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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carver Jun 22. 2021

낯선 이를 맞이하며

아이와함께하는 데는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3포 세대, 4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온지도 벌써 수년 전이다. 

연애, 결혼, 출산,, 그 외 등등. 이전 세대에서는 한 생을 살면서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많은 과정들이 지금 세대에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나의 경우, 결혼이라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난관은 아기를 가질 것인가-였다. 나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꼭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나의 짝꿍은 아이를 한 가정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으니까 연애기간 우리 의견 충돌의 최소 절반 이상은 아이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젠더 갈등에 있어서 깊이 있는 지식,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다만,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에 살면서 겪어온 경험과 주변에서 전해지는 경험담 등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큰 부담감과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는 아이를 갖는 일은 너무 많은 희생과 책임을 요하는 선택이었다.

본인께서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우리 엄마의 지난 세월만 해도,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결코 호락하지 않았으며, (호락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직장에서 보아온 여자 선배들의 삶을 보아도 도전할 엄두가 쉬이 나지 않았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성별에 따른 역할 차이도 희미해지는 마당에 왜 여성은 모두 슈퍼맘이 되어야 하는지, 한쪽으로 치우친 역할 분담이 주변 가정을 지켜보는 내내 불편했고 부담스러웠다.


특별히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존재에 대한 강한 열망도 없었고, 이 땅에 꼭꼭 들어찬 인구수를 생각했을 때 내가 반드시 일조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내 한 생을 성실하게, 그리고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그와 함께 두 생을 잘 살아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아이가 있더라도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생각해보면, 솔직히 좋은 조건과 만족하는 삶을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오늘의 교육환경은 예전과 너무 달라서 우수한 경제력이 좋은 삶의 조건(대학?)을 만들어낸다.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고 만족하는 아이를 길러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이야기는. 아이가 있어야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는 이야기였다. 한 생이 단지 그런 이유로 세상에 존재해야 한다는 건 몹시 이상한 이야기다. 아이의 존재, 그에 대한 책임감이 부부 사이에 결속을 돈독히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결혼을 했으니, 가정을 일궜으니 당연히 아이가 있어야 할까? 가족에는 여러 가지 형태와 여러 가지 구성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저 당연한 수순으로서 고민 없이 아이를 가지는 일이야말로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늘 있어왔으나 요즘 들어 더욱 주목받는 아동 학대에 대한 갖은 기사를 보면 이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이를 가지기로 한 것은, 나와 짝꿍이 공유해온 수많은 대화, 또는 언쟁 속에 쌓여온 서로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신뢰일 것이다. 때로는 격하거나, 때로는 온화했던 대화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최소한 나의 짝꿍이 그저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님을 알았다. 아이들을 보고 대하는 그의 시선과 태도 속에서 정말 본인의 아이를 원하고 키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시험문제라도 내듯이 물었던 수많은 육아 시뮬레이션에 대해서 그는 이미 고민하고 나름을 답을 찾고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나의 고민과 걱정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들어온 경험담과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부담감, 직장생활에서 우려되는 부분들. 내가 또는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 말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충돌하고 봉합하고, 들어주고 이해하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의견 차이가 좁혀진 것 같다. 짝꿍은 임신/출산/육아-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가지는 부담감과 생각들을 공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아이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 사람과 함께 하는 삶에는 아이가 있다. 아이를 갖겠다는 결정까지 수많은 대화를 했고, 충분히(지금 생각해보면 결코 '충분히'는 없다) 의견을 공유했기 때문에 아이로 인해 생기는 즐거움과 어려움 모두 함께 누리고 함께 견딜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겠다는 선택을 한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그러니 누군가 아이를 가지는 일에 고민하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아이를 가지라고 조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공유하지 않고, 서로 각자의 생각과 판단으로 결혼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주 많은 책임,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아주 다른 삶을 살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고 아이를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아이에 대한 생각이 미온적이라면 더더욱- 부부 사이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두 사람이 모두 아이를 원한다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어떤 삶을 살아갈지,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를 키울 것인지는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전처럼 그저 아이가 자연스레 알아서 자라는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의 육아는 부부 두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 돈을 무한히 투입하게 되는데, '교육관에 따라서는' 아주 큰 경제적, 환경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러니 필히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는 아이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어보길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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