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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그 Sep 23. 2020

고성 카페 '테일'

조용한 바닷가 마을

사색이 필요하다면, 한적한 바닷마을의 아담한 카페 <테일> 

잔잔한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을 좋아합니다. 특히 카모메 식당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작품은 대부분 찾아봤을 정도로 애정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라하는 영화는 <안경>. 사색을 찾아 조용한 바닷마을으로 떠나온 타에코상에게 늘상 이입되어 나도 저런 공간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 카페 tail >

 저의 여행스타일은 한 장소에 꽂히면 우선 그곳을 찾아가고 보는 스타일입니다. 하고싶은 걸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과 일맥상통 하달까요. 사색을 하러 일본까지 가야하나 생각하고 있던 중 우연히 카페 테일의 사진을 보자마자 느낌이 왔습니다. 내가 저기 가있을 거라는 직감이.

 지난 1년동안 제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때론 감당할 수 없었고 그저 견뎌야할 일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하염없이 밤산책을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잘 견뎌낸 결과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 그간 마음고생을한 저 자신을 다독여주고파서 멀리 고성으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옛 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를 좋아해요

 저는 특히 주인의 취향이 묻은 공간을 사랑합니다. 제 취향과 주인장의 취향이 같은 공간을 만났을 때는 그저 웃음이 실실 흘러나와요. 카페 테일은 제가 만난 공간 중 가장 마음이 맞는 곳이었어요.  먼저 형식. 저는 옛 집을 개조해서 만든 형식을 좋아해요. 삐까번쩍한 공간보다 더 생명력을 지닌 느낌이 들어서요. 테일은 전통 가옥의 틀을 곳곳이 살려둔 채 꾸며져있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사장님께서 디자이너셨다고. 역시 탁월한 감각은 숨겨지지가 않는 듯 합니다. 

 그리고 향. 들어서자마자 은근하게 느껴지는 절간향이 특이해서 여쭤봤더니 인도에서 공수해온 향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질감이 들었지만 계속 맡고싶게 하는 끌리는 향이었어요. 20대 초반에는 달달한 꽃향을 좋아했는데 요새는 나무를 태운 듯한 냄새가 좋아지는 중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어쩐지 취향도 점점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겠지요. 

 조향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꼭 공부해보고 싶은 영역입니다. 제 이름은 '난초를 머리에 이다'라는 뜻인데요. 난초처럼 청렴하게 뜻을 이루라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멋진 이름이에요. 외국인이나 한국인 모두 2번 이상씩 물어보는 어려운 발음이지만 저는 그래도 제 이름이 꽤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인지 저만의 꼿꼿하지만 다정스러운 분위기를 담은 '란향'을 풍기는 사람이 되자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마음이 어두워지면 그 신념이 흐트러지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공간에 가거나 사람을 만나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어요. 조금 더 많은 향을 겪어보고 향에 대한 취향이 확실해지면 '란향'을 만들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늘 풍기는 나만의 향을 가지고 싶습니다. 

 여행과는 조금 멀어지지만 향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합니다.  때론 시각, 청각보다 깊게 지속되는 기억이 후각이 아닐까요? 지나가다 풍기는 향수냄새에 같은 향수를 뿌리던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번뜩 떠오르기도 하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의 냄새 같은 것들이 문득 떠올라 슬퍼져서 울기도 하고요. 비 온 다음날 안개를 머금은 낙엽냄새에 고등학교 등굣길이 떠오르거나, 맑은 아침 공기냄새에 여행지를 떠올리며 기분 좋은 추억에 잠기기도 하니까요. 제 지인의 사촌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읽고 조향사의 길을 결심했다고 하니 '향'이란 감각은 참 강력하고도 재밌게 느껴집니다. 

모네 그림의 색같은 사랑스러운 색감의 패브릭

 음악을 들으러 여행을 다니다보면 낮에는 주로 미술관에 가게 됩니다. 운이 좋게도 세계 곳곳의 유명한 미술관들을 가보면서 제가 인상파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고 특히 모네의 분홍, 하늘, 에메랄드 빛 색감과 흐리끄리한 유화 질감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드뷔시와 라벨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 같기도 하네요. 저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야 할까요? 어쨌든 간에 모네의 색감을 꼭 빼닯은 테이블보들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저의 최애작품 모네 런던 시리즈 중 국회의사당.

 카페에서 1분거리에 가진해변은 남해의 이름모를 해변 이후 제가 본 해변 중 가장 아름다웠어요. 여름에 꼭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다시 가서 바다 피크닉을 하려합니다. 요즘따라 하루하루가 은연 중에 내가 디자인해온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주위의 사람, 현재 머무는 공간, 듣는 음악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행위도 오롯한 나의 선택의 결과라고 문득 느낄 때면 몸이 붕 떠오르면서 현실과 아득히 멀어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래도 나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으니까 힘내서 점을 또 찍어내야죠. 영화 안경의 메르시 체조를 추면서 말이에요. 긴 글도 아닌데 첫 글이라 그런지 괜시리 부담을 느꼈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가지마! 하면서 말이에요. 정보전달과 취향 공유를 적절히 섞으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네요. 그냥 평소 하던대로 마음가는대로 써야겠습니다. 누군지 모를 독자님들 제 취향 한풀이를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또 만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uWQLZHYE5V4

영화 안경의 킬링포인트 메르시 체조에요. 종종 집에서 혼자 추곤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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