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s, 2025)
*스포주의
“내가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는 내가 현대 여성이라서예요.”
매치메이커인 주인공이 결혼을 성사시킨 신부가, 결혼식 직전 5분 전에 마스카라로 번진 검은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다. 이어서 “내가 두 왕국을 결합시켜야 하는 공주도 아니고, 결혼해서 우리 집안에 소를 가져와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라는 대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감정적인 확신이 결여된 상태에서,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주인공은 단호하게 말했다
“네, 결혼은 비즈니스가 맞아요.”
사랑을 찾기 전, 홀로 설 때의 주인공은 더 강하고 아름다웠다. 빛나 보였다. 직장 동료가 “넌 결혼 안 해?”라고 묻자, “나는 그냥 혼자 늙어 죽거나, 엄청 부자인 남편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답한다. 그러자 친구는 “그게 그거 아니야?”라며 웃는다. 능력과 사랑,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드러나는 솔직한 계산이다.
말과는 달리 주인공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주인공은 가장 사랑했던 X에게서 고백을 받고도, “나는 지금 너를 보면서도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너와 함께라면 평생 허름한 식당에 앉아 단돈 3만 원 때문에 싸우는 현실이 펼쳐지겠지”라고 말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볼 때 ‘이 사람이 나를 부양할 수 있을까’를 무의식적으로 따져보는 순간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새로 만난 남자와의 데이트에서, 주인공은 “당신이 데려가는 곳이 좋은 건지, 당신이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값비싼 장소로 데려가고, 자연스럽게 계산서를 집는 모습까지—사랑과 물질이 얽힐 때 무엇이 본질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데이트가 쉽냐, 사랑이 쉽냐’는 대화와, 두 남자의 상반된 대사가 모두 와닿았다. 그 모든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결말에서 주인공은 과거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을 선택한다. 이미 실패했던 관계임에도, 능력 있는 새로운 사람 대신 사랑이 남아 있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 선택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최소한 love should be on the table이라는 말처럼 사랑의 존재 여부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 데 합리적이고 옳은 것으로 보이니깐.
영화 머터리얼리스트의 질문은 스크린 밖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능력을 볼 것인가, 사랑을 볼 것인가. 아니면 둘 다를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나는 지금 연락하고 있는 사람과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찌 보면 영화 속 페드로처럼 내가 가치있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그에 대한 내 사랑은 ‘table’ 위에 없고, 그저 데이트만을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끝내자고 결심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의 연락에 기분 좋게 답하며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나를 보니, 이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