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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재은 Nov 03. 2021

아이를 기르며 포기를 배운다 - [1]

[1] 미안한데 네 밥통 고장났어

나는 출산이 쉬운 편이었다.


임신 기간 내내 이렇다 할 이벤트도 없고, 나도 멀쩡, 태아도 멀쩡, 병원에서 검진받을 때마다 평균 크기로 잘 크고 있다는 얘기만 40주 내내 들었을 뿐이다. 막달이 되며 몸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서 출산 겨우 일주일 전까지도 회사에 출근했다. 그 맘 때엔 뭔가 만삭 여성이라는 것에 대한 도취감도 하늘을 찔렀다.

('후훗... 막달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나... 너무 멋져...대단해...' 뭐 이런 느낌으로?)


나의 아들은 막달에도 머리가 출구(!)를 향해있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는 소위 역아 자세였기 때문에 나에게 선택지는 오로지 제왕절개 뿐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되니 고민할 필요도 없고 괜히 자연분만을 시도해 볼 필요도 없이 명확해서 좋았다. 양가 어른들에게 설명할 때 필요한 [제왕절개를 선택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 마저 뱃속에서 미리 만들어주다니, 틀림없이 효자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흐뭇하기 까지 했다.


출산일 아침에 따끈한 물로 샤워하고, 전날 미리 싸둔 짐가방을 챙겨서 여유있게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 수속부터 마취, 출산까지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으앙, 하고 세상 공기 처음 마셔본 나의 아들과 마침내 대면했을 때는 감동을 받아 눈물 한 방울 주르륵 흐르긴 했지만 그 과정이 지나치게 순탄해서 현실성이 조금 떨어졌다. 이렇게 쉽게 아기 낳아도 되나? 이거 몰래카메라 아냐? 뭐야 방금 나 아기 낳은 건가? 하는 다소 거만한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가 [엄마 되기 - 순한 맛]이었다. 출산 다음날 제왕 절개의 통증으로 끙끙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아 있는 나에게 분만실 간호사가 찾아와 물었다.


"모유 수유 하실 거죠?"

"네, 해야죠. 해 봐야죠."

"단추 풀어보세요."


친절한 말투의 차가운 표정을 가졌던 그 간호사는 무덤덤하게 '아플거예요' 하더니 젖꼭지를 비틀어 손톱으로 짜내기 시작했다. 아플 거라고 경고까지 들었지만 도저히 비명을 참을 수가 없어서 끄으악, 했더니 살짝 나온 유즙을 보며 무표정으로 코로나 때문에 아기에게 직수는 안 되고 유축기 사용법을 알려줄테니 로비에 가서 유축기 소모품을 사오라고 했다. 남편을 시켜 로비에 보내면서도 뭔가 내가 생각했던 모유 수유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긴장감이 들었다. 


그 날부터 나는 하루의 1/6 이상을 유축기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한 번 유축에 30분씩, 3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8번을 하니 하루에 순수하게 4시간은 유축기의 유축 소리 (윙--- 치익, 윙--- 치익,)를 들으며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유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신세였다. '유축 자주 해야 양이 늘어요. 3시간 간격으로 하세요.' 라는 간호사의 말에 새벽 시간에도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유축을 했다.


나는 그 때 겨우 출산 2일차였고, 혼자서는 화장실 가기도 힘든 처지였지만 밤에도 새벽 1시, 새벽 4시, 새벽 7시... 정확한 간격으로 일어나 비몽사몽하는 와중에 일어나 앉아 유축을 했다. 남편 역시 몸이 불편한 나 대신 신생아실을 왔다 갔다 하며 유축 모유를 날랐다. 


처음에는 당연히 양이 적었다. 젖병 바닥을 겨우 채울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뭐 내가 양이 엄청 많은 운 좋은 산모일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내 눈으로 실감하고 나니 아쉬웠다. 내 아들에게 제일 좋은 것만 주고 최선을 다해서 기르고 싶은데, 그 첫 번째 스텝인 모유 수유에서부터 꼬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안달이 났다. 온갖 육아 서적이며 유튜브에서 봤던 내용들도 계속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모유에는 글로불린 뭐시기와 완벽한 영양 뭐시기와 아기와의 교감 등등 아무튼 몸에도 좋고 맛도 좋고 무조건 모유가 최고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랬단 말이다!'


나의 노력과 열정에 내 가슴도 탄복했는지 점차 양이 늘었다. 조리원에 입소할 시점에는 한 번에 60ml 쯤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리원에서는 유축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 신생아실 앞에 제출하는 방식이 되며, 다른 방 산모들의 결과물을 함께 모니터링 할 수 있다는 것이 복병이었다.


'와, 저 분은 160ml 젖병 하나를 거의 가득 채우는구나.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지?'

'내 옆방 산모는 나보다 겨우 하루 먼저 입소했는데 어떻게 양이 저렇게 많은거야?'

'저 분은 아직도 노랗게 초유가 나오는구나... 색깔이 노란 모유가 더 영양이 많은 건가?'


평생을 줄 세우기 속에서 살아오고, 항상 내가 몇 등인지 순위를 점검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런 조리원의 시스템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까짓 게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막 엄마가 되어서 모든 것에 열정이 불타고 아름다운 육아 청사진만 수 백장씩 머릿 속으로 찍어내던 그 당시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내 아들은 아주 잘 먹는 친구였고, 하루에 4~5번씩 직접 만나 수유를 하는데도 거의 항상 부족해서 배가 고프다고 울어댄 탓에 분유로 보충을 해야 했던 상황이니 더더욱 절박하게 느껴졌다.


나는 더욱 유축에 집착했다. 산후 마사지고 뭐고, 일단 유축이 가장 중요하고 유축을 제일 우선했다. 산후 '몸조리'를 하러 들어가는 곳에서 나는 몸을 혹사 시키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유축기 앞에 매달려 있고, 새벽에도 역시 알람을 맞추고 틈틈이 일어나 유축을 했다. 이건 남편한테도 말 안 했던 사실인데, 한 번은 새벽에 유축을 하다가 코피가 난 적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수유콜이 없어서 일단 유축을 먼저 했는데, 그렇게 모유를 유축하자마자 아기가 배고프다고 연락이 오면 젖을 물리면서도 기이한 죄책감이 들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기를 앞에 두고 하소연을 했다. 


"잘 안 나오지? 미안해... 유축한 지 얼마 안 돼서... 우리 아기 밥통에서 밥이 잘 안 나와서 어쩌나? 유축한 걸로 더 먹을래? 근데 그랬다가 많이 못 먹고 남기면 아까워서 어떡하지? 힘들게 유축했는데..."


혼자 중얼중얼 떠들다가 눈물이 주르륵 나기도 했다. 


하필이면 출산 직후 호르몬이 급격히 바뀌며 내 기분이 오락 가락 하던 때에, 나는 안 받아도 되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서 나에게 짊어지우고 있었다. 게다가 유축은 매우 아팠다. 인공적으로 진공 상태를 만들어 강제로 짜내고 흡입하는 방법이니 아플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갈라지고 피가 나면 연고를 바르며 주룩 주룩 울었다. 멘탈도 종잇장처럼 팔랑거리는 마당에 실제로 몸까지 아프니 긍정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평생을 최저가 쇼핑에 핫딜만 사냥해 오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져서 유두 보호기며 모유 촉진차를 비싼 가격에 조리원으로 주문해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와중에 조리원을 퇴소할 날이 가까워졌고, 모유 수유는 풀리지 않은 숙제인 채로 나는 아기와 집으로 가서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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