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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럼 Feb 18. 2016

휴지(休紙)와 휴지(休止), 혹은 '쉼'에 대하여

동음이의어. "소리는 같으나 뜻이 다른 단어"를 말합니다. 우리 말에서 동음이의어는 대부분 한글로는 정확히 같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발음도 같지만, 전혀 다른 한자를 재료로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요.


동음이의어들을 서로 떨어뜨려 놓고 가만히 분석하고 관찰하다가, 둘을 가까이 붙여 조합하고 연결해보면 예기치 않은 의미가 새로 발견될 때가 있습니다. '휴지(休紙)'와 '휴지(休止)'가 그런 경우인데요. 앞의 휴지는 "쓸모없는 종이", 혹은 "밑을 닦거나 코를 푸는 데 허드레로 쓰는 얇은 종이"를 말합니다. 뒤의 휴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쉼"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물질과 정보가 넘쳐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휴지'를 쓰레기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휴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혹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거나, 심지어 없는 게 차라리 나은 무가치하고 무익한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자의 의미대로만 보면, 휴지란 글자 그대로 '쉴 휴(休), 종이 지(紙)', 즉 '쉬는 종이'일 뿐입니다. 한때 책이나 신문, 잡지의 일부로, 혹은 포장지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나서 잠시 '쉬는 종이'일 따름입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종이가 쉬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지요. 쓰레기 취급하며 마구 구겨 휴지통에 버리거나 파쇄기로 갈아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조차 없게 만들어놓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21세기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휴지'를 마치 쓸모없는 종이나 쓰레기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런 태도가 온당할까요?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쉬는' 일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休紙'에 대한 관점을 한 번쯤 근본적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종이가 '쉬는 종이'가 되기까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온 그 열정과 노고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어떨까요? 그렇게 시각과 관점을 바꾸면 이제까지 눈앞에서 치워버리거나 없애버려야 할 쓰레기로만 보였던 종이가 전혀 다른 존재로 당신에게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休紙'가 쓸모없는 종이가 아니라 그저 잠시 '쉬는 종이'이듯, '休止' 또한 아무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이나 축내는 무가치한 행위가 아닙니다. 한때 어떤 기업이나 조직에서, 혹은 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로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쉬는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휴지기(休止期)’에 있는 이는 잠시 '쉬며 재충전하거나 휴식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일 따름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休止'에 대한 관점도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혹은 자신)이 '쉬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가 서 있던 삶의 자리에서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역할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그 열정과 노고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어떨까요? 그렇게 '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나 타인의 ‘쉼’에 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서 바라보면 이제까지 무익하고 무능력하게만 보였던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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