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wcarver Sep 03. 2019

항상 우리 곁에 있는,

부상의 위험


연장은 관리하기 나름

어떤 작업이든 간에 수공구를 다루고, 또 관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수공구의 관리상태에 따라 작업은 유쾌할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으며, 관리 정도가 결과물의 퀄리티가 결정된다. 한 예로 카빙 나이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날에 작은 흠이라도 있으면, 그 흠은 나무에 선명한 줄을 남긴다. 심지어 눈에 보일까 말까 한 미세한 흠조차도 나무에 남기는 기록은 아주 선명하다. 

그러나 깎는 것은 즐거워도, 수공구를 관리하는 것은 상당히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익숙하지 않다면 더더욱. 그래서 더 연마해야 되지만, 안 하고 미루게 되는 건 나의 게으름인지. 실로 오랜만에.. 칼이 무뎌질 대로 무뎌진 것을 깨닫고 나서야 마음 먹고 수공구 연마에 나섰다. 오랜만에 칼을 갈려고 이것저것 꺼내보니, 그간에 쭉 쓰지 않았던 모라나이프에 녹이 슬어 있다. 


게으름의 대가, 부주의의 결과

숯돌에 열심히 갈아보지만 날의 녹은 없어져도 칼등의 녹은 그대로다. 쓰는데 지장은 없지만 보기가 좋지 않아, 녹 제거제를 뿌리고 휴지로 빡빡 닦아본다. 그렇게 칼날을 빡빡 닦으면서 점점 무아지경.. 녹이 조금씩 안 보인다는 것에 만족하던 찰나에 휴지가 미끄러지면서 칼날에 그대로 손가락이 나갔다. 


순간적으로 이건 이제까지 내가 겪어왔던 수준의 부상이 아님을 깨닫는다. 베인 틈새로 피가 끝도 없이 퐁퐁퐁 나오고 있다. 베인 길이가 길기도 하거니와 상당히 깊어 보인다. 급한 마음에 나의 응급 처지제인 액상 메디폼을 거의 붓다시피 발랐지만, 피가 나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 메디폼이 마를 새가 없다. 휴지로 꾹 눌러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이대로 피가 멈추길 기다릴 것이냐 응급실을 갈 것이냐를 계산해본다. 피가 멈추지 않으면 어떡할 것인가? 꽤나 깊어 보이는데 과연 자연 치유가 될 것인가. 여러 불안감이 엄습하였고, 이렇게 지속될 불안감보다는 응급실행을 택한다. 


응급실 경험담 

두터운 페이퍼 타월로 손가락을 두르고 급히 네이버를 찾아보니 다행히 근처에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진료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주소를 쓰고 있는 오른손에서는 계속 페이퍼 타월 위로 피가 배어 나온다. 병원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다행히 환자도 많지는 않았다. 


응급실에 들어가니, 우선 상처를 식염수로 씻어준다. 그런데 아까 급하게 처치한 메디폼이 피와 뒤엉켜서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잠깐의 실랑이 후에 메디폼을 벗겨낼 수 있었고, 상처를 살펴본 의사는 부위가 깊어 인대가 다쳤는지 확인을 해야 한단다. 

또 약간의 기다림, 당황해서 아픈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치료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다친 부위는 점차 욱신거림이 심해진다. 저릿하고 감각이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마침내 내게 온 의사에게 물으니, 깊이 베었을 때는 손가락 근처의 미세 신경도 잘렸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한다. 손가락을 마취하고 상처 부위를 열어서 인대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인대는 무사하여 다른 조치 없이 바로 봉합에 들어간다. 갈고리 모양의 바늘이 손가락을 오가는 것을 보기가 힘들어 눈을 돌린다. 마취한 손가락에는 아무 감각이 없지만. 


총 세 바늘을 꼬매고, 항생제 주사를 받고, 이틀 치의 소염진통제를 받아서 퇴원을 했다. 파상풍 주사는 예전에 맞은 적이 있어서 다시 맞을 필요는 없었지만, 조만간 한번 더 맞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긴 하다. 급하게 뛰쳐나온 탓에 마무리를 위해 작업실 들렸는데, 그 한 시간 새에 연마하던 칼들에 녹이 올라와 있다. 물이 잔뜩 묻은 채로 놔둔 탓이다. 대충 녹을 제거하고 또 대충 마무리 작업을 한 후 귀가했다. 


피까지 보면서 다듬은 공구들을 당분간은 사용하지 못할 것 같다. 좀 쉬어가라는 의미인지, 나의 마음이 너무 조급했던지. 최근들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져 마음이 다급하기는 하였다.어디로, 어떻게 가려는 것인지 방향도 방법도 정하지 못한채로 많은 것들을 허둥지둥 쳐내고 있었던 것 같다. 카빙 같이 손을 사용하는 작업은 마음이 급할 때 부상이 생기는 것 같다. 부상을 핑계 삼아 한 템포 쉬고 슬쩍 주변을 돌아봐야겠다. 

 

[부상 시 요령]

카빙 나이프로 '가볍게' 베이는 상처는 피가 나기 전에 꾹 눌러서 상처를 붙인 후, 메디폼 처치를 해준다. 피가 나기 전이라면 살이 더 잘붙는다고 한다. 카방나이프는 워낙 날카롭기 때문에 베인 절단면이 깔끔(?)하다고 붙기도 잘 붙는다고 한다. 물에 닿지 않는 것이 중요. 

응급실에 갈 정도의 상처는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가는 게 좋다고 한다. (의사썜 말씀) 메디폼이나 특히 뿌리는 마데카솔 등은, 이 정도의 상처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치료시 상처에서 이 약품을 걷어내는 게 번거롭다고 한다. 아무 처치 없이 상처 부위를 지압만 해서 병원에 갈 것.

작업실 인근 응급실을 미리 알아놓을 것.  

최고의 요령은, 정신 차리고 안전 작업


붕대 투혼 - 연마 마무리


매거진의 이전글 부업의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