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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Oct 02. 2015

픽셀 게임, 추억을 넘어서다

울퉁불퉁했던 고전 게임의 화려한 변신

오랜만에 글을 끄적인다. 난 이래저래 바빴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몸담고 있는 게임 업계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내가 한창 작업하고 있는 게임 쟝르이기도 한 '픽셀 게임'이 바로 그 주제이다.



8비트 또는 16비트 게임이라는 말, 어린 시절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8비트와 16비트의 기술적인 차이점은 표현할 수 있는 색상수 (8비트는 256개, 16비트 65,536개)이나, 동시에 표시할 수 있는 색상의 수는 각 게임기마다 차이가 있었다. 엄청나게 비쌌던 네오지오는 4096가지 색을 동시에 쓸 수 있던 반면, 본체에 16BIT라고 자랑스럽게 써놓았던 메가드라이브는 183색 밖에 되지 않았다.


디자인은 지금 봐도 상당히 잘 빠졌다


그러나 게임에 있어 8비트와 16비트는 기술적 정의 보다 아타리-패미컴 시절에서 슈퍼패미컴-메가드라이브로 넘어오는 시대의 변화를 뭉뚱그려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 비약적으로 좋아진 그래픽을 상징하는 '16BIT'라는 글자가 주는 설레임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6비트에서 이렇게 리얼(?)하고 화려하게 변모했다!



최근에  망한 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Pixel (픽셀)'은 바로 여기서 사용된 작은 네모들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서 하나의 그림을 구성하는 2D 그래픽 표현 방식을 말한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이 막강한 3D 그래픽으로 지구를 정복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게임은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곡면 표현이 어려운 블록형 입자이였지만 이를 이용해 최대한 매끄럽고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다각도로 이루어졌던 대픽셀 시대였던 것이다.


심지어 <스페이스 해리어>라는 아케이드 게임은  2D 이미지를 이용해 모의 3D 그래픽을 그럴싸하게 구현해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면을 벗어나기 위한 픽셀의 이러한 각고의 노력은 3D 표현에 최적화된 '폴리곤'의 화려한 등장 앞에 맥없이 종말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픽셀 그래픽으로 마치 3D처럼 보이게 했던  <스페이스 해리어>
이것이 폴리곤을 이용한 신세대 3D (스타폭스 - 슈퍼패미콤)


각진 도형으로 입체적 사물을 구성하는 '폴리곤'이 대세가 되고 또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하느냐가 업체의 기술력을 증명하는 척도가 되자 한땀한땀 수놓던 2D 도트 게임은 순식간에 '낡은 것'  취급 받게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픽셀 깎는 노인급 장인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SNK같은 회사는 점차 몰락의 길에 들어 섰다. 참고로 SNK는 플레이모어라는 한국 회사에게 팔렸다가 지금은 중국 회사로 넘어갔다 동북아횡단


픽셀 그래픽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메탈 슬러그>
3D 뺨을 후려치는 리얼함을 자랑하는 <해저대전쟁>



내 기억에 이때부터 플레이스테이션 3 시절까지는 도트(픽셀) 게임의 암흑기라도 봐도 과언이 아니였다.


3D로 살짝 갈아 타봤다가 맛이 안나서 돌아온 일부 격투 게임을 제외하고는 (사실 스트리트파이터도 시리즈 접힐 뻔 했다...) 세련되고 '차세대스러운' 3D 그래픽 쯤 해줘야 게임으로 대접받던 그런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닥 3D일 필요가 없는 <봄버맨> 시리즈도....
3D화 정도는 해줘야 팔리던 그런 시절



이렇게 그냥 추억 속에 저무는가 싶었던 픽셀 도트 게임.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인디 게임을 중심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인디 게임의 아울렛 요람, Steam의 인기 상위권에 픽셀 게임들이 올라올 때만 해도 사실 '복고풍 게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전 게임에 대한 오마쥬로 만들어지는 게임들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고 사실 개발 여건 상 소규모 개발팀이 만들기 쉽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 되는 부분이였다. 그러나 몇몇 게임을 직접 해보고 나니 이런 것들이 단순히 추억팔이를 노리고 만들어진 게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인디씬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Broforce>라는 게임을 살펴 보자.


스크린샷에도 화약과 땀냄새가 날 것 같은 게임 <브로포스>


람보, 코만도, 블레이드, 맥가이버, 맨인블랙 등 마쵸냄새 풀풀나는 캐릭터가 총출동해 세계를 구한다, 는 색다른 컨셉과 게임성도 훌륭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였던 것은 고전 2D 게임의 장점을 현대의 기술을 통해 극대화 시키고 있다는 점이였다.


2D이지만 상당히 리얼한 연출을 보여 준다


우선 이 게임에서 쓰인 효과음은 예전 뿅뿅거리던 고전 게임의 그것이 아니다. 16비트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을 매우 리얼한 폭발음과 총기 소리를 사용해 폭발의 쾌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또 폭발할 때 튀는 파편들은 물리 (physics)로 처리되어 마치 픽셀로 구성된 세계에서 실제로 폭격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적 캐릭터가 설치된 톱니에 갈리면 굵은 픽셀 입자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는데, 리얼한 그래픽임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척 사실적으로 느껴지게 해놨다.

시원하게 팡!


참고로 이 게임은 남성층의 강렬한 지지에 힘입어 영화 <익스팬더블>과 정식 제휴한 <Expendabro>라는 번외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다. 스팀에서 무료로 플레이 가능하니 관심있다면 찾아보시길.



사실 현시대의 개발툴에서는 '도트 그래픽'의 기술적 한계가 대부분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표현의 영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유니티 같은 상용 엔진을 보면 2D라고 해도 사실 3D 영역에 올리고 카메라 각도로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인지라어떤 면에서는 3D로 작업하는 것보다 더 공수가 들기도 한다.


아래의 <타이탄소울 (Titan Souls)>이라는 탑뷰 액션 게임의 보스는 실질적으로는 3D 오브젝트이다. 여기에 2D 도트 그래픽을 입혀서 공간에 어울리게 만든 것 뿐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쓰면 평면적인 세계에 등장한 무시무시한 입체 괴물같은 위압감을 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아트로서도 색다른 느낌을 표현해낼 수 있다.


이 밖에도 <Hyper Light Drifter>같은 게임은 옛날 픽셀 그래픽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컬러 그라데이션과 광원 효과를 이용해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Fez>라는 게임은 2D 공간처럼 보이는 3D 월드를 구현해내 평단의 엄청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빛을 이용한 픽셀 아트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  Hyper Light Drifter


* FEZ의 환상적인 느낌은 직접 보지 않고는 전달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게임들이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픽셀 아트'라는 것은 하나의 아트 표현 방식이 되었고, '픽셀 게임' 역시 하나의 쟝르가 되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가상현실 기계를 쓰고 풀HD 게임을 하게 되더라도 픽셀 게임 만이 표현할 수 있던 투박하면서도 심플한 그 '맛'은 쉽사리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난 아주 오랫동안 이 쟝르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트로풍'라는 단어로는 묶어 놓을 수 없는 픽셀 게임들의 새로운 변화와 시도가 앞으로 얼마나 다방면으로 또 창의적으로 이루어질지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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