소 3번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늘 손에 쥐는 숟가락은 너무나 익숙하기만 한 물건이었다.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주어진대로 쓰기만 했지, 내 취향대로 골라볼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무심한 대상이었다.
그러던 내가 카빙을 하면서 대략 50개 정도의 수저를 깎았다. 첫 번째 숟가락은 울퉁불퉁. 예쁘지는 않아도, 첫 숟가락이니 아끼는 마음에 한 번 사용해보지도 못했고, 연습 삼아, 2번째, 3번째 숟가락을 깎아보고, 이런 저것 멋들어진 무쓸모 숟가락을 만들어본 후에야 내가 사용할 숟가락을 깎아보게 되었다. 첫 사용에서 느낀 점은 밥이 아니라 나무를 먹는 것 같은 두께감, 그리고 볼은 깊은데 수저 둘레는 평평해서 음식을 먹기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이 수저는 바로 장식통으로 직행했다.
카빙을 시작한 후로 인스타를 통해서 많은 카버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있는데, 보통 외국 카버들은 큼직하고 깊은 숟가락을 많이 만든다. 서양 식문화를 생각해보면, 수프, 스튜를 떠서 후루룩 마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식 수저는 입에 숟가락 머리가 다 들어갈 만큼 작아야 하고, 숟가락을 물고 뺄 수 있을 만큼 깊이가 얕아야 한다. 밥 문화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얕아도 안 되는 것이 그 숟가락으로 밥도 먹고, 국도 먹기 때문. 처음으로 숟가락 볼에도 여러 용도와 용도에 따른 모양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진짜 사용감을 생각하면서 숟가락을 깎았고, 집에 있는 수저를 작업실에 가져다 놓고 숟가락 볼 모양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렇게 차스푼, 잼스푼, 요리스푼, 요거트스푼, 밥숟가락 등등을 구분하게 되고, 이런저런 용도를 생각하며 깎아보게 되었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일상적인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수작업의 매력인지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하다 보면, 만드는 것의 용도와 편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대량 생산되는 제품들은 가장 평균치의 용도와 편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소품을 만들 때는 좀 더 디테일하게 사용 목적과 개별 사용자를 배려하고, 각각의 필요를 반영할 수 있다. 당연하게 보이는 것을 당연시 여기지 않고, 물건의 소용에 대해서 더 다양하게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힘. 이것이 수제품의 매력인 것 같다.
요즘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또는 여행 중에 사용하는 식기류를 유심히 본다. 어떤 모양인지 형태나 크기, 깊이를 관찰하고, 특이한 모양이 있다면 참고가 될까 싶어 사진을 찍는다. 요리도 아니고, 스푼 하나를 놓고 온갖 각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웃겨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관찰을 통해서 여러 가지 영감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