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의 크리스마스이브

그러니까 아무데도 갈 곳이 없었다.

by slowcarver

니카라과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그들의 크리스마스

여기서는 크리스마스이브와 연말이 가장 큰 연휴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는 회사에서도 선물을 준비한다. 마치 한국에서 구정에 선물을 챙겨주는 것과 비슷하다. 품목은 슈퍼마켓 현금카드와 '생'닭. 좀 특이하긴 하지만 현지 직원들에게는 인기가 좋다. 24일 출근 시간부터 이미 직원들의 들뜬 모습이 눈에 띈다. 화려한 옷차림과 액세서리. 특별한 날이라고 엄청 신경 쓴 모습이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연말 선물이 불출되고, 잠깐 떠들썩하던 공단은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다.

니카라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 연말을 그들의 가족, 친지들과 보낸다. 여기서는 아직도 대가족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에 인근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고, 특별한 날에는 친인척이 모두 모여 즐긴다. 크리스마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는 꼭 먹는 특별 요리도 있다. 우리가 설에 먹는 떡국처럼. ^^


그리고,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우리끼리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이브니까 시내에 나가서 저녁도 먹고 놀기로 했다.

잠시 잠깐. 설마 문을 닫았을까? 생각했는데. 그럴 리 없다는 결론으로 정성껏 꾸미고 시내로 나선다.


수도인 마나과로 나가는 한 시간의 드라이브. 어쩐지 거리가 깜깜한 게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의 이브를 생각하면,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이브가 대목이지 않은가!. 그러나 대형 쇼핑몰로 들어서는 길 - 평소와 달리 깜깜한 분위기에 불길한 기운이 점차 강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주차할 공간이 없는 주차장에 차가 단 3대뿐. 쇼핑몰은 완연히 어둠에 잠겨 있다.


거리를 헤매던 우리는. 간신히 호텔만은 문을 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냈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곳 크리스마스 요리라는 특별 요리를 먹고, 선선한 호텔 야외에서 한 잔의 칵테일. 그리고 귀가. 어쩐지 상당히 조용하고, 약간은 쓸쓸한 이브였다.


귀갓길에 본 것

기숙사로 귀가하는 길.

어디선가 뻥뻥. 소리가 들린다. 민가에서 쏘아 올린 폭죽들.

니카라과에서는 축제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는 폭죽을 엄청 터뜨린다. 그것도 불꽃은 안 보이는데 소리만 큰.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라 그런지 유달리 폭죽 불꽃이 컸다. 자정부터 10분가량 길 양 옆으로 연달아 폭죽이 터지는데, 아마 이 시간이 암묵적으로 약속된 시간인 것 같았다. 마치 축하 받 듯 좌우로 펼쳐지는 폭죽 퍼레이드가 볼만했다.



대형 쇼핑몰까지도 일시에 문을 닫은 것을 보니, 현지인들은 아마 그렇게 꽃단장을 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거리에 사람이 넘쳐나는 한국의 크리스마스와는 다르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한국의 구정과 비슷한 것 같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족주의적인 모습이기는 하지만. 가족과 친지를 그렇게 가까이 두고 돈독히 지내는 모습이 부럽기도, 그립기도 하다. 요새 유행하는 응팔처럼, 우리들도 대가족이 모여 살던 때가, 골목 사람들을 모두 알고 지내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정서적으로 빈곤하고 허전했던 크리스마스가 갔다. 과연 한 해의 마지막인 31일은 또 어떤 모습일지!!


KakaoTalk_20151228_202115368.jpg 직원들과 일반 레스토랑에서 먹은 크리스마스 한정 메뉴. 구운 닭요린데, 소스가 포인트다.
KakaoTalk_20151228_202115472.jpg 호텔에서 먹은 크리스마스 한정 메뉴, 칠면조 요리, 오른쪽에 소스가 크리스마스 소스!. 맛이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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