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화재 사건을 보며 든 홍콩 사회에 대한 생각
홍콩 주재원 근무 초기에 잘 이해되지 않았던 장면은 주말만되면 필리핀 아주머니들이 육교 밑에 수십명씩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는 장면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이국적인 풍경이었으나, 그 뒤에 숨겨진 도시의 실체를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2014년과 2015년 홍콩에서 근무를 했다. 센트럴에서 불과 15분 거리, 틴하우의 8평 남짓한 오피스텔은 창문조차 열 수 없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365일 24시간 에어컨에 의존해야 했던 그 답답한 공기는, 홍콩이라는 도시의 구조적 압박을 상징하는 듯했다.
당시 회사에서 지불했던 그 작은 방의 월세가 400만 원을 넘었다는 사실은,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봐도 홍콩 부동산 가격의 살인적인 비합리성을 재확인시켜 쥰다. 이 경험은 역설적으로 한국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아직 충분히 우상향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생각을 그무렵부터 하게된 계기가 되었다.
워낙 좁은 도시에 7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중국 본토에서 노른자위 부동산을 무작위로 사들이니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고 있었다. 대학생이나 대졸 취업자들과 같은 젊은이들은 원룸조차 구하지 못했고 작은 아파트를 쉐어해서 사는 것이 당연했었다. 이런 극악한 주거환경이 당시 우산혁명으로 표출된 그들의 저항 행동 이면에 자리잡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나중에야 그 육교 아래의 여성들이 홍콩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들(내니)임을 알았다. 홍콩의 극도로 협소한 주거 환경은 이들이 평일에는 화장실 또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공간에 머물다가, 주말에는 주인 가구와의 동거가 불가능해져 거리로 밀려나야 했다. 그들은 고유한 공간을 박탈당한 채, 거리에 내몰려 자신의 주말을 길거리에서 다른 내니들과 함께 보내야 했던 것이다.
이번 홍콩의 화재 참사를 보며 10년 전의 그 광경들이 떠올랐다. 그 좁고 뾰족한 아파트에서 불이나면 어떻게 피할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상자가 생겨 깊은 안타까움이 들었다. 단순한 화재사고가 아닌 홍콩이라는 도시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가 이면에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또 한가지 매년 홍콩 관련 보도가 나올 때 마다 드는 생각은, 독특하고도 오묘한 매력을 가진 동양과 서양과 현대와 과거거 뒤섞인 보석같은 도시였던 홍콩이(개인적으로 홍콩을 너무 좋아한다), 중국 반환 시점에 맞물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그만의 고유한 매력과 강점을 잃어가는듯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편적으로 법률시장만 보아도 10년 전까지만해도 아시아 중재 관할을 선택할 때 싱가폴과 홍콩 중 하나를 선택했지만, 10년이 지난 시점에 중국에 귀속된 홍콩을 중재법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선택지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황이다. 금융시장도 스타트업 시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모든 것이 카피가능한 AI시대에,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그 고유성을 어떻게 지키고 발전시킬 것인가가가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인듯하다. 연말을 앞두고 나의 2026년을 계획하며, 나의 고유한 색깔과 그래비티만의 고유한 색깔을 어떻게 더 선명하고 흔들림없이 구축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이번 화재로 숨진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