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사단설
자 수업 시작합시다.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싸가지’라는 단어가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 맹자의 사단설,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로, 네 가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어원일 것입니다. 인의예지를 나타내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그리고 시비지심이 그 마음들이죠. 고로, 이 네 가지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이 되었고, 그 생각이 ‘싸가지가 없다’는 과격한 말로 변형되었을 것입니다. 아, 사실 이는 정설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수업에서도 배웠듯이, 한국인들의 문화양식에 유교 사상이 상당히 많이 침투해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럴듯한 추측 아닌가요?
아무튼, 시대가 많이 지나면서 오늘날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사단설이 자리 잡았답니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여러분은 한국인이 될 수 없죠. 그러니까 오늘 수업 집중해서 잘 듣길 바랍니다. 첫째는 ‘열심’입니다. 한국인은 모든 일에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랍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열심은 한국인을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이 열심이라는 마음을 다른 말로 바꾸면 ‘노오력’ 정도가 되겠네요. 한국인들은 열심을 투입하면 그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실패는 오로지 열심히 없었던 본인의 몫이랍니다. 예를 들어,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자신이 정할 수 없어 보이는 일들도 사실 열심과 노오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한국인이 된다면 모든 일에서 자신의 열심을 먼저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애국심’입니다. 마음 한쪽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죠. 이른바 ‘두유 노우 클럽’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을 민족의 영웅이자 우상으로 숭배하기까지 하죠. 나라의 이미지를 곧 한국인의 이미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근데 애국심은 늘 세 번째 마음과 같이 나온답니다. 바로 ‘이기심’과 자주 결합한다는 거죠. 반도라는 특성상 한국은 늘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나로 뭉쳐 외세를 배척하는 ‘생존형’ 이기심을 발휘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오늘날 이 둘의 조합은 세계적 흐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자국민을 향한 차별에는 분노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환영하는 모습이 그것이죠. 그런 모습을 비판하면 ‘같은 한국인이 맞냐’, ‘한국을 떠나라’라는 말이 나온답니다. 역시 애국심과 이기심이 없이는 한국인이 될 수 없나 봅니다.
마지막으로는 ‘충심’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주군을 받들겠다는 선비의 모습이 한국인이 생각하는 충심일 겁니다. 조선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이순신, 을사늑약의 한을 못 이겨 자결한 민영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이런 인물들에게 열광하죠. 이 정신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들은 대통령과 정당이라는 주군 아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말 못 할 범죄 사실이 드러나도 ‘우리 주군은 그럴 리 없다’라고 말하죠. 웬만한 조선시대 선비 저리가라 할 만큼 눈물겨운 충심을 자랑합니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이들의 충심은 선거철만 되면 대상이 바뀝니다. 국민과 국가라는 주군을 대상을 향해 충심을 약속하죠. 그러다가 선거철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주군으로 돌아갑니다. 생각해보면 이들의 충심은 그때그때 힘 있는 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인가 봅니다.
네, 이렇게 오늘은 한국인의 사단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맹자의 사단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사실, 사상이라는 게 시대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한국에 정착할 영혼들인 만큼 이런 네 가지 마음을 꼭 갖추길 바랍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싫은 소리를 들을 수는 없잖습니까. 자 그럼 오늘은 한국인의 마음에 대해서 알아봤으니, 다음에는 행동을 살펴볼 차례죠? 모두 수업 전 교재 5장, <눈치> 부분을 미리 읽어오시길 바랍니다. 오늘 수업 여기까지 하겠습니다.