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LIGHTS BOOK STORE. in SF.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 마음에 꽂히는 공간을 만날 때가 있다.
CITY LIGHTS BOOKSTORE
서점 이름이 '도시의 빛'이라니. 책의 가치가 나날이 떨어지는 오늘. 심장이 울렁이는 명칭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을 다닐 때, 개인적으로 서점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언어가 달라 읽을 수는 없어도, 커버, 책의 구성이나 색감, 질감 등 다른 문화 속 책을 구경하는 게 좋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책자에서 CITY LIGHTS BOOKSTORE을 손꼽히는 유명 서점이라고 소개한 글을 보았을 때 도대체 어떤 서점일까 기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살다 보면 때로, 편견의 무서움을 깨닫기도 하는 데, 그게 바로 오늘.
늦은 오후 출발한 서점을 향한 초행길.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타고, JACKSON ST. 에 내려서 구글 맵을 따라 길을 걷는데, 정말 세계 10대 서점이 여기에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위치는 CHINA TOWN, 주변에 큰 건물도 딱히 보이지 않았고, 한국의 중심가 같은 불야성의 거리도 아닌, 어두침침하고 불빛이 약한 그저 고즈넉한 동네 거리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다가, 거의가 중국인 이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어둑한 거리를 이런저런 생각 속에 걷는데, 얕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서점이 하나 보인다. '흠, 큰 서점이 있어서, 헌책방도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지나가는데, 친구가 부른다. 이 서점이 아니냐며. 난 '아닌데 이건 너무 작잖아..'라고 하다가 간판을 보니.
CITY LIGHTS BOOKSTORE!.... 음?
이게 그 유명한 서점이라고? 요렇게 작은 게? 교보나 반디앤루니스 같은 대형 체인 서점에 익숙했던 나는 자그마한 서점의 규모에 밀려드는 실망감을 감추며 서점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작은 나무 카운터가 있고, 수엽이 데부룩한 청년이 지키고 서 있다. 그는 누가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딱히 친절히 인사도, 불필요한 간섭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카운터를 지나 문이 없으나 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으로 들어가니 나무 책장에 빼곡히 책들이 차 있다. 헌책방이라고 얼핏 생각했지만, 나무 책장이 낡은 것일 뿐, 책은 모두 새 것이었다. 하얗고 말쑥한 책들이 나를 반긴다. 책장은 대중없이 적당한 통로 공간을 확보한 채, 곳곳에 그득 그득 차있다. 그리고 작은 나무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작다고 생각했던 서점인데, 들어가서 다니다 보니 어쩐지 크게 느껴졌다. 많이 다녀본 대형 서점보다 통로는 좁고, 책장은 빼곡하다. 책장을 따라 돌고 돌다 보니 더 넓게 느껴졌던 듯 싶다. 게다가 서점은 2층과 지하 공간도 있었다. 2층은 시와 비트 문학을 중심으로 다른 공간에 비해 비교적 넉넉하게 꾸며져 있었고, 지하는 널찍한 공간에 책과 의자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서점을 둘러보고 나니, 처음 느꼈던 실망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나에게 익숙한 대형 서점은 편리하고, 크고, 아주 많은 책들을 지니고 있지만 상업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면, 이 곳은 시간을 그대로 담은 듯한 공간이다. 많지 않은 사람들은 조용히 고요함 속에 책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세월을 품은 나무 책장들은 어떤 것은 아직도 견고하고, 어떤 것은 조금 훼손되어 있기도 했지만, 편안하고 모나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제 역할을 다한다. 곳곳에 놓인 의자도 반들반들 세월의 향기가 나는데. 1953년에 문을 연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또한, 여기서는 독립 문학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역할도 한다. 서점의 한 모퉁이에는 특이한 독립 문학 서적들이 있었다. 40-50페이지의 짤막한 책들도 눈에 띄었다. 사진의 구도상 눈에 잘 띄지 않지만, FREE THE PRESS. 언론의 자유라고 찍힌 문구도 인상적이었다. 자유롭고, 꾸밈없이 소박한 장소이다.
시티 라이트 서점은 1953년 시인인 로렌스 펄링게티와 사회 학자 피터 D. 마틴에 의해 설립되었다. 미국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독립 서점 중 하나인 시티 라이트 서점은 세 개의 층이 모두 책으로 가득한데, 이 중에는 익숙한 책과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책도 있다. 이곳에서는 사상의 자유와 발언, 글로 쓰인 말들이 신성하게 숭배받으며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몇 년 동안이나 이곳은 '비트족의 문학적인 안식처'였으며, 오늘날에도 자유, 반(反) 권위적인 정치, 반항적 사고라는 정신과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티 라이트 서점 [City Lights Bookstor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라면 ~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생각이 부끄러웠다. 나도 이미 많은 편견을 가진 사회인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명성이나 가치라는 것이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 반짝이고 비싸 보이고, 넓고 화려해야 한다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이들은 밥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가치와 사상을 간직하고 보존하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유지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기도 한다. 오늘의 나는 밥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삶이 부끄러운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 장소에서 지나간 시간과 함께, 밥 이상의 것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의 삶을 문득 희미하게 느낀다. 그러한 사람들의 삶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동시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오래된 서점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예전엔 편리하다고 생각했던 대형 서점과 그 서점들이 잠식한 동네의 소소한 서점들에 대해 아쉬움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