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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PD Oct 18. 2015

자가증식하는 트레이딩 피규어 #2 - 상술(?)

이건 당하면서도 재밌다

무엇이라도 수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필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타깃으로 삼아 애간장을 태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거꾸로 원하는 제품이 의외로 좋은 가격에 쉽게 구해져서 쾌재를 불러본 적이라든지.


이 트레이딩 피규어라는 악마들은 우리들의 은밀하고 치명적인 수집 심리를 얄밉게도 잘 파악하고 있다. 주변에는 알면서도 당하는, 아니 오히려 당하는 재미로 지갑을 여는 자들이 수두룩한 상황이니까.


먹지도 못하는걸 왜 자꾸 사게 되는걸까...


자, 그럼 과연 이 녀석들은 어떤 수법으로 우리의 지갑을 털어가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알고 나면 더 재미있다.


일단 이 녀석들은 한 묶음으로 발매된다.


'베어브릭' '소니엔젤' 등의 박스세트는 하나의 통일감을 주면서 ‘모아야 할 것 같은’ 그리고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준다.


사실 이 모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위험한데, 내가 총 몇 개 중에 몇 개를 갖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려 주기 때문에 소위 달릴만한 구실이 생기는 것이다.


건프라를 갓 시작한 사람이 방대한 MG(마스터 그레이드) 등급을 다 모을 생각을 바로 하겠는가? 그렇듯 베어브릭도 한 번에 수백종을 내서 의욕을 꺾지는 않는다. 적당히 손을 대면 완성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8종류 + 다른 표정으로 24종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Funko사)

수집 심리라는 것은 ‘콤플리트’를 했을 때의 만족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작은 규모로 이를 끊어주는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게임 기획에도 엄청 써먹는다


이렇게 딱 맞춰 진열했을 때의 쾌감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혹돔님)



그리고 주기적으로 시리즈가 출시된다.


‘레고 미니피규어’와 ‘베어브릭’이 이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베어브릭’은 매년 6월과 12월에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하며 ‘레고 미니피규어’는 약 3~4개월마다 새로운 시리즈를 출시 중이다.


이 전략의 장점은 대략적인 발매 시기가 예측되기 때문에 궁금증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베어브릭’은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기 한 달 전 쯤 되면 티저가 뜨고 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고 정보 수집이 시작된다.

베어브릭 최신작 시리즈 30 의 모습


콜렉터 심리를 꿰뚫고 있는 ‘베어브릭’은 아예 시리즈에 들어가는 제품을 패턴화시켜서 추측의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매 시리즈에 ‘베이직’ ‘호러’ ‘SF’ ‘애니멀’ 등 포함되는 테마를 미리 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훨씬 더 좁은 폭으로 추측이 가능하고 그게 바로 기대 심리가 된다.


또 이런 방식을 취하면 유저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원활해지는 효과가 있다.


즉, 그들의 용어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번 호러는 <그렘린>의 기즈모네요” “25탄 ‘애니멀’ 너무 이쁘게 나왔네요” 처럼 말이다.


이런 전략을 쓰지 않던 ‘레고 미니피규어’도 일부 패턴화를 시작했는데, 인형탈을 쓴 캐릭터 ‘알바(한국 유저들이 붙인 이름)’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지속적으로 유사한 제품을 패키지에 포함시키고 있다.

물론 당연히도 유저들은 이걸 놓치지 않으려고 달려들기 시작했고 말이다.


이 전략은 추측을 통한 바이럴 효과는 물론 소위 ‘깔맞춤’하려는 유저들에게 아주 잘 먹히는 전략이다.


레고 미니피규어의 인기 시리즈, 알바들 (또치당님)



또 하나의 막강한 전략은 바로 ‘시크릿’이다.


업체가 패키지 제품 리스트을 발표할 때도 노출하지 않는 이 ‘시크릿’ 상품은 그 시리즈에만 특정 비율로 포함된 레어템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베어브릭 같은 경우는 높게는 4% 대에서 적게는 0.5% 가량의 비율로 특정 제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챘겠지만 이 비율의 극악한 점은 24개들이 박스셋(홀박스)을 통채로 사도 시크릿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베어브릭류를 제외한 일반 미니 피규어는 최소한 이 정도로 애간장을 태우진 않는다. 그냥 소위 ‘돈지랄’로 박스를 사면 웬만하면 다 구할 수 있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베어브릭은 우리에게 그 정도의 사치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시리즈에선 시크릿으로 아예 다른 모양을 출시해 충격을 선사했다 이름도 래브릭 (R@bbrick)


그러나 늦개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기존에 시크릿이 없던 ‘레고 미니피규어’는 10번째 시리즈를 기념해서 5000개체 한정의 ‘Mr.골드’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Oldpla님의 Mr.골드 레고 미니피규어. 전세계 5000개 한정으로 뽑으면 인증서를 보내준다

이 전략은 대단히 효과적인 것을 세계의 콜렉터들이 지갑를 털어 증명해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각종 트레이딩 피규어에 도입되어갈 것으로 보이니 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는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심리전, ‘한정판’ 전략이다.


귀여운 천사 아이를 소재로 한 피규어 ‘소니엔젤’의 경우 공식적으로 리미티드 컬러 패키지를 발매하는데, 정규로 나오는 시리즈에 특별한 색을 입힌 제품들을 말한다.


좋게 말해 한정판이지만 많은 경우 ‘색놀이’ 또는 ‘색장난’인데, 대부분 오리지널의 컬러보다 유니크하고 한정 기간 판매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에 콜렉터들은 지갑을 털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색을 바꿔버리면.....사야 한다.

 한정 기간만 판매되는 트레이딩 피규어는 한정판 프리미엄과 랜덤성 프리미엄이 더해져 상당히 값이 오르게 된다.


‘소니엔젤’의 발렌타인 데이 버전 시크릿 제품은 중고 시장에서 무려 10만 원 가량에 거래되고 있는데(원가 약 6000원) 이는 수능 시험에 잘 나오던 ‘수요 공급의 원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이쁘긴 이쁘네....




이렇게 콘텐츠의 힘을 빌 수 없는 ‘베어브릭’이나 ‘소니엔젤’과 같은 제품들은 상당히 다양한 전략을 개발해 놓았다.


피규어 자체의 매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애착도에 있어서는 콘텐츠 기반 트레이딩 피규어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모으는 자체의 재미’를 최대한 추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곧 몇몇 콜렉터분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전달되겠지만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 이 콜렉팅을 통한 완성의 과정은 꽤 재미있다. 때론 얄미운 상술로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그래도 여건이 된다면 일부러 좀 속아주면서 즐기는 자체도 하나의 취미 생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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